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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Nov 21. 2022

아이의 행복≠부모의 행복

나와 아이를 동일시하지 않아야 서로 행복하다.

“엄마, 다른 부모님들은 자식이 먹는 모습만 봐도 행복하고 배부르는다는데 엄마는 안 그래요?”     


  좋아하는 것이 하나 남았을 때 먹을 것을 좋아하는 딸이 말했다. 분명한 오해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엄마는 그렇지 않다고 배가 왜 부르냐고 하면서 여유 있게 마지막 것을 젓가락을 들어 먹었다. 우아하게~ 그러면서 너는 나보다 살아갈 날이 많으니 맛있는 것을 먹을 기회가 많으니 양보하라고 한다. 그 말에 볼을 부풀린 아이가 어떤 생각하는지는 모르는 척한다. 

  우리 아이들이 오해하는 것을 정정해줄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은 가끔 어른에 대해 오해를 한다. 당연하다. 어른은 강하고 상처받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특히 부모는 자기를 위해주는 사람으로 믿는다. 물론 부모가 누구보다 편하기도 하고 의지가 되는 것은 맞다. 아이를 낳는 순간, 부모는 잠시 자기를 잊고 온갖 시간과 생활을 아이에게 맞추게 된다. 물론 예전에 비해 희생적인 정신은 덜 할지 모르지만 여전히 아이를 위해서 산다. 먹는 것, 자는 것, 놀러 갈 때도 아이에게 맞추고 아이의 재롱에 위안을 받는다. 아이 엉덩이 두드리는 맛으로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고도 한다. 몸과 마음은 지치더라도 아이의 성장과정을 보면서, 환하게 웃어주는 그 얼굴을 보면서, 사랑 표현에 세상을 다 가진 느낌도 든다. 그런 것에 익숙해지면서 아이의 행복이 마치 나의 행복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부모도 부모이기 전에 한 명의 사람이다. 부모만의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식이 부모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어느 때는 아이의 인정이, 아이의 위로가 절실할 때가 있다.       


  아이의 행복이 부모의 행복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부모는 언제 행복할까?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면 고맙고 행복하다. 발달 단계대로 성장하면서 은근히 애정 표현하고 애교를 피우는 모습에 웃음이 난다. 아이가 학교에 가면 부모는 온갖 마음과 신경을 학교생활에 집중한다. 눈으로 볼 수 없기에 궁금하고 걱정되는 것이 부모 마음이다. 그래서 아이가 학교에서 즐겁다고 말하면 부모도 행복하다고 한다. 부모에게 언제 행복하냐고 물었을 때 꽤 많은 분들이 아이가 학교생활이 즐겁다고 할 때 행복하다고 하셨다. 아이의 행복이 부모에게 전염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행복한 것만큼 안심되는 일이 있을까. 그럼에도 우리 아이가 “아이의 행복=부모님의 행복”으로 생각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아이도 그것을 진짜로 믿는다. 스스로의 행복에 집중하되 자기가 행복하면 부모님도 행복하리라 믿는다. 그러다 보면 아이는 부모를 개별적인 혹은 독립적인 인간으로 존중하기보다 언제든지 자기를 지켜주는 슈퍼히어로로 생각한다. 부모가 힘들거나 말거나 자신만 배부르면 되고 자기만 행복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맛있는 것은 무조건 자기가 먹어야 하고 좋은 것은 자기가 누려도 부모는 괜찮을 거라 생각한다. 사실 부모는 아이의 한마디에 녹아내린다. 그러나 그런 마음으로 아이들을 키운다면 아이는 커서도 자기만 챙기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자랄 수밖에 없다. 아이의 행복이 부모의 행복과 연결이 되어 있다. 그렇다고 아이의 행복만이 완전한 부모의 행복은 아니다. 아이가 부모의 행복도 존중하고 생각하고 배려하게 어렸을 때부터 그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은 중요하다.   

   

  부모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나의 행복을 찾아야 한다. 

  아이를 낳고 기르다 보면 아이에게 많은 부분을 집중된다. 특히 아이가 어릴 때는 나의 부산물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어느 때는 아바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자식에게 자신을 투사하거나 동일시하기도 한다. 자식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여기고 자식의 행복을 내 행복처럼 느낀다.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본다. 그런 과정 속에서는 부모는 자신을 잠시 잊고 지내는 것 같다. 자신이 부모 이기전에 한 명의 어른으로 좋아하던 활동을 이어가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많다. 아이는 성장할수록 사실 자기만 바라보는 부모가, 자신에게 많은 기대를 하고 사사건건 관여하려는 부모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런 마음이 사춘기에 맞물리면 문을 꽝 닫고 들어가거나 자신의 생활에 대해 입을 다물기도 한다. 부모의 시선을 피하고자 하고, 자유롭고자 한다. 그런 아이를 자연스럽게 독립적인 개체로 인정해줄 수 있을까. 자식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으로 알고 있다가 그런 아이를 볼 때 서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식이 자신의 인생을 찾아간다고 할 때 기꺼이 놓아줄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부모는 한 명의 개체로서 자기 행복을 간과하면 안 된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틈새를 이용해 여가를 즐겨야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짧게라도 이어가야 한다. 그래야 부모도 아이가 자신의 행복을 찾아 나선다고 할 때 서운해하지 않고 시원섭섭해할 수 있다. 그러라고 쿨하게 인정해줄 수 있다. 넌 너고, 난 나라는 것을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서로 마음 깊은 한편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필요할 때 언제든 꺼내들 수 있도록.      


  부모는 자식의 행복과 자기 행복을 분리해야 하고 그것을 아이도 알게 해야 한다. 그러면 아이는 부모에게 일방적으로 배려를 요구하기보다 부모의 행복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랑은 주고받아야 더 많이 생길 수 있고 배려 역시 주고받아야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무엇보다 각자의 행복을 인정하게 되면 서로에 대해 조심스러워진다. 좋은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데 그를 위해 필요한 자세이기도 하다.  

아이의 입장에서 부모의 행복을 생각해주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어렸을 때부터 서로 꽉 안고 바라보기보다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래야 비로소 서로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아이가 처음 젖을 떼었을 때, 그리고 기저귀를 떼면서 아이는 자신이 부모에게 속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서서히 느낀다고 한다. 거기서 더 나아갈 수 있게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야 한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자신도 부모를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 아이는 기꺼이 할 것이다. 아이가 행복하면 부모가 행복한 것처럼 부모가 행복하면 자신도 행복할 수 있음을 알게 하면 좋다. 서로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관계는 아름답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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