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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May 01. 2023

회장이라는 직함

자리가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 

  아직 어린데도 불구하고 초등학교에서도 어린이 회장 선거철이 되면 분위기가 뜨겁다. 삐까번쩍한 선거용 포스터와 지킬 수 있을까 하는 눈에 띄는 공약들, 각자의 매력이 드러나게 짜는 선거운동 등 국회의원  선거 못지않게 뜨거운 열기를 뿜어낸다. 얼마 전 뉴스에 한 초등학교 교사가 투표를 조작했다가 큰 파문을 일으켰다는 것도 다른 사람은 어이없어 하지만 현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교실에서도 그렇다. 반을 대표하는 회장을 뽑을 때 긴장감이 감돈다. '회장'은 아이들의 사이에서 인정을 받느냐 아니냐의 지표가 되기도 한다. 어떤 부모는 나에게 회장을 안 하거나 못하는 것에 대해 한탄하기도 한다. 우리 아이가 뭐가 모자라냐고, 인지도가 낮은 것인지 아니면 친구관계가 문제가 있는지 묻는다. 아이들이 뽑아주는 것이기에 인정받았다는 생각은 회장들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한다. 학교를 대표하는 전교어린이회장은 뽕이 더 빵빵하다. 공약이 먹혔다는 기쁨, 전교생의 인정을 받았다는 으쓱함을 어찌 모르냐만은 그게 다가 아님을, 아니 다가 되어서는 결코 안됨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뽑힌 회장들은 분명히 노력해야 하고 책임져야 한다. 왕관의 화려함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 왕관의 무게를 견디어야 함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학급회장은 무엇을 하는 자리인가. 초등학교에 굳이 필요할까. 작년에 회장이었다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했냐 물었다. 선생님의 심부름을 하고 줄을 서는 일이 있을 때 앞뒤에 섰다고 한다. 그게 다냐고 묻는 나에게 아이들은 '뭘 더 바라지' 하는 눈이었다. 선거공약으로 궂은일을 앞장서서 한다고 하였으나 궂은일이 뭔지 모르는 눈치다. 앞에 있는 쓰레기를 주워다 버리지 못하는 것을 보고, 앞뒤로 서되 줄을 서지 않는 아이들을 챙기지 못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비단 우리 반의 문제도 올해만의 문제도 아니다. 전교회장이 복도에서 전력질주를 하는 모습, 욕을 난무하며 지나치게 장난하고, 학칙을 어기는 것을 본 것은 흔한 일이니까 말이다. 어느 시점부터인지 모르겠지만 회장들은 얻은 명예를 지켜내지 못하는 가벼움을 장착하고 있다. 생활에서 책임지지 않으며 뻐기는 만큼 희생할 마음도 없어 보인다. 솔선수범을 왜 하냐고 반문한다. 

학급회장은 무엇을 위한 자리인지 정의하기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아이들일 리더로 뽑은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리더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리더는 군림하는 위치가 아니다. 단순히 학급을 위해 선생님을 위해 봉사를 하는 자리도 아니다. 단체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리더를 맡고 있는 학급회장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한 고찰이 필요하다. 


누구나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요즘 아이들은 선호도를 말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친구관계에 있어서 호불호가 정확해 전체 다 같이 놀기보다는 친한 몇몇이 노는 것을 좋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미나 성격에 상관없이 회장은 누구나 품을 수 있어야 한다. 자기와 성향이 다른 친구도 끌어가야 하고 반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친구를 챙길 수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회장들이 단짝을 만들거나 특정 친구만 챙기는 것을 경계한다. 주의를 준다. 회장이라는 직분이 가지고 있는 힘을 말해준다. 소외감을 느끼는 아이를 회장이 챙길 때의 효과는 정말 대단하다.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팀플을 하거나 학급 단체활동에서 자신의 성향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잘할 수 있어야 하는 자리이며 이를 위해 노력해야 회장이 구심점이 되어 학급이 잘 굴러간다.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공부 잘하고, 착하며 순종적이어서 담임의 말을 잘 따르는 것을 많은 교사들이 선호한다. 그런 아이들이 회장으로 뽑히는 것은 어쩌면 교사의 욕구가 반영되는 것일지 모른다. 교사가 편하기야 하겠지 싶다. 그러나 순종적인 리더는 구성원을 끌어갈 힘이 없다. 반 아이들의 정당한 욕구를 인지하고 대변해야 하며 대신 목소리를 내줄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교사의 입장을 이해하고 반 아이들을 설득시킬 수도 있어야 한다. 아직 어린아이에게 어렵지 않냐고 한다. 그렇지 않다. 옳고 그름을 구분할 줄 알고 교사가 충분히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권의 하고 설득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학급회장의 역할이다. 교사의 잔소리나 꾸중이 시작되기 전에 다른 아이를 움직이는 것,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게 설득하는 것이 학급회장으로의 직무인 것이다. 반면, 교사에게 직접 말할 용기가 없는 아이들을 대변해 주고 목표를 설정할 수 있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다. 


솔선수범으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 

말만 가지고는 누구도 설득시키거나 움직이게 하는 것은 어렵다. 그렇기에 회장들은 늘 솔선수범을 해야 한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평소에도 본인의 옷을 내려놓고 회장이라는 옷을 입음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회장이 잘하지 못하며 그만큼 아이들도 신뢰하지 못한다. 학급회장이 가진 직급의 힘이 없어지며 말발이 먹히지 않는다. 먼저 움직여야 하고 책임져야 한다. 학급이 전체가 잘못한 일에 회장을 더 혼내는 것은 그 자리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다. 리더의 자리는 그렇다. 자아실현을 위한 자리도 아니고 뽐내기 위한 자리도 아니다. 인정받으려면 당연히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학급 회장의 학급의 얼굴이라는 말을 한다. 어디 가서 회장이 혼나는 것은 우리 반 전체를 욕 먹이는 것과 같다고 한다. 국격이 있듯이 학급에도 격이 있다. 우리 반 아이들이 바르게 행동하기 위해서는 회장들의 모범적인 행동은 당연히 필요하다. 


  내향성이 강한 나는 사실 직위에 관심이 별로 없다. 앞에 굳이 나서지 않는다. 직분에 맞는 책임감을 감당하지 못했을 때 스스로를 얼마나 괴롭힐지 알기에 더 원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무엇보다 나는 나의 그릇 크기를 알고 있다. 다 아우르지 못할 것도 안다. 아니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내 노력과 희생이 얼마나 커질지 안다. 사람은 자기 능력의 70% 해당하는 자리에 있어야 가장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다는 신영복선생의 말씀에 적극적으로 공감하다.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난 그 자리가 그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상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평소 70%의 자리를 강조합니다. 어떤 사람의 능력이 100이라면 70 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30 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30 정도의 여백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여백이야말로 창조적 공간이 되고 예술적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70 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100의 능력을 요구받는 자리에 앉을 경우 그 부족한 30을 무엇으로 채우겠습니까? 자기 힘으로 채울 수 없습니다. 거짓이나 위선으로 채우거나 아첨과 함량 미달의 불량품으로 채우게 되겠지요.”  (신영복선생의 마지막 강의에서.)


학급회장도 그렇다. 인기투표도 아니다. 회장이 아니라고 인정을 못 받는 것도 아니고 친구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스스로의 성향을 알아야 한다. 어렸을 때부터 자기의 그릇을 알고 역할을 찾아가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물론 아이라서 그릇을 넓혀갈 수 있는 가능성은 당연히 있지만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무던히 많은 노력 해야 함을 인지해야 한다, 아이도 부모도. 잠시 갖게 되는 어깨뽕에 취해 회장을 한다면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것이 나을 수 있다. 그냥 학급 구성원으로 할 일을 하며 자기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 더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 다만 자리를 맡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사람을 성장하게 할 수는 있다. 아이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회장이 되길 원하는가, 부모는 어떤 마음으로 우리 아이가 회장이 되길 바라는 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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