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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Nov 07. 2022

꼰대에서 벗어나는 길, SNS?

 소통과 정보를 위해 SNS를 해야 하는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필요한 자료나 정보를 인터넷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정보의 홍수라고 말하는데 원하는 것을 찾아내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린다. 막상 원하는 정보인 것 같아서 누르면 뭔가 띡~ 하고 뜨면서 SNS를 가입하란다. 그래야 볼 수 있단다. 1초의 망설임이 없이 x 를 누르고 다시 찾는다. 이리저리 찾아도 카페나 블로그에는 조금 시간이 지난 자료와 정보가 많다. 나는 "새삥"을 보고 싶은데..... 아, 안타깝다.

간판보다 중요하고 홍보나 광고보다 중요하다는 SNS, 디지털 혁명 시대에 태어나 마치 엄마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디지털에 익숙해 보이는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SNS를 해야 하지 않냐는 소리를 듣는다.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꼰대로 변화의 흐름에 몸을 맡기지 못하는 사람으로 취급되는 것이 좀 억울하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날로그 인간으로는 현대 생활에서 생존하기 어렵다는 말도 듣는다. 진짜 그럴까. 새로운 휴대폰에 적응하는 것이 귀찮아서 6년 넘게 같은 기종을 쓰고, 매번 간당간당한 배터리 때문에 전기선이 있을 때마다 수혈을 해주고 있는 내가 과연 SNS라는 시시각각 바쁘게 자기 이야기를 알려주려는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일까. 현실에서의 생존문제가 아니라 디지털 세상의 생존문제가 걸려있다.


  나의 생존문제나 꼰대가 되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언제부터 아이들에게 SNS를 허용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는 고민이 필요하다. 늘 논란이 되지만 사실 정답은 없다. 물론 나는 아날로그 인간으로서는 SNS의 허용 관련되어서 단호하다. 그냥 안 하는 것이 답이라고 툭 던질 테니까 말이다. 단무지 같은 답은 접어두고 다시 생각해보자 하면서 마음을 다졌다. 내가 시대에 뒤진 인간일 수 있으니까, 꼰대의 마음으로 무조건적인 반대를 하면 안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되었다.


  요즘 아이들은 생각보다 일찍 SNS를 시작한다. 빠르면 초등학교 3학년이고 5, 6학년 때는 반의 많은 아이들이 이미 SNS를 하고 있다. 부모들 생각에는 6학년이나 가야, 중학교나 가야 생각할 문제라고 여기는데 SNS를 하는 나잇대가 정말 어려졌다. 휴대폰과의 전쟁과 함께 SNS 전쟁이 시작된다고 예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왜 SNS를 하는가 물어보면 거의 소통을 1순위로 들고 그다음에는 누구나 다 하니까 해야 한다고 한다. 휴대폰과의 전쟁과는 또 다른 느낌의 전쟁의 서막이 열리는 듯하다. 막는다고 막아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SNS에 대한 교육도 좀 더 이르게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무조건 하지 말라고 할 수 없기에 아이들이 스스로 SNS의 역기능과 순기능을 알고 판단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SNS를 하지 않으면서 어찌 그들을 도울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졸업한 제자들을 비롯해 친한 고학년 녀석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은근슬쩍 다가가 본다.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 퍼거슨 감독의 말만 남용하지 말고 어떤 도덕적인 마음과 태도를 가지고 시작해야 할지에 대해 같이 논해봐야 할 것 같다.


  SNS에서 보이는 타인의 삶과 나의 삶을 구분해야 한다.  

SNS는 정말 화려하다. 중고등학생의 명품 자랑을 시작으로 방문하는 핫플레이스, 화장법은 따라갈 수가 없다. SNS를 보다 보면 왠지 주눅이 든다는 아이들이 꽤 있었다. 명품백이나 물건을 갖기 위해 알바를 한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화려한 타인의 삶에 비해 나의 삶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타고난 재벌이 아니라면, 타고난 외모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스스로를 비교하면서 느낄 수밖에 없는 상대적 박탈감은 당연하다. 그런 아이들에게 "너의 삶을 살아라."라는 조언이 통할까. 어렵다. 씨알도 안 먹힌다. 그래서 묻는다. 물론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왜 그것을 자랑하고 싶을까? 진짜 그들의 삶일까? 보여주지 않아도 행복하다면 왜 굳이 찍어서 올릴까? 왜 관심받고 싶은 것일까?"  

그냥 아이들이 한 번쯤은 생각해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던지는 질문이다. 보여주지 않아도 행복한 삶의 일부를 찾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던지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고민하는 것을 본다. 그냥 그들의 삶이라고 인정해주되 나의 삶에서 행복하고 소중한 부분을 다시 생각해보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들과 비슷한 삶을 산다고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약간의 꼰대 같은 말을 덧붙이고 싶은 마음을 누르면서 판단은 아이들 몫으로 남겨둔다. 흔들리지 말고 자신의 삶에 집중하길 바라면서.


 SNS의 정보는 주관적인 것으로 피해를 줄 수 있다.

SNS는 지극히 주관적이다. 그리고 지극히 자극적이다. 더 많은 팔로워를 거느리기 위해서 좀 더 화려하고 자극적인 정보를 싣는다. 어떤 사건이나 상황에 대한 개인의 의견으로 쓰인 내용은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개인적으로 보았을 때는 거짓이 아닐 수 있지만 사건이나 정보의 한 면만 보는 다른 사람에게는 객관적인 정보는 절대 아니다. 그렇기에 그 내용만 믿고 지지하고 옹호하는 발언을 하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소지가 많다.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주관적인 내용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단순히 한 사람이 올린 SNS 내용에 동요되어서 자신도 모르게 마녀사냥에 동참하게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정보의 객관성과 진실성에 대해 민감성을 길러야 본인도 가해자가 되지 않음을 깨달아야 자신의 인생에 있어 발목 잡히는 일을 저지르지 않는다. 자기가 그냥 한 말이 누구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고, 완전히 삭제가 불가능하고 순식간에 후욱~ 퍼질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하는 것을 인식하고 SNS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저학년 아이들이 이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작위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을 올리는데 아이들은 이것을 단순한 재미로 생각하고 따라 해보기도 한다. 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자극적인 것에 익숙해지지 않아야 여러모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으니까. 어렸을 때의 호기심과 호승심, 위험에 대한 낮은 불안감, 나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무모한 믿음은 타인의 삶은 물론 자신의 목숨까지 위험하게 한다.


 SNS, 옳고 그름을 알고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질 수 있을 때 하자.

나의 말과 행동에 책임질 수 있으려면 경제적인 독립과 생활에서의 독립을 했을 때가 아닐까 싶다. 요즘은 20대라 해도 부모의 그늘을 누리면서 여러 면에서 독립하지 못한 채 아니 않은 채 살아가고 있다. 초등학생을 비롯해서 중고등학생은 당연히 독립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자신의 말과 행동에 어떻게 책임질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문제가 터졌을 때 부모, 주변 어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어떻게 해결해나 갈 건지 방안부터 마련해보라고 하자. 충분히 이야기하고 나서 SNS를 한다면 당연히 조심스럽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자기를 돌아보게 된다. 부정적인 측면만 들추지 않고 SNS의 순기능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면 좋다. 좋은 영향력에 대해서도, 좋은 챌린지에 대해서도 알면 우리 아이들이 선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우리 집에서는 성인이 되기 전까지 SNS는 허용하지 않는다. 몰래 하다가 걸리기도 했다. 아이는 친구들이 다 하는데 왜 자긴 안되냐면서 울분을 토해냈다. 소통을 할 수 없어서 친구관계에게 문제가 있으면 어쩌냐는 걱정과 함께. 그럼에도 우리 부부는 단호하게 반대했다. 그 정도로 흔들릴 관계라면 친구가 아니라고 하면서. 부모로서 불안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독립하면 할 수 있다고 못 박으면서도 한편은 불안하고 걱정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아이는 진정되었고, 친구관계도 괜찮았다. SNS를 하지 않는 아이를 친구들이 이해해주고 인정해주면서 거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전달해주기도 하였다. 아무런 불편 없이 잘 지내고 있다, 지금은.


  SNS, 안 해도 소통의 창구는 많다.

스스로 꼰대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지만 나는 꼰대가 아니다?라고 한다. SNS는 하지 않지만 다른 소통의 창구를 이용해서 요즘 아이들과 이야기를 충분히 하고 있다. 찾아오는 제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그들에게서 배운다. SNS를 하지 않는 나를 배려해서 SNS로 소통하는 다른 졸업생 아이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연결해주기도 한다.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 된 녀석들은 수시로 SNS 앱을 지웠다 깐다고 한다. 절제가 되지 않아서 시험기간에는 다 지웠다가 좀 여유가 생기면 다시 깐다고 한다. 물론 이런 녀석들은 SNS에 매여 살지 않는다. 다만 그곳에서 다른 친구들과 연락하고 또 새로운 정보를 얻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가끔은 SNS가 주는 피곤함에 대해서 토로하기도 한다. 지들은 하면서 우리 집 딸내미들은 하지 못하게 하라는 이야기도 한다.

안 할 수 없다면 충분히 생각한 후에 시작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부모이자 교사 된 입장에서 SNS는 최대로 늦게 했으면 한다. 싸우고 싸우더라도 시작하고 접하는 나이가 늦으면 늦을수록 좋다. 지각이 생길 때에, 책임을 질 수 있을 때, 정보에 대한 분별력과 판단력이 갖추어졌을 때 했으면 좋겠다. 이것이 사회의 흐름에 거슬러 가는 것이라도 아이들을 위해서는 정말 늦게 시작했음 한다. 하지 않아도 큰일 나지 않음을, 친구관계에서 소외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면 시작이 늦추어질까.


  SNS 교육은 늦어도 초등학교 2, 3학년부터 시작해야 한다. 얼마 전, 1학년 아이들에게 교육했더니 아이들이 한 목소리로 외쳤다.

 "저는 SNS 안 할 거예요!"

그 모습이 귀여워서 웃고 과연 그럴까 싶어서 웃었지만 저학년부터 교육 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순기능과 역기능을 충분히 알 수 있고 남들 하니까 무조건 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별하면서 SNS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막을 수 없다면 방법을 알려주고 막을 수 없다면 분별과 사리판단이라는 무기를 장착하게 할 수 있게 도와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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