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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Apr 26. 2023

그래, 가끔은.

"멈춤"으로 나아간다.

  천성이 게으르다. 손가락이 긴 사람은 게으르다는 옛말이 나에게 딱 맞아떨어진다. 손가락이 길어서 게으른 것인지 게을러서 손가락이 길어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태함을 사랑하는 것은 사실이다. 귀차니즘에 시달리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도 지루해하지 않을 사람이다. 집콕은 언제나 환영이고 주말이면 한나절을 침대와 한 몸이다. 이런 나를 그냥 두면 큰일 나겠다 싶었나, 삶은 나를 바쁘게 만들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과 많은 것을 해보고 싶은 욕심에 숨 쉴 틈 없이 바쁘고 집에 오면 또 밥 해 먹느냐고 또 딸들과 말하고 장난하느냐고 바쁘다. 집안일을 미루는 것도 한계가 있다. 산더미같이 쌓이는 빨래와 바닥에 머리카락이 엮여 베를 짜는 모습에 눈을 감았다가 애써 몸을 움직인다. 우연히 참여하게 된 토론과 함께 읽기 활동으로 매일 꾸준히 정해진 책을 읽다가 까무룩 잠이 들 때도 있다. 아침 6시에 진한 커피와 시작한 하루는 다소 많은 양의 카페인이 쌓일 때쯤 마무리가 된다. 정말 긴 하루인데 짧은 일주일이다. 게으른 나는 몰리고 몰려야 일을 하는 스타일인데 아침부터 많은 일들이 줄 서서 나를 기다린다.


  출근길에 탄 버스에서 큰 딸이 내리자마자 '함께 읽기'로 읽고 있는 <토지>를 폈다. 대단한 책이다. 그런데 순간, 마음이 답답해졌다. 나의 우둔함과 무식함을 깨는 도끼와 같은 많은 책들, 꾸벅꾸벅 졸면서 읽어내는 어려운 인문학 책들은 사실 즐거움보다는 도전이고 공부다. 그런데 오늘 문득, 나는 숨을 쉬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밀려드는 많은 것들을 다 소화하지 못해 포화상태로 머물면서 입력이 되기보다는 넘쳐흘러 나온다는 생각에 답답해졌다. 머릿속이 엉켰다. 비우지 못한 냉장고에 이것저것 꾸역꾸역 집어넣는 불쾌함이랄까. 큰 딸 말대로 나는 그릇이 작은가 보다. 작게 타고난 그릇에 뭔가 자꾸 밀어 넣고 욱여넣고 있나 보다. 몸도 마음도 바닥을 자꾸 찾는다. 바닥에 온몸을 딱 붙인 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옛날 어떤 광고에 나온 것처럼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더욱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책을 덮었다. 오늘 분량을 읽지 않으면 또 마음이 급해져서 허덕거리겠지만 과감히 덮는다. 그리고 하늘을 보았다. 아무 생각 없이 학교로 걷는 내내 하늘만 보았다. 구름이 뭉게뭉게 펼쳐져있는 것이 장관이었다. 어느 멋진 여행지에 간 듯했다. 계속 하늘만 바라보고 걸었다. 짧은 길인게 아쉬웠다. 학교 뒷문에서 잠깐 망설였다. 들어서기가 겁났다. 교실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없어지고 한 명의 교사로서 바삐 움직일 내가 예상되었다. 집에 들어설 때도 '나'는 잠시 사라지고 엄마 또는 아내로만 존재하는 느낌도 받는다. 어쩜 내가 '나'를 느끼지 못해 나의 그림자에 잡혀 먹혔나.


  지금 난 어느 때보다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다. 큰 파도가 지나간 후에 갖게 된 하루하루 규칙적인 안정된 삶이다. 아이들 만나는 것을 사랑하고 또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하는 것도 행복하다. 그럼에도 쉴 새 없이 몰아치듯 살아내고 있는 내가 버거워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멈춤"이 필요하다. 잠시 멈춘다. 그리고 숨을 쉰다. 하늘을 본다. 뭘 더 생각하거나 고민하거나 욕망하지 않는다. 그냥 나를 멈추고 숨 쉬는지 확인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늘이 주는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잠시 모든 것을 잊는다. 비운다. 숨 쉬는 것에 집중하고 하늘이 뿜어내는 빛을 감상한다. 나를 위한 5분이며 10분이다.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 구석에 쌓인 먼지를 떨구어낸다. 그래, 가끔은 이래도 괜찮다고 나를 다독인다. 크게 한숨을 토해내고 힘차게 출근한다. "멈춤"으로 나아간다. 가끔은  엄마, 아빠, 딸, 아들, 사회인, 직장인이라는 겉옷을 벗고 온전한 자신을 바라봐주는 것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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