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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Jul 10. 2023

아이들의 연애

아이가 신체 자기 결정권이 있음을 알게 한다.

   고학년을 하다 보면 연애는 빠질 수 없는 아이들의 중대사이다. 애써 감추려 하지만 원래 사랑과 기침은 숨길 수 없는 법!! 조심스럽게 귀에 들어오기도 하고 주고받는 애정 어린 눈빛이 나의 레이더망에 걸려들기도 한다. 속으로는 '귀여운 것들' 하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는다. 가끔은 은근하게 또 가끔은 대놓고 둘의 연애사를 자연스럽게 끄집어낸다. 이름을 말하지 않지만 뉘앙스로 눈빛으로 '나는 알고 있다~' 말한다. 그냥 내가 알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알린다. 직접적인 개입을 하지 않아도 선생님이 알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아이들은 조심스러워진다. 규제하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선을 지킨다. 그들의 연애를 인정해 준다. 그럼 무안해하는 아이도 있지만 연애상담을 하기도 하고 고민을 털어놓는 아이도 많다. 어리지만 진지하다. 삼각관계, 어장관리, 양다리 등은 어른의 세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아직 어린데 뭘 아냐 한다면 그것은 아이를 독립적인 개체로 여기지 않는 것이거나 계속해서 어리길 바라면서 인정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가 집에 와서 누군가 사귄다고 하면 부모 입장에서는 뭐라고 해야 할까.


  "예쁘게 사귀렴."

  "공부에 방해되는 것은 아니겠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벌써 연애? "


나 역시 쿨한 엄마이고 싶은데 그것은 바람뿐이었다. 중학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는 아이가 누군가와 사귀기 시작한다고 했을 때, 좀 황당했으나 표시 내지 않으려 애썼다. 그리고 예쁘게 사귀라는 말대신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나열했다. 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보다 우리 집에서 허용되는 기준을 말해주었다. 책임을 강조하면서 학생으로서의 선을 지켜야 함을 강조했다. 만나는 동안의 설렘에 대해, 손끝이 스쳤을 때 얼마나 떨림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처음 손 잡는 것이 어려울 뿐, 그다음에는 일사천리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이해된다는 아이의 말에 많이 컸구나 했다. 많은 이야기를 해주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선물도 같이 사러 가고 이런저런 걱정되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러던 중 여러 일에 격정적으로 휘말리면서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그게 아이에게 많이 아팠을까 나는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 기간이 너무 짧아서 어떻게 헤어져야 하는지, 어떻게 마음을 갈무리할지 말해주지 못했다.

 

  무엇이 걱정이었을까. 어설프게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것을 따라 할까 봐 지레 겁먹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에게 솔직하게 말해준 나이 든 제자 녀석들의 말에 미리 상상하고 또 걱정했나 보다. 초등학생이 혹은 중등생이 사귀면 뭐 하냐고 물었을 때 아이들은 커플 데이트를 즐긴다고 하면서 서로 뽀뽀하거나 신체의 일부를 만진다고 말했다. 쿨하고 다 받아줄 어른처럼 굴었지만 사실 너무 이르다 생각했다. 더불어 나에게 이야기한 것보다 더 많은 스킨십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두려웠다. 어쩌면 진짜 걱정할 것은 그들의 스킨십의 정도가 아니라 만나고 헤어질 때 서로의 의사를 충분히 존중해 주느냐와 신체 자기 결정권에 대해 바르게 알고 서로의 선택을 존중해서 받아들이는 과정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서로의 의사를 절대적으로 존중하고 존중받아야 한다.

요즘 아이들은 모쏠에 대해 한심해한다. 연애에 대한 환상이 있고, 드라마와 영화에서 본 것을 따라 하고 싶어 하기도 한다. 좋아하는 마음을 인지하기도 전에 고백받은 것에 우쭐해서 사귀기도 하며 좋아하는 마음을 강조하며 그 마음을 받아줄 것을 강제하기도 한다. 좋아한다는 이유로 상대를 좌지우지하기도 하며 사귀고 싶지 않거나 헤어지고 싶은 상대를 존중하지 않기도 한다. 협박을 하기도 하며 과한 요구를 하기도 한다. 좋아한다는 이유를 앞세워 폭력적으로 다가가기도 한다. 이런 일은 어른들에게만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이런 연애를 하던 아이들이 커서 연애하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상대에게 격분하거나 집착하면서 괴롭히게 되지 않을까. 그렇기에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 아이가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권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상대에게도 자기 결정권이 있음을 알게 해야 한다. 그 결정권은 부모조차 어찌할 수 없는 것임을 확실히 알고 책임감을 갖고 스스로에 대해 결정하면 신중해지리라 믿는다. 그리고 충분한 이유와 함께 부모의 허용 범위를 알려주어야 한다. 어떤 부모는 단둘이 하는 데이트는 허용하지 않고 커플데이트는 허용해 주고, 귀가시간을 정해준다고 한다. 무엇보다 그 범위를 벗어나도 부모는 아이 편이라는 것을 알려주어 서로에 대한 신뢰감을 다져야 한다. 부모와의 신뢰감은 아이로 하여금 건강한 연애를 가능하게 하지 않을까.  


  사귀는 아이들을 귀엽게, 예쁘게 보는 것은 맞다. 그러면서 아이가 바른 연애관을 가질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아이의 신체 자기 결정권을 부모가 먼저 존중해야 한다. 나 역시 잘 되지 않는 부분이기는 하다. 아이가 싫다 해도 몸장난을 하거나 포옹을 한다. 연애를 하게 되면~하고 잔소리하는 것도 아직 아이의 신체 자기 결정권을 온전히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이제는 아이의 신체 자기 결정권이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의 신체결정권을 인정하게 되면 사귀지 말라, 사귀더라도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 대신 상대를 존중해주어야 하고 또 본인이 존중받는 연애를 하라고 말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중하게 거절하는 법도 알려주고 거절당해도 그것은 상대방의 의사이며 결정으로 받고 상처받지 않으면 좋겠다. 상대의 감정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의 감정도 중요하기에 잘 들여다보고 서로 인정해 주길 바란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사귀길 바란다. 예쁘게 잘 사귀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서로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면서 바른 연애관을 갖고 서로를 대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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