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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Jan 18. 2023

칭찬의 역효과

고래가 춤 추는 것을 봐서 무엇하나.

  “좋아요. 그러면 구걸 한번 합시다. 응? 좋은 말도 좀 해 줘요. 그러면 못 이기는 척할게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잖아요.”
  “고래 춤추는 걸 봐서 뭐 해.”


  주옥같고 찰진 대사가 넘쳐나는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 일부다. 뭐지 하면서 듣고 빵 터지면서 고래 춤추는 것을 봐서 뭐 하냐는 말에 칭찬에 대해 곰곰이 되씹어보았다. 스스로 흥에 겨워 춤추는 것은 좋지만 누군가의 칭찬을 받기 위해 춤춘다는 것이 왠지 서글프다. 여기에 나온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도서는 2003년에 초판이 나오고 정말 대박을 터뜨리면서 칭찬의 중요성을 알린 책이다. 그 이후 칭찬과 관련된 교육․육아 서적들이 쏟아져 나온 것으로 기억이 난다. 칭찬의 중요성과 그 방법에 대한 교사 연수도 넘쳐났던 시기였다. 우리 집 한구석에도 이 책이 잘 꽂혀있다. 나에게 이 책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칭찬의 힘이라⋯⋯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지만 정말 제대로 하지 못하면 독이 될 수 있음을 알기 제목부터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물론 아주 나중에서야 원제목이 “Whale Done!: The Power of Positive Relationships”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조금 다르게 보기는 했지만 여전히 다시 읽고 싶지는 않다. 칭찬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면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방법이라는 생각도 든다. 가르치는 일을 십 년이 훌쩍 넘게 하면서 칭찬을 통해 얻은 효과를 누린 적도 있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지 않고 도리어 좋지 않은 부분을 형성한다는 것을 목격하고 경험하면서 칭찬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입장이 되었다.


  아이를 프레임에 가두는 칭찬

  아이가 어렸을 때는 칭찬을 통해 많이 이끈다. 사소한 생활 습관부터 학습 습관까지 칭찬으로 길들이는 경우가 많다. 칭찬 자체가 치켜세워주는 말이기에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다. 긍정적이면서 기분 좋은 말을 듣기 위해 아이는 칭찬받았던 혹은 받을 수 있는 행동을 반복한다. 어떨 때는 무엇인가를 하고 나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며 칭찬을 기다린다. 어릴 때일수록 칭찬으로 아이의 선하고 바른 행동을 끌어내기 쉬운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혼자 옷을 입는 것, 밥을 먹는 것, 양치질을 하는 것 등 아이의 독립적인 생활 습관을 격려하기 위해 부모가 “칭찬”이라는 전략을 쓰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그런 칭찬, 괜찮은 걸까.

어른들이 하는 평가의 언어가 담긴 칭찬은 아이를 프레임에 가두는 역효과를 불러온다. 착한 행동으로 인해 “착하다”라는 소리를 듣고 자란 아이는 착해야 사랑받는다는 강박이 생겨서 본인의 감정과 욕구를 생각하지 않고 착하려고만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욕구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고 어느 때는 “척”을 해야 하기도 한다. 항상 착한 아이는 없다. 밖에서 착한 아이가 집에 와서 버럭 하거나 신경질을 내는 것, 보는 사람이 없으면 나쁜 행동을 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본인의 욕구를 자꾸 누르다 보니 정작 원하는 바를 인지하지 못하고 감정을 처리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여 계속 참아가면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쓴다. 주체적인 삶보다 다른 사람을 평가에 좌우되는 삶을 살기도 한다. 구체적이지 않으면서 평가의 언어를 담고 있는 다른 칭찬의 결과도 비슷하다. 손이 야무지다는 칭찬을 많이 받은 아이는 못 하는 부분에 생겨도 차마 도움을 청하지 못한다. 못하는 것이 알려질까 두렵고 다른 사람이 실망할까 불안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비슷한 칭찬을 누적해서 받아온 아이는 그 틀에서 벗어나 자기를 바라보는 것도 어려워하며 “진짜 모습”을 보지 못하거나 봐도 인정하지 못한다. 칭찬받은 내용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을 자기라고 믿으면서 자신에 대한 기준을 만들어 간다. 칭찬으로 만들어진 모습에 대한 기준에 자신이 부합하지 못하면,  어설픈 모습을 보일 것 같으면 아예 하는 것을 포기한다. 자기에 대해 알기도 전에 밖에서 만들어진 기준에 자기를 맞추려다 보니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기대에 부합하지 못할 때 아프기도 하고, 자기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며 회피하기도 한다.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슬픔을 안겨주는 칭찬

  자기 삶에 있어 주인공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주인공은 너야 너!라는 노래도 있지 아니한가. 자기 삶에 있어 주인공은 자기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물론 가정에서는 우리 아이가 주인공일 확률이 높다. 특히 형제자매가 없다면 더 그렇다. 아이는 주인공으로서 부모의 칭찬과 대접을 받으면서 가족 중심에 있다. 삶의 주인공이 아니라 칭찬으로 만들어진 가족의 주인공이다 보니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고 다른 가족 구성원을 배려하기보다 늘 배려받고 대접받는데 익숙하다. 이런 아이가 가정을 넘어서서 학교에 오면 어떨까. 가정에서 혹은 작은 유치원에서 칭찬받던 아이가 학급에 와서 주목받지 못하는 경우, 힘들어한다. 주변인물이 된 것 같아 학교생활을 못 견디어한다. 삶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기도 전에 자기가 속해있는 환경에서 주인공으로 살아온 아이라서 주목받지 못하는 주변 인물이 되는 것은 마치 존재 자체를 부인당하는 것 같나 보다. 그러나 칭찬은 또 하나의 차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위험하다. 아이들 앞에서 혼자 칭찬을 받는 것은 다른 아이들의 주목받는 것이고 주인공으로 급부상할 수 있는 길이 된다. 칭찬받지 못한 아이들은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면서 의기소침해진다. 한 명의 주인공은 탄생하지만 나머지 아이들은 들러리가 되는 느낌이라 의기소침해진다.


  그렇다면 모두가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살 수는 없는 것일까. 칭찬이 아니라 인정을 해주면 된다. 담백하고 담담하게 말이다. 아이의 잘한 행동을 긍정적으로 인정해 주되 평가의 언어를 배제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점이 왜 좋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면 아이는 스스로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좋은 행동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이를 인정해 주면 된다. 칭찬도 사실 그 자체를 인정해 주는 담백한 말이면 더 낫다. 별 차이 없어 보이지만 비교하면서 보면 다음과 같다.


*평가의 언어가 들어가는 칭찬의 말 :  “최고야!” “천재 같아!” “너무 똑똑한 거 아니야.” “못하는 것이 없네.” “그런 행동하는 네가 예쁘다.” “착하네.” 등등

*구체적인 설명으로 인정해 주는 말 :  “네가 수저를 놓아주어서 엄마가 힘이 덜 드네. 고마워.” “색칠을 진짜 꼼꼼하게 했구나.” “여러 반찬을 골고루 먹는 것을 보니 건강해지겠네.” “혼자 그 작은 단추를 잠글 수 있다니 손이 야무져졌네.” 등등


  아이는 최고가 아닐 때 자신에게 실망하며 못하는 부분을 숨길 수 있다. 착하기 위해 예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자신을 잃게 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예쁜 것도, 똑똑한 것도 타고나는 것이다. 만약 본인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는 좌절할 수도 있고 포기할 수도 있다. 노력해도 가질 수 없고 이루어질 수 없어서 실망하고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밖에서 말하는 것이 실제 자기 모습과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 겪어내야 하는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칭찬, 그 자체는 좋을 수 있다. 무엇보다 기술적으로 잘할 수 있다면 아이가 긍정적인 자아를 갖게 하는 데 있어 훌륭한 방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설픈 칭찬으로 아이를 띄워놓거나 프레임을 만들어서 가짜모습에 갇히게하거나 다른 사람과 본인을 비교하면서 상처받게 한다면 차라리 안 하는 것만 못하지 않을까. 칭찬받기 위해 춤추는 고래가 아니라 자기 흥에 겨워, 의지를 갖고 춤추는 고래가 더 행복하지 않겠는가. 칭찬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즐거워서 행복하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으로 클 수 있게 도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 아이의 사소한 움직임과 의도를 놓치지 않고 인정해 주면서 뿌듯함을 느끼게 도와주면 좋겠다. 가정에서도 칭찬보다는 인정을 해줌으로 스스로 자기 행동에 만족하고 셀프 칭찬으로 내면의 힘을 길러가면 좋겠다. 셀프 칭찬은 자아를 제대로 직면하게 해 주면서 자기의 장단점을 알게 한다. 자기를 잘 알게 되면 내면이 단단해지고 남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게 해 준다.


  우리 아이가 인생의 주인공으로 주체적인 삶을 살았으면 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도 나를 위하고 대접하는 사람으로, 나를 빛나게 해주는 들러리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인생에서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나도 존중받고 상대도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로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잘못된 칭찬은 아이를 부담스럽게 하기도 하고 안하무인으로 만들기도 한다. 격려보다 좌절을 겪게 할 수 있고 아예 도전할 힘을 잃게 하기도 한다. (실패하느니 아예 시작하지 않아 실패의 기회를 회피한다.)  어떤 부분에서는 아이에게 상처가 되기도 한다. 한 번쯤은 어른들이 너무 쉽게 쓰는 "칭찬"이라는 전략에 대해 그 역풍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학년 부모님의 부탁 중 가장 많은 말이 "칭찬 많이 해주세요. 칭찬해 주면 더 잘하는 아이입니다."라는 것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나는 그냥 칭찬에 인색한 교사로 머물되 아이를 인정해 주고 아이도 자기를 인정할 수 있게 돕는 방법을 고민해야겠다.



*사진-드라마 <멜로가 체질> 중 한 장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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