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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Jan 04. 2023

부캐 전성시대

우물을 파도 한 우물만 파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가져본다.

*우물을 파도 한 우물만 파라
*오서지기 : 날다람쥐의 재주. 재주는 많지만 잘하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을 비유하는 말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한 마리도 못 잡는다.  
*주인 많은 개 밥 굶는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면 그 어느 것도 잘하지 못하고 끝내지 못함으로 한 가지 일에만 집중을 해야 성공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동시에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을 비난하는 말, 속담이 꽤 많다. 어렸을 때부터 “성실함”을 강조하거나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것” 과 관련된 속담이나 사자성어를 꽤 많이 듣고 자랐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것은 자연스레 머릿속에 새겨졌고 우리 가족 중 ‘지대넓얕’의 대표주자 둘째 딸은 나에게 늘 타박을 듣는다. 그렇게 여러 분야에 관심은 많은데 어느 무엇하나 파고들어 가지 못함에 대해, 그 많은 지식들이 인터넷 특히 유튜브에서 비롯된 것임에 대한 잔소리는 멈출 수 없다. 딸이 이야기해주는 많은 것들은 대부분 새로운 것이 많아서 어떻게 그걸 알았어하면서도 마냥 반갑거나 재미있지만은 않았다. 그것은 여기저기 둘러보기만 하다가 우물 하나도 제대로 파내지 못하고 끝나면 어쩌지 하는 걱정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그런 나에게 누군가 요즘 시대에 한 우물만 파서 살아남을 수가 있냐고 툭 던졌다. 시대가 달라졌는데 나는 옛날 사람인가 싶었다. 고민되었다. 사실 그렇다. 대학 전의 공부만 봐도 한 과목만 잘하면 안 된다. 한 과목만 잘한다고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는 것도,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천재성을 발휘하는 사람에게는 가능하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공부” 자체를 크게 하나로 보고 한 우물만 파라고 한 것인가. 요즘은 한 가지 일만 가진 사람도 없다. 부캐가 뜨는 것처럼 하나의 직장을 가지고 여러 군데 몸을 담고 있는 사람도 많다. 전환이 필요하다. 


  어떤 것이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요즘 사람들은 뭔가 하나로 그치거나 만족하지 않고 뻗어나간다. 그래야 살 수 있는 시대라고 말하기도 한다. 다만 그냥 뻗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중심을 잡고 그를 통해 뻗어나가는 것이다. 나무가 굵은 줄기 즉 나무 기둥을 만들고 잔가지들을 수없이 뻗어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반대여도 된다. 중요한 것은 굵은 줄기, 즉 기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분야를 굵은 줄기로 잡고 거기서 수없이 많은 잔가지로 뻗어나가는 것이 발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작정 문어발처럼 여기저기 걸쳐놓지 말자는 것이다. 아니다. 생각해보면 문어발도 문어머리통과 연결되어 있다. 그렇게 많은 발을 걸칠 수 있는 것도 문어 머리와 연결되어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문어발이든 나무의 잔가지들이든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중심에 두고 뻗어나가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왔다. 뻗어나가기 위해서, 자신이 나무의 몸통이 되기 위해서 먼저 자기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어떤 기질과 성향이며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는지 알아야 하고, 그를 바탕으로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문득 《서머힐 학교》가 떠올랐다. 특별한 시간표가 없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배움을 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고 하였다. 수업 내용은 보통 어린들의 연령에 따라 설정이 되지만 이따금 그들의 특별한 흥미에 따라 설정이 되기도 하며 배우고자 하는 어린이는 어떻게든 배우기에 수업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한다. 부모의 의해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로 키우고 있다고 한다. 현실에서 가능할까 생각하면서도 "공부"가 아닌 "자기 자신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에 감탄했다.  자기 자신의 삶을 살면서 중심을 잃지 않고 여러 갈래로 뻗어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먼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야 한다. 

고학년 아이들에게 취미와 취향과 관심사, 장래희망 등을 물어보면 똑 부러지게 대답하는 녀석들도 있지만 “저 그런 거 없는대요.” 하는 녀석 몇 명, “돈 많이 버는 거요?” 질문으로 대답하는 녀석 몇 명으로 나뉜다. 고등학생이 된 딸에 의하면 성적에 맞추어하고 싶은 것을 정하게 된다고 한다.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성적에 대학을 맞추고 대학에 직업을 맞추어야 하는 것이라고 꿈을 꿀 수 없는 현실이라 한다. 슬프다. 그래도 난 묻는다. “그래서 넌 뭘 좋아하는데?” 이 단순한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까. 아이들의 대답을 기다리면서 혼자 조용히 생각해 본다. 난 무엇을 좋아하며 어떤 부캐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잊고 지냈다. 잘하는 것은 당연히 잘 모르겠고 좋아하는 것도 잊고 있었다. 요즘은 글쓰기와 걷기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이런데 아니, 나는 나이 먹어서 잊었다 쳐도 아이들은 왜 모르는 것일까. 아이들은 ‘좋아하는 것=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대답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좋아한다고 다 잘해야 하나. 어른들이 무심코 던진 말에 아이들은 좋아하는 것조차 잘해야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그냥 했을 때 즐거운 거, 꾸준히 할 수 있는 거를 찾아보자고 했다. 그게 게임일 수도 있고 덕질일 수도 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될 수도 있고, 낙서 또는 먹는 것에 대한 즐거움일 수도 있다. 꾸준히 하는데도 질리지 않는다면, 심심할 때마다 찾아서 하는 것이라면 그게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즐거워하는지 먼저 몸으로 느껴야 하고 인식해야 한다. 생각보다 어려운 이야기일 수 있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그래서 천천히 찬찬히 찾아보아야 한다. 진짜로 좋아하는 것이 뭔지. 


좋아하는 것을 위해 꾸준히 시간을 들여야 한다. 

좋아하는 것을 알면 마음의 휴식과 안정을 위해서만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난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시간과 마음과 정성을 듬뿍 들인다. 좋아하는 것을 한다는 것이 마냥 편하지 않다. 입 끝에 맴돌고 튀어나오지 않는 단어를 찾아 헤매고, 뿌연 안갯속에 머무는 단편적인 지식들을 끄집어내야 하며, 명확하지 않은 의미를 검색하고 그도 안되면 어디서 봤지 하면서 먼지 쌓인 책들을 뒤적인다.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이렇게나 힘이 든다. 근데 좋아서 그 고생을 사서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물어보자. 좋아하는 것을 위해 얼마나 공을 들이냐고. 잠시 재미있어하다가 그만두는 것은 진짜 좋아하는 것이 아니니까 다시 찾아봐야 한다. 한 가지에 푹 빠지길 잘하는 5살짜리 우리 조카는 봤던 영상이나 책을 돌려보고 또 돌려봐서 다 외운다. 외우고도 또 보고 끊임없이 되풀이해서 말한다. 한 가지에 몰입해서 외우고 또 외우면서 시리즈를 다 섭렵했고 지금도 꾸준히 좋아하면서 다른 주제로 넘어간다. 어린데도 진짜 좋아하기에 시간과 공 들이면서 즐거워한다.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좀 더 큰 아이 이야기를 찾아보면 제자 중 하나는 덕질에 빠진 것으로 예를 들 수 있다. 그 녀석은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팠고 관련된 굿즈를 구입과 판매를 반복해 꽤 괜찮은 용돈을 벌었다고도 한다. 좋아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꾸준히 관찰하면서 그와 관련된 통찰력을 기르다 보니 잘 팔리는 굿즈와 그렇지 않은 굿즈를 구분하고 판매할 수 있는 통로를 찾아내고 안전하게 거래하는 방법까지 통달해 있었다. 팬카페 가입은 물론 열심히 활동을 하면서 정보를 모으고 끊임없이 들여다봐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 아이에게 공부는 부수적인 것이면서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부모의 허락을 받기 위한 통로였기에 공부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런 패기와 열정과 노력이 생활까지 번질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었다. 덕질을 통해 얻은 많은 지식들은 또 다른 분야로 관심이 옮겨갔을 때도 효력을 발휘했다. 

좋아하는가. 그러면 작은 것부터 꾸준히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한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좀 한심하고 답답할지라도 아이가 해야 할 일을 했다면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고 시간과 정성을 충분히 투자하게 하는 것도 허용해야 한다. 물론 나에게도 어려운 시련이라는 것을 알면서 노력하고자 한다. 


좋아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점점 더 뻗어나가게 해야 한다. 

하나를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하다 보면 사실 그를 정확하게 알고 이해하기 위해서 소소한 것들을 배워야 하고 건드려야 할 때가 많다. 사실 우물을 파는 것도 그렇다. 우물을 잘 파기 위해서는 지형에 대해 알아야 하고 수맥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 도구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하고 도구를 사용하는 감각도 길러야 한다. 물론, 계속하다 보면 잘할 수 있게 되는 일이 있지만 하면서 꾸준히 그에 필요한 소소한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탐구하다 보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경험과 실패를 통해서도 좋고, 좋아하는 것을 위한 전문적인 지식을 찾아가는 것도 좋다. 취미생활에 뭘 그리 공들이냐고 타박하지 말고(내가 자주 하는 말이었다. ㅠㅠ) 그냥 계속 뻗어나갈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하고 자극해야 한다. 기술자가 아니라 진짜 장인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든 꾸준히 연구하면서 마음을 담아야 한다. 

아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발견한다면 그를 위해 시간과 공을 들이고 그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뻗어나갈 수 있도록 툭툭 건드려주어야 한다. 아니 어쩌면 부모의 입장에서 진짜 필요한 것은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파고 들어가면서 그 주변의 것들을 건드리는 것을 지켜봐 주는 인내심이며 어떻게든 자기 삶을 살아가리라 하는 신뢰감일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것이 직업과 연결이 되지 않으면 어떠한가. 배워서 불필요한 것은 하나도 없는 이 세상인데. 여지를 두어야 하고 여유를 가져야 한다. 


  솔직히 여러 분야에 두루 관심이 많은 둘째가 걱정이 된다. 뭘 하나 해도 제대로 하라고 잔소리를 퍼붓는 것도 여전하다. 난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 엄마이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늘 마음을 내려놓자고 주문 외우듯이 말한다. 아직은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것을 찾지 못해 두리번거리는 것이고 진짜 좋아하는 것을 찾으면 그를 바탕으로 뻗어나갈 것이라 믿자고 나를 다독인다. 어쩌면 잔가지들만 무성한 우리 둘째는 자기애라는 중심이 충만하기에 그를 에너지 삼아 나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는 것에 동의하는가. 나는 여전히 이 말에 동의한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이라면 그 일에 대한 열정으로 뻗어나갈 수밖에 없다. 하나의 우물을 잘 파기 위해 그냥 무작정 삽을 들고 파내려 가는 것이 아니라 잘 파기 위해 주변을 돌아보는 힘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환경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도구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파는 방법에 대해 연구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냥 반복적으로 기계적으로 파는 것이 아니라 애정을 가지고 끊임없이 노력하려다 보면 다른 소소한 것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를 통해 수많은 부캐들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여전히 무엇을 하거나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학을 잘 가기 위함이 아니다. 직업을 잘 잡기 위함도 아니다. 그냥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잘하기 위함이고 어느 길로 뻗어 나거나 자유롭게 튼튼하게 잘 가기 위한 바탕이 되는 것이 공부라 믿기 때문이다. 주인이 많은 개가 굶지 않기 위해서는 개가 주기적으로 정해진 주인에게 가서 밥을 줄 때까지 물고 늘어지면 되는 것이고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한 마리 잡는 연습부터 하면 한 번에 두 마리 이상을 잡을 수 있는 날도 올 것이다. 속담을 조금 비틀어 보거나 깊게 보면 틀린 말이 하나도 없을지 모른다. 자기를 알고 삶의 주인이 되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뻗어가게 도와야 한다. 다만 수많은 부캐들을 대충 만들지는 않았으면 한다. 자기가 중심이 되어 뻗어나가야 한다. 수많은 부캐들에도 진심을 담는 법을 안다면 뚝뚝 부러지는 잔가지가 아니라 잔가지마저 튼튼해 흔들림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지금은 그리고 앞으로는 부캐없이 살기 힘든 세상이다. 부캐를 만들기 앞서 자기를 잘 알고 파고 들어가면서도 뻗어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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