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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인순 Sep 07. 2023

펫티켓

함께 지켜야 할 산책 예절

"산책할까?"라고 하거나, 목줄을 꺼내 들면 깜순이는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현관문 앞에 달려 나가 앉아있다. 현관 앞에서 깜순이의 목줄을 단단히 채우고 문을 열면 목줄이 팽팽해질 정도 질주해서 집을 빠져나간다. 나는 가슴줄보다는 목줄을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깜순이는 산책 에티켓이 아주 좋은 편은 아니고, 특히 산책 초반에는 흥분도가 굉장히 높은 편이라 가슴줄로는 컨트롤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목줄과 가슴줄을 선택할 때는 복지적 측면을 고려하되 반려견의 성향과 위험요소를 모두 고려하여야 한다.

산책을 다니다 보면 많은 사람들과 크고 작은 교류가 생긴다. 가장 흔하게 만나는 건 아이들이다. 초등학교를 지날 때면 수많은 초등학생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모여든다. 사실 깜순이는 사나운 성격도 아니고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관대한 편이었지만, 아이들이 "물어요?" 하고 물으면 나는 항상 "응, 개니까 물 수도 있지!"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겁먹은 몇몇 아이들은 "문대~"하고 소리치며 달아났고, 그래도 한 번 쓰다듬어 보고 싶은 아이들은 "만져보고 싶은데... 물면 어떻게" 하면서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러면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먼저 손등을 개의 코 쪽으로 내밀어 개에게 나를 인식시키고, 손은 개의 머리 위로 치켜들지 않고 목 밑에서부터 등 쪽으로 조심스럽게 만지며 개와 인사하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아이들은 나의 설명에 따라 천천히 깜순이를 만지고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는다. 그렇게 교류한 친구들은 다음 산책 때도 잊지 않고 깜순이에게 올바른 인사를 해주었다. 요즘은 관심만 있으면 미디어를 통해서 또는 온, 오프라인의 반려동물교육 등을 통해서 좀 더 쉽게 이러한 것들을 배울 수 있는데 과거에는 타인의 개를 만지는데 양해를 구해야 한다거나 처음 보는 개을 만질 때 개물림사고 방지를 위해 조심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주변에서 쉽게 교육을 받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안타깝다고 생각했고 반려문화 인식교육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앞으로 오랜 시간 동안 많은 동물들을 만나게 될 어린아이들을 만났을 때만큼은 조금 더 이런 방법들을 알려주려고 노력했다.

깜순이의 산책 마지막 코스는 항상 인적이 드문 뒷동산이었다. 워낙 인적이 드문 곳이라 우리가 산책하는 동안 마주치는 사람이 없는 날이 많았기 때문에 종종 목줄을 풀어 자유를 만끽하게 해 주었다. 오프리쉬에 대해 약간의 핑계를 더 보태자면 당시에는 반려견운동장이 많지 않았고 특히 우리가 살던 지역에는 반려견운동장이 전무했다. 그래서 조금은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는 이 구간을 우리는 사랑했다. 대신 목줄을 하지 않더라도 거리를 조절하며 언제든지 사람을 만나면 목줄을 채울 수 있도록 했고 산길이라 통행로가 좁기 때문에 누군가 마주치면 목줄을 짧게 잡아 나의 오른발과 길가에 위치하도록 해서 사람들의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의했다.

언젠가는 이 산길에서 풍산개를 만난 적이 있다. 아마도 구간에 인적이 드물어서인지 풍산개 역시 목줄이 풀려있었다. 깜순이가 앞서 길을 뛰어오르다 먼저 풍산개를 발견하고 놀라서 주춤거리다가 내가 뒤쫓아 올라가자 든든함을 느꼈는지 커다란 풍산개를 향해서 짖기 시작했다. 깜순이가 짖어대자 풍산개도 금방 흥분해서 맞서 짖기 시작했다. 불상사가 벌어질까 무서워 얼른 깜순이를 안아 올렸는데, 이 녀석은 나의 그 행동든든함느꼈는지 더 심하게 짖어댔다. 풍산개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였고 나는 "안 돼", "기다려"를 외치며 진정시키려고 했는데 다행히도 우리의 소란한 소리를 듣고 풍산개의 반려인이 뛰어내려오셨다. 급하게 풍산개에게 목줄을 채우고 붙드는 동안 우리가 그 자리를 피할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사건은 큰 문제없이 종료되었지만 그날 이후로는 아무리 인적이 드물더라도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해 목줄풀어주지 않기로 했다.

깜순이는 산책 배변을 꼭 하는 편이라 똥봉지는 필수였다. 한 번은 정신없이 나오다가 똥봉지를 깜빡했다. 머피의 법칙처럼 깜순이은 산책 시작과 동시에 용변을 봤다. 배설물을 처리할 수 없으니 그 자리를 떠날 수도 없고,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어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길 가던 학생의 도움으로 잠시 목줄을 부탁하고 부리나케 근처 슈퍼에서 봉지를 구해와 해결한 적도 있다. 종종 산책을 하다 보면 산책로에 굴러다니는 배설물을 마주하게 된다. 특히 풀숲에는 거름이라며 안 치우고 가시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발효되지  않은 배설물은 독성 때문에 거름으로 부적합하다고 한다. 또한 보도블록 등 부식의 원인이 될 수 있으며, 위생적인 문제가 있다. 법적으로도 목줄 미착용과 배설물 미수거는 동물보호법 제16조 등록대상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5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가될 수 있다.

가끔은 골목 끝에서부터 "어머, 개야. 나 무서워!" 하며 개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이들이 두려움에 소리치거나 쭈뼛거리는 행동은 오히려 개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흥분도를 올려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나는 그런 상황이 되면 상대방이 잘 보이도록 목줄을 짧게 잡는 행동을 조금 과장되게 하여 상대방에게 안심하라는 시그널을 준다. 그리고 깜순이를 바짝 내 옆과 벽 사이에 위치하도록 하고 천천히 걷거나 잠시 멈춰 서서 상대방이 먼저 지나갈 수 있도록 한다. 이런 행동이 반복되다 보니 따로 교육하지 않았는데도 습관이 되어서 나중에는 인도를 걸을 때 깜순이가 스스로 벽과 내 사이로 걷게 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펫티켓’이라고 하며 반려인과 반려견에게 교육과 책임을 지운다. 하지만 나는 반려인과 반려견의 펫티켓뿐만 아니라 비반려인도 지켜야 할 에티켓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비반려인이 지켜야 할 에티켓은 타인의 반려견을 향한 관심을 끊는 것이다. 이것은 개물림사고를 예방하는 가장 중요한 비반려인의 행동이다. 개들의 오감은 사람의 오감보다 훨씬 예민하기 때문에 작은 움직임이나 소리에도 갑자기 흥분도가 높아질 수 있다. 하이톤의 목소리로 “너무 귀여워~” 하며 갑작스러운 스킨십을 시도하는 것이나 저 멀리에서부터 “개야, 너무 무서워” 하면 호들갑 떠는 행동은 모두 행위자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개의 흥분도를 높일 수 있는 행동이기 때문에 자칫 위험할 수 있다. 반려인과 반려견, 비반려인들이 모두 펫티켓을 지킨다면 함께 살기에 더 풍요로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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