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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Jan 16. 2023

취미가 될 수 없는 독서

열과 성을 다해서 치열하게 해야 남는다.

  어렸을 때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었다. 좋은 유전자 몰빵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지만 몰빵 받지 못한 1인은 슬프다. 어렸을 때부터 내세울 것이 없었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아니고 춤을 잘 추거나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셀프디스는 아니다. 다만 사실을 나열해 봤다. 그래서인지 난 딱히 취미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요즘은 인식이 바뀌어서 즐겁게 할 수 있으면 취미라고 하지만 나때만 해도 취미도 뭔가 잘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었다. 음악을 좋아하면 뭔가 음악에 대해 심도 있는 지식을 갖고 말할 수 있는 정도를 취미라고 하는 느낌이랄까. 취미조차 뭐라 말할 수 없는 나에게 유일한 안식처이자 도피처는 책이었다. 책은 나를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또 다른 세상이었고 꿈이었다. 독서를 시작하면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책을 많이 읽다 보니 결말에 대한 예측도 잘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의 삶을 다루는 많은 이야기들을 좋아하다 보니 심리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상황파악이 빨라졌다. 그래서인가. 언제부터인지 누가 취미를 물으면 “독서”라고 당당하게 대답하였다. 


  나이를 먹어서도 책을 손에서 놓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갖고 싶은 책은 많았지만 마음껏 소유하지 못했던 기억 때문에 틈틈이 사서 모았다. 벽돌책도 당장 읽지는 못하지만 언제인가는 읽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사서 한쪽에 고이 모셔두었다. 결혼하고 낳은 딸아이에게도 내가 꾸준히 해 줄 수 있는 것은 책 읽기라는 마음에 정말 열심히 사서 읽어주었고, 읽혔고, 읽으라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독서”는 나의 유일하면서도 우아한 취미생활이었다.

그러다 아이를 시작으로 뒤늦게 책을 읽고 하는 비경쟁식 토론과 함께 읽기로 나의 취미 생활에 전환점을 맞이했다. 내향적인 나에게 맞지 않는 토론이라 생각했지만 웬걸.. 주어진 논제에 맞게 비경쟁식 토론을 하면서 눈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함께 읽기” 활동까지 하게 되고 매일 발췌와 단상을 쓰는 숙제를 하면서 사유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쉽지 않지만 더 깊이 책을 만날 수 있었다. 이런 좋은 점을 뒤로하고 슬프게도 이때부터 독서를 취미로 할 수 없었다. 취미로 하기에는 너무도 힘든 공부방법이었고 열심을 들여야 하는 배움의 방법이었다. 많이 남았지만 마냥 가볍게 즐길 수 없게 되었다. 

      

 비경쟁식 토론을 통한 책 읽기

  정해진 시간 안에 책을 읽어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토론 전에는 읽어야 하는 압박으로 꾸준히 책을 읽었다. 비경쟁식 토론은 처음에는 답답했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상대의 말에 토를 달고 싶고 근거를 대면서 반박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참다 보니 그러면서 점점 듣는 자세를 길렀고 상대의 의견을 통해 이 세상에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느끼면서 상대를 통해 세상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있던 곳이 얼마나 좁은 우물이었는지 깨달았다.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들으면서 나의 세계를 넓혀가는 과정은 낯설었지만 새로웠고, 약간은 무서웠지만 새로운 방법의 지식의 향유를 경험하게 했다. 귀를 열리게 하고 눈을 뜨게 했으며, 마음의 그릇이 넓어지고 깊어지는 시간이 되게 하였다.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여러 권의 책을 읽은 기분이다.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비경쟁식 토론, 말하지 않고 듣기만 해도 더 넓어질 수 있음을 많은 이들 특히 나처럼 책 읽는 것만 했던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처음 발 들이기가 어려울 뿐,  비경쟁식 토론은 겪을수록 매력적이다.    


  함께 읽기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아이의 책을 읽어주고 그림책을 같이 보았다. 중고등학교에서 아이가 읽는 책을 함께 읽어보려고 노력했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알고 싶었고 또 책을 공유함으로써 이야깃거리가 생기고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요즘 아이들의 트렌드를 놓치고 싶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시대에 뒤처지는 것보다 아이들과의 공통분모를 없어지는 것이 두려웠다. 그렇다고 나의 문화만 강조하면서 그들을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난 그런 방식의 함께 읽기를 계속했다. 

지금 내가 하는 “함께 읽기”는 평소 손이 가지 않거나 혼자 읽어낼 수 없는 인문학, 공상과학이나 너무 두꺼운 벽돌책이나 장편소설을 챕터별로 나누어 함께 읽는 활동이다. 매일 조금씩 읽고 카페나 블로그에 발췌와 단상을 올린다. 진열만 되어있던 먼지 쌓인 책을 꺼낼 수 있는 희열을 느끼고 혼자 도저히 완독이 불가한 책들을 함께 읽었다. 이해되지 않은 부분은 과감히 넘어가거나 다른 사람들의 발췌와 단상을 읽으면서 도움을 받으면서 하루하루 그렇게 읽어냈다. 발췌를 하고 단상을 적으면서 책을 한번 더 들여다보니 더 깊게 볼 수 있었고 속독이 주는 폐해를 이겨낼 수 있었다. 그와 관련되어 사유하고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절대 불가능해 보이는 완독을 함으로써 편독에서 조금 벗어나고 무관심한 세계에 대해 알아갈 수 있었다. 벽돌책을 깰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함께 읽기”는 좋다. 혼자 할 수 없는 것을 함께 함으로 결국 해낼 수 있으니까 말이다. 도전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취의 경험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좋은 결과도 얻을 수 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기”를 비롯한 여러 형태의 독서모임을 한다. 아직도 책 읽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좋은 것은 덤이다.       


  이제 누가 지금 나에게 묻는다면 더 이상 “독서”를 취미라고 말할 수 없다. 독서는 나와의 치열한 싸움이 되었다. 책 읽는 시간이 즐겁지만은 않고 편안하지 않다.  꼭 해야 하는 숙제처럼 열과 성을 다하고 집중해서 해야 하는 하나의 필수 과제가 되었다. (어렸을 때 숙제를 대충 했던 벌을 여기서 받나 보다.) 그렇지만 책을 통해 사유하는 습관이 만들어지고 있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마치 도 닦는 듯하다.

물론 어렸을 때는 무조건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냥 많이 읽어서 책과 친해져야 한다. 초등학교까지 매일매일 책을 읽는 습관을 들여야 그다음 단계를 말할 수 있다. 스마트기기보다 책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어야 하고 책을 통해 자기도 모르게 세상을 볼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종이책을 선호한다. 종이의 질감을 느끼면서 넘기는 행위도 좋지만 너무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스마트기기와 달리 책은 읽기만 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긴 텍스트를 인내심을 갖고 읽어내고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어렸을 때 기르지 않는다면 커서 길러주는 것이 힘들다. 어렸을 때는 취미로 독서를 곁에 두는 것도 좋다. 책을 통해 즐거움을 얻고 다른 세상을 꿈꾸며 친해져야 한다. 다만 학년이 올라가고 나이먹을수록 독서는 취미가 아닌 또 다른 방법의 공부로 전환되어야 한다. 어쩜 이때부터 진짜 평생 스승으로, 친구로 삼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문해력이 대두되고 있는 지금, 무엇을 읽을까보다 어떻게 잘 읽어야 하는지를 고민해봐야 한다. 방법도 수없이 많겠지만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한 권의 책을 자기 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은 독서를 더 이상 취미로 말할 수 없는 작은 슬픔을 주지만 세상을 보는 눈과 마음이 달라지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묻고 답하면서 한걸음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쓰윽 스쳐가는 독서도 좋지만 뭔가 남을 수 있는 독서에 도전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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