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름달 Oct 25. 2022

이해되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이유

그냥 습관처럼 하는 것이 필요할 때가 많다.

  나는 어렸을 때 아빠에게 "순종해라~"라는 말을 듣고 자라서 그런지 순종이라는 말에 거부감이 컸다. 순종이라는 단어는 왠지 어감부터 고리타분하다. 이 시대에 누가 순종하라고 하냐고 아이를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뭐, 나 역시 그랬기에 딱히 할 말은 없지만 교육현장에 있다 보니, 집에서 두 아이를 키우다 보니 '순종'의 필요성을 생각해보게 된다. 순종을 강조하지 않았지만 결국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순종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제시"도 하지만 "지시"도 많이 한다. 모든 것을 다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것은 성격상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사실 이해하기 전에 습관처럼 하다 보면 스스로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깨닫기 때문이기도 하다.  


  “순종”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사람, 특히 윗사람의 말이나 의견에 순순히 따름”이다.


  어느 날, 교실과 집에서 아이들에게 내가 하는 지시에 이유를 묻기 전에 몸을 움직이길 원하는 것을 발견했다. 아니, 자기표현을 하길 바라고 주체적으로 살길 바라면서도 어찌 이해하기 전에 따르길 원할까. 모순적인 나를 발견하고 나서 고민하게 되었다. 결국 그렇게 거부감을 느끼고 거북해했던 단어 "순종"아이가 어릴 때는 정말 필요한 부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어렸을 때 반항적으로 거부했던 마음을 내려놓 순종부모의, 주변 어른의 말씀을 잘 들으라는 순수한 의미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요즘 아이들이 정말 존중받으며 큰다. 부모들은 아이에게 의견을 많이 묻는다. 한참 이야기하고 나서 어떻게 할 것인지 물으면 '아이에게 물어보고 결정할게요.'라는 답변도 종종 들을 수 있다. 방과 후 활동도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고, 어떤 일을 할 때도, 어디를 가거나 메뉴를 정할 때도 아이의 의견을 먼저 묻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존중을 받은 아이들은 자기 생각이 분명하다. 그런 아이들이 나이를 먹고 무엇인가를 지시받았을 때 제일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왜요?"

이해가 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어른이 말하는 데 그냥 들으라하면 꼰대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냥 하면 안 되냐고, 억지로 하고 싶지 않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그런 아이들은 누구의 가르침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마치 나를 설득해봐 하면서 굳건히 버티고 있는 느낌이 든다. 어떻게 매번 이해를 시킬 수가 있는가. 사실 말로 이해시킨다고 이해를 하겠는가. 본인이 옳지 않다고 느끼면 움직이지 않는 것을. 그래서 작은 것 하나에도 "왜요?" 한다. 그럼 난 "됐어. 하지 마." 하고 지시를 철회다. 기회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과 더불어 아이가 아쉬운 마음을 갖게 하는 반동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그렇게 말하면 아이는 청개구리처럼 하겠다고 달려들기도 하기에.


  아이를 존중하는 것과 아이가 어른의 말을 순순히 따르는 것은 반대의 의미가 아니다. 무엇보다 어른 말을 먼저 들어야 하는 나이는 분명히 있다. 이 나이를 놓치면 아이는 쉽사리 어른이 옳을 때가 많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안전에 있어서도, 공부하는 것, 생활하는 것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원하는 것마치 옳은 것처럼 생각하고 부모나 다른 어른이 권하면 설득해보라고 버틴다. 경험을 해보기도 전에 몸으로 해보기도 전에 머리의 이해만 바라면 그것이 진정한 이해가 될까. 그냥 하라는 것을 해보면서 몸으로 이해가 되는 것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사실 어렸을 때는 머리의 이해보다 몸으로 익혀가면서 스스로 깨달아가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나는 이것을 "이해"라고 부르고 싶다. 어른의 말을 들어서 습관으로 만들어하면서 그것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내면서 고민해보고 부딪쳐봐야 지덕체의 고른 성장이 이루어진다.

오랜 시간을 살아서 많은 경험을 한 어른의 말이 절대적으로 옳을 때가 많음을 인정하는 자세가 만들어지면 머리가 커도 부모의 권위, 어른의 권위에 크게 반하지 않는다. 심지어 사춘기가 되어 호기심에 담배와 술을 해볼 수 있을지언정 돌아오지 못할 만큼 먼 길로 가지 못한다. 어렸을 때 어른의 말을 순순히 따른 아이도 크면서 반항도 하고 반발하기도 하겠지만 도덕적으로 바른 잣대, 옳은 생각을 몸으로 익혀 마음으로 새겼기에 크게 어긋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머리로 배운 것은 잊어도 몸으로 익힌 것을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두 딸이 어렸을 때 부모 또는 어른이 말한 것에 대해서는 우선적으로 들을 것을 요구하였다. 이유를 설명하기보다는 '해야 하니까' 하라고 했다. 이를 닦는 것부터 시작해서 밥을 골고루 먹는 것, 가족행사에 참여하는 것, 매일 정해진 시간에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까지 왜 해야 하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습관처럼 만들어진 부분에서조차 아이는 커가면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묻기보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반항을 안 한 것은 아니다. 잠을 중요하게 여기는 우리 집에서 몰래 웹툰을 보다 밤을 새기도 하였고, 슬쩍 거짓말로 숙제를 했다고 넘어간 적도 많다. 하지 말라는 것을 은근히 해보면서 실패를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하면서 왜 어른의 말을 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알아갔던 부분도 있다. 물론 아이가 크면서 아이의 취향을 점차 존중하였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단호하게 부모의 판단과 지시를 따라야 함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말 할 수 없거나 하기 싫다면 되려 너희가 부모를 설득해보라고도 했다. 스스로 이유를 찾아가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그렇다면 과연 부모의 말, 어른의 지시가 다 옳은가.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아이를 사랑하는 입장에서 고민하면서 최선의 것을 선택하고 행하라고 지시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순종"은 결국 어른의 말을 몸으로 익혀가면서 스스로 그 이유를 탐구해가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순종"은 아이가 살면서 정말 필요한 '공부' 같은 부분들을 필요한 이유를 알기도 전에 습관으로 만들게 돕는다고 생각한다. 습관으로 만들어 꾸준히 하게 되는 것에 굳이 이유를 대지 않는 것처럼 중요한 많은 부분들은 아이가 어렸을 때 습관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지시를 따르던 아이가, 어른의 말을 순종하던 아이가 어른의 모순을 찾아내고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면서 아이도 어른도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어른의 말에 무조건적인 복종이 아니라 어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듣는 자세를 기르기 위해 순종하는 자세는 필요하다.



작가의 이전글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