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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Feb 13. 2023

센 언니들

센 언니의 매력이 언급되는 사회는 괜찮지 않을 수 있다.

  

  환불을 잘 받을 것 같은 언니 넷이 모였다. ‘환불원정대’라는 이름의 네 언니는 외모부터 세다. 강하다. 진한 화장에,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되 본인이 만족하는 과감한 의상, 거침없는 말투가 그동안 보아왔던 여리여리 소녀소녀하던 그룹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열광했다. 그리고 연이어 불어오는 강한 여성들의 서사를 중심으로 한 예능과 드라마들은 한바탕 모든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술꾼도시여자들」, 「슈룹」에서 「대행사」라는 여성을 주인공 삼은 드라마는 말할 것도 없이 블랙핑크의 블랙버전의 노래들, 센 언니들의 춤배틀 「스트릿 우먼 파이터」, 이영지의 솔직 담백함이 돋보이는 「지락실」 등은 걸크러쉬라는 단어로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나 역시 이 중에 몇 가지는 푹 빠져서 챙겨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우리가 “센 캐”라고 말하는 인물 중에 남자는 왜 드문 것인가. 터프가이의 열풍이 한동안 불었긴 했지만 센 언니와 느낌이 다르다.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의견을 말하면서 주체적인 삶을 꾸려가고 필요할 때는 살인까지 하면서 복수하는 주인공이 남자일 때는 별 다른 이슈 없이 그냥 좋아하는데 그 주인공이 여자일 때는 왜 논란이 일고 “세다”라는 표현이 붙는가. 뒤에서 암투를 벌이고, 기지를 발휘해 살아남았던 여성 캐릭터도 인기가 있었지만 대놓고 독설을 마다하지 않고 함부로 대할 수 없어 보이는 강함을 지닌 여자 주인공에게 우리는 왜 더 환호하는가.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페미니즘도 아니고 젠더에 대해 잘 알지 못해 감히 한마디도 꺼내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아해하는지도 모른다.


  지금과 달리 어렸을 때 나는 작고 약했다. 빼빼 마른 데다가 예민했다. 집이 넉넉한 편도 아니었다. 삼 형제 중 막내인 나는 내세울 것 없이 자존심만 셌다. 고집도 세고 기도 세서 “싸움닭”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작은 체구에도 지는 법이 없었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빠르면서 조리 있는 말발로 살아남았고 상대를 이겨먹었다. 어른들은 나에게 ‘어디에서도 살아남을 잡초’ 같다며 생활력이 강해 보인다는 고 에둘러 좋게 말했지만 그게 어떤 뜻인지는 이미 시선으로 느꼈다. 콤플렉스가 많아질수록 나는 독기로 무장했고 상처받지 않는 얼굴로 외면했다. 어차피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피해의식에 더 강하게 내 의견을 피력했다. 눈물을 보이면 내 안의 견고한 성이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에 가면에 가면을 더해갔다. 내향성 역시 이런 강한 모습에 감추었다. 상처받지 않는 척, 당당한 척, 강한 척하면서 참 오래도 그렇게 살았다. 정 많고 여린 마음을 보이는 순간 찢길 것이라는 예상에 그런 모습은 아예 꺼내놓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상처받았다고 하면 웃기지 말라면서 손사래 쳤다. 그게 더 상처여서 아프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손해란 손해를 다 보면서도 마치 이기적으로 사는 사람처럼 취급당하고 독하다고 평가당했다. 나의 강함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아쉽게도, 안타깝게도 나 때는 “센 언니”가 유행하지 않았기에 어디 가나 환영받기보다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아, 난 좀 늦게 태어났어야 하나.      


  사실 따지고 보면 “센 언니들” 은 그냥 세서 멋있는 것이 아니다. 그 나름대로 순간순간 여린 마음이 드러난다. 따뜻한 인간미가 느껴지는 부분도 많고 말과 행동에서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깊은 속정을 보여준다. 단순히 강한 캐릭터는 그렇게 호감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가수 이효리는 동물애호가로 유기견과 관련된 봉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으며, 스트릿우먼파이터에 나오는 모니카는 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뚜렷하고 자신이 이끄는 팀을 무섭게 또 때로는 다정하게 격려하면서 나아간다. 래퍼 이영지만 해도 자기의 랩에 자신이 있으며 유머러스하다. 망가지고 실수하는 모습에서 인간미가 풀풀 느껴진다. 그들은 실수하는 모습을, 틈이 있는 모습을 감추지 않는다. 망가짐을 불사하고 아픈 상처도 담담하게 드러낸다. 나는 나의 약함을 가리기 위해 강한 척을 했다면 그들은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보여주는 것이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진짜 센 것이다. 그게 바로 나와 그들의 차이였다. 진짜 강한 사람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내보이는 것에 두려움이 없기에 다른 사람에게 약점으로 잡히지 않는다. 못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지질한 것이 아니라 애써 숨기면서 거짓과 위선으로 덮는 것이 지질한 것이었다. 나는 정말이지 강한 것이 아니라 “척”만 하는 사람이었다. “센 캐” 속에 숨어있는 약했던 나는 이제야 못하는 것도 약한 것도 인정한다. 약한 것은 나쁜 것이 아님을 참 늦게도 알았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보면서 ‘나 대신’이라는 마음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나 보다.

     

  나를 알게 되고 인정하면서 여자로서 또 딸 둘의 엄마로서 강한 여성 캐릭터를 진지하게 들여다본다. 우리 사회에서 남자는 어떤 캐릭터를 가지고 있거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그들의 서사는 우리에게 늘 익숙한데 아직도 그들과 여성의 위치는 같지 않은 것 같은 불편함에 눈을 뜬다. 이제 서서히 여성의 서사로 드라마나 영화를 이끌어 나가기 시작했고 대담하고 솔직 담백한 여성 캐릭터가 환영받기 시작했으나 아직도 어떤 부분에서는 정형화된 여성상은 완벽하게 버려지지 않았음을 느낀다. 그것은 딱히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인식을 완전히 바꾸는 데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리겠다 싶다. 교과서도 많이 바뀌어가고 있지만 만연해있는 남녀차별적인 그림들과 내용들은 여전히 실재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듣고자란 차별적인 발언들은 (여자가, 여자로서, 남자가, 남자는 등으로 시작하는 많은 말들)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녹아있어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여성과 남성을 가르는 벽을 만들어가고 있다. 굳이 보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지만 참 구석구석에 많이 존재하고 우리 사회 속에 스며들고 있는 차별적인 문화가 많다. 막상 지금이 조선시대냐고 하면서도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아무렇지도 않게 차별적인 발언을 하고 행동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나 역시 그렇다. 민감성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은 날 보면서 ‘중도주의자’라고 비판한다. 이 편도 저 편도 아니어서 극단적으로 치닫는 많은 모습들이 불편하다. 어느 정도 화합의 중간지점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어느 편에도 속하지 못한다.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민감성을 길러야 하는 것은 맞다. 다만 남성과 여성을 나누지 말고 단순하게 “성차별”적인 것에 반대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사람이나 상황을 볼 때 그냥 “성”이란 것을 떼놓고 보면 안 되는 것일까. 남성, 여성으로 가르지 않고 사람의 평등을 말하면 안 되는 것일까. 어떤 성이 우월하다고 말하지 말고 그냥 그 사람의 실력과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동등하기 위해서는 결국 “성”이란 것에 가두거나 갇히지 않고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따지고 됨됨이를 짚어야 한다. 

너무 오랜 기간 익숙해진 편견과 차별도 문제지만 “이대남” “한남” “메갈” 등의 단어를 사용하여 서로 편 가르기 하는 정치적 분위기도 문제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다. 이제부터라도 어른들의 눈이 달라지고 의식이 달라져야 한다. 편 가르지 않고 서로 동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미디어에, 정치적인 놀음에 놀아나지 않도록 정신 차려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결국 내가 환호했던 “센 캐” 혹은 “센 언니”는 나를 대신해 주는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솔직 담백한 사람으로 좋아해야 하는 것이다. 시원시원한 그 성격은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좋은 것이고 자기의 못난 구석을 보여주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드러내는 강함에 끌려야 하는 것이다. 난 여전히 그들이 좋다. 다만 좋아하는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는다. 여성인 그들이 강하고 솔직하고 당당해서가 아니라 그냥 난 자기 약점마저 인정하는 “진짜 센 사람”을 동경하고 좋아하는 것이다. 물론 부드럽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도 부럽긴 하다. 여성과 남성을 나누기 전에 사람이 함께 사는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공정하고 공평한 사회에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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