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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Apr 17. 2023

관계에 대한 두려움

정중하게 표현하고 서로를 인정해 주는 힘이 필요하다.

  우리 어렸을 때에 비해 요즘 아이들은 잘 싸우지 않는다.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몸으로 하는 아이들의 놀이는 많이 사라졌고 "생활 속 거리두기" 실천으로 더 이상 부대끼면서 놀지 않는다. 더불어 성과 폭력에 대한 어른의 민감성이 아이들의 몸장난을 멈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동시에 적극적인 배려와 도움을 주지도 않는다. 그저 약간의 거리를 두고 서로를 지켜보는 느낌이랄까. 관계에 얽매이지 않으 서로에 대해 깊게 관여하지 않는다. 결국 예전에 비해 큰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물론 작은 일을 크게 반응하여 문제 삼는 경우도 있긴 하다. 아이들이 서로 거리를 두니 싸움은 적어졌으나 뭔가 불편하다. 평화로워 보이지만 서로에게 스며들지 않는 이질적인 모습은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머리끄덩이를 잡고 손톱을 세우면서 싸우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씩 웃고 떡볶이를 나누어먹던 것에 익숙한 세대라 그럴지도 모른다. 그때는 화해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고 그냥 깊은 골이 생기기도 전에 문제가 해결되었던 것도 같다. 싸우고 나면 뭔가 끈끈한 무엇이 생겼다고 하면 이상한가. 치열하게 싸우면서 끈끈한 정이 생겼다.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되기도 하고 미운 정으로 챙기기도 한다.


  관계 맺음을 하는 방법이나 깊이가 달라진 것은 알고 있으나 혹시 하는 마음에 아이들에게 물었다. 친구들에게 본인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냐고 했더니 학급의 반이 넘는 아이들이 그러지 못한다고 하였다. 친구의 반응이 두렵단다.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순간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지 예상되지 않고, 혹시라도 관계가 어색해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겁난다고 한다. 자식을 키워보지 않았다면 이런 두려움을 이해할 수 없으리라. 중학교 가서 할 말을 정확하게 했을 때 번지는 싸움을 겪어내고, 친구들이 분위기를 타고 등을 돌렸을 때의 깊은 절망하는 아이를 보면서 아이들이 관계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 것이 어쩜 당연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담담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성향상 깊은 관계를 만들어가지 않는 것은 괜찮지만 두려움으로 성을 쌓는 것은 건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표현하지 않아서 아무도 모르게 생기는 상처, 겉모습만 평가하는 시선을 넘어서지 못하는 두려움, 서로가 스며들지 못하는 겉으로만 맺는 관계에 대한 불안함에 아이가 잠식당하지 않으면 좋겠다. 

말을 해야 나의 감정을, 생각을 알릴 수 있지 않을까. 주고받는 표현 속에서 이해하고 또 이해받을 수 있지 않을까. 소통을 통해 서로 신뢰감을 쌓고 깊어지는 관계로 발전하길 바란다. 많지 않아도 된다. 그냥 그런 관계 맺음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으면 된다. 언젠가는 나와 비슷하면서 다른 그러나 서로를 인정해 주는 솔메이트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움츠려있을  때는 절대 생기지 않는다. 넘어졌을 때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 그리고 내민 그 손을 뜨겁게 꽉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또 그런 사람으로 자란다면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지리라 믿는다.


  나는 옛날 사람이다. 모든 관계가 그럴 수 없지만 일정한 사람과는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스며드는 관계를 맺어가길 지향하는 편이다. 얽히고설키는 것이 복잡할 수 있다. 되려  어느 정도 자기 마음을 숨기면서 표현을 덜 한다면 갈등도 겪지 않고 싸움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진짜 깊어지는 관계는 없다. 싸우자는 것이 아니다. 담백하게 담담하게 자기의 마음과 생각을 표현할 줄 알고 나눌 줄 알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오해가 생길 수 있고 갈등이 빚어질 수 있지만 대화를 통해 풀어가면 된다. 그 과정에서 상대가 나와 완전히 같을 수 없음을 깨닫고 인정한다면 더 넓어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자기감정을 인식해야 한다. 조금은 객관적으로, 조금은 냉정하게 자기감정을 살핀 후 사실적인 것만 골라 담담하게 표현하고 그것을 인정받는 경험을 한다면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사이로 발전하리라 본다.

지금 아이들에게 옛날의 관계 맺음을 강조할 수 없다. 서로 진하게 스며드는 사이를 만들어주는 것도 어려운 것을 안다. 그렇지만 자기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했을 때 관계가 어그러진다는 두려움을 넘어서게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중하게 의사를 표명하는 말하기 방법을 알고 그것을 들으면서 감정적으로 반응하기보다 존중해 주는 태도를 갖추게 하면 관계를 잘 형성해 나갈 것이다. 상대방의 감정이나 의도를 함부로 판단해서 혹은 지레 짐작해서 말하지 않고 자기 입장에서 본 것과 느낀 것만 담백하게 말하는 연습을 아이들과 함께 해봐야겠다. 나 역시 필요한 부분이다.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리라는 기대감에 마음이 부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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