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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Jul 05. 2023

고인물

구르지 않는 돌에는 이끼가 낀다.  

 "내가 너무 나이 들어서 애들한테 미안해요. 교사를 더 하는 것은 너무 좋은데..."


  존경하는 선생님 한분이 얼마 전에 하신 말씀이다. 워낙 오래 알고 지내서 세월을 느끼지 못했는데 아이들을 사랑하시는 선생님은 가르치는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시면서도 걱정이 된다고 하셨다. 별 걱정을 다 하신다고 하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보다 마음과 생각이 열려 있으셔서 멈춰있지 않으신 분이라 아이들과도 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으시다. 그런 선생님이기에 별 걱정을 다하신다는 생각이 드는지도 모른다.

 적지 않은 나이에 이르면서 교사로서 물오르는 혹은 빛이 나는 나이가 언제인지, 아이와 활발한 교류와 소통이 이루어지는 나이는 언제인지 돌아보게 된다. 젊었을 때는 그 나름대로 패기와 열정이 있어 아이들과 즐겁고 나이를 먹으면서는 쌓여가는 경험과 내 자식을 기르면서 볼 수 있는 깊이가 달라져서 아이를 대하는 것이 달라진다. 그래도 언제가 좋냐고 꼭 집어 말하라고 한다면 난 지금이 좋다. 내 아이들이 크면서 엄마로서 무르익고 또 그것을 바탕으로 만나는 아이들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으며 부모와의 상담에서도 뭔가 도움이 될 수 있어 좋다. 시간이 흘러도 비슷한 답을 하고 싶다. "지금 이 순간"이 좋다고. 앞서 말한 선생님이 그렇지 않을까. "지금 이 순간", 아이와 함께 하는 이 시간이 서로에게 너무 좋으리라 믿는다. 그 선생님 연세에 상관없이 선생님을 만난 아이들은 분명 복 받은 것이다.


  젊다고 모두 열정이 넘치거나 나이가 많다고 다 무르익는 것도 아니다. 나이 먹어도 날 것 사는 사람도 있다. 그런 교사는 어쩜 저렇게 이끼가 끼지 않은 새삥인가 싶을 정도의 나이만 먹었다. 절대 배우고 싶지도 되고 싶지도 않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런 교사는 어디에나 있다. 젊은 교사에 비해 많은 월급을 받으면서도 나이로 우대받고 일을 덜 하며 고학년은 꿈을 꾸지 못한다. 요즘 아이들이 기가 세서, 버릇이 없어서, 맞출 수가 없다고 혀를 차는 그들은 분명 그 월급을 받아도 되는가 싶다. 그들은 정말  마비노기 영웅전의 디렉터 한재호 씨의 "고인물은 썩는다."라는 말처럼 정체되거나 쇠퇴했으며 열정도 패기도 없다. 그냥 일반 교사들도 욕하는 나이만 먹은 대접받기 좋아하는 교사인셈이다.

고인물이 썩는 것은 단순히 한 자리에 오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산소 유입이 부족하여 유기물을 완전하게 분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혐기성 미생물의 증식으로 냄새가 난다고 한다. 만약 고인물이 산소를 끊임없이 유입한다면 한 자리에 고여 있어도 누구보다 생명력이 넘친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거침없어 스스로를 정화시키게 된다. 그들은 누구의 노래가사처럼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자세로 매일 새롭게 뛰고 있는 것이다. 웹툰에서 만나게 된 게임세계의 "고인물"은 오랫동안 활동하여 그 분야에 통달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 웹툰의 고인 물은 어느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누구보다도 새로운 방법으로 또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게임을 깨 가는 통쾌함을 선사한다. 구르지 않는 돌이지만 그 위에 오염된 공기를 정화하는 이끼를 키우고 미세먼지를 제거하고 적정한 습도를 유지한다. 어떤 "고인물"이 될지는 결국 본인의 선택이다.

  

  경험이나 나이의 문제가 아니다. "마음가짐"의 문제다. 젊은 교사 중에도 교사라는 안정적인 밥그릇에 안주한 채 어느 누구보다 빠르게 편함과 이기심의 이끼를 키운다. 이들에게 사명감이 없음은 기본,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적인 자세도 없다. 그들은 짧은 시간에 썩어가는 고인물이 되며 온몸에 이기심과 자만이라는 이끼를 덮어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결국 나이에 상관없다.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 이 일을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가르치는 일뿐 아니라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잘한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위험하고 어떤 문제에서 상대 탓만 할 때, 더이상 노력하지않을 때가 바로 썩은 물이 되기 위한 전조증상이라 깨달아야 한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누군가 나에게 어느 나잇대의 선생님이 가장 잘 가르치냐라고 묻거나 연륜이 있는 선생님이라 믿음이 간다고 하거나 젊어서 열정이 넘치지 않겠냐고 할 때 잠시 숨을 고른다. 그리고 답한다. 교사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 아니겠냐고.  나이가 아니라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답한다.

 나 역시 그런 고인물이 되지 않기 위해 매번 독서와 토론이라는 산소, 아이들과 나누는 진솔한 대화를 통한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나이 때문에 아이들에게 미안해하시는 그 선생님은 나보다 더 많은 사랑으로 아이들을 대하시고 더 많이 배우는 마음으로 노력과 정성을 들이시는 것을 알기에 곁에서 난 "파이팅"을 외친다. 그리고 그런 고인물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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