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순이는 슈나우져다. 누군가에게 "슈나우져를 키우고 있어요." 하고 얘기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괜찮아요? 슈나우져가 3대 악마견이라는데"였다. '악마견'이라는 말을 누가 만들었을까? 애견인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하게 비글, 코커스패니얼, 슈나우져를 두고 '악마견'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아마도 견종의 성향과 우리나라 가정환경의 구조적 문제의 결합으로 발생하는 문제행동들이 그들을 악마견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개를 품종화할 때에는 목적을 분명하게 하여 행동특성이나 외형의 특성을 고정화했다. 우리가 흔히 '애완견'이라고 일컫는 시츄나 몰티즈와 같은 품종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미적 기준에 맞춰 품종화했다면, 비글, 코커스패니얼, 슈나우져는 사냥견으로 특화된 품종이다. 따라서, 당연히 체력이 좋고, 겁이 없다. 이것이 지금의 활동량이 많고 호기심이 많아 문제행동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비글, 코커스패니얼, 슈나우져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냥견으로 품종 개량된 대부분의 견종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이런 견종을 반려견으로 선택한 반려인이라면 숙명적으로 사냥꾼이 되어야 한다. 실제로 사냥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의 활동량을 채워준다면 반려견이 집에서 문제행동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냥개를 키우면서 관상용으로 개량된 견종과 똑같이 대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깜순이를 처음 집에 데리고 왔을 때에는 이런 공부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심지어 나에게 슈나우져는 '할아버지 개'라는 인상이 강해서였는지, 성격도 굉장히 신사적일 것이라고 내 멋대로 추측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내가 슈나우져라는 품종에 대해 공부하고 깜순이를 이해하기까지 많은 고생을 해야만 했다.
더구나 깜순이는 8개월령의 한창 호기심이 많고 활발한 개린이 시절에 우리 집으로 왔었기에 특히나 더 힘들게 느껴졌던 것 같다. 활동량이 많다 보니 온 집안을 하루종일 정신없이 뛰어다녔고, 하루에 백만 스물두 번 정도는 인형 던지기를 해야 했다. 잠시 외출이라도 하고 오면 온 집안이 뒤집어졌고, 전선들은 모두 깜순이의 개껌신세가 되어있었다. 어쩜 가방까지 뒤져서 엉망을 만들어 놓는지 정말 하루에도 열두 번씩 파양을 고민했지만, 이미 전 견주는 미국으로 떠난 후였다. '내가 아니면 널 누가 감당하겠니'라며 도를 닦는 심정으로 집을 치우곤 했다.
하루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니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온 집안이 쑥대밭이 되어 있었는데 그 사이에 선물 받은 지 일주일도 안 된 MP3가 분해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광경을 보니 정말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정도의 엄청난 분노가 치밀어 올랐었다. 사실 그전에도 디지털카메라 충전기 선을 씹어서 끊어 놓은 일,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을 갈기갈기 찢어놔 책값을 물었던 적도 있었다. 도 닦는 마음으로 참아보려고 해도 그런 날은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애를 붙들고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또 언젠가는 아침에 일어났는데 깜순이가 턱에 붙은 무언가를 떼어내려고 낑낑거리고 있길래 가보니 껌이 떡하니 붙어있었다. 쓰레기통을 곧잘 뒤져서 못 뒤지게 다용도실에 내놓기까지 했는데 어떻게 그 문을 열고 나가서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전 날 씹고 버린 껌이 턱에 붙어버린 것이다. 이미 털에 잔뜩 엉켜서 결국은 털을 가위로 잘라버렸다. 쥐 파먹은 것처럼 털이 잘려나가 너무나 우스운 꼴이 된 것을 보고 '쓰레기통 뒤지지 말라고 얘기했는데 말 안 듣더니 쌤통이다' 하며 한참을 깔깔깔 웃었던 적도 있다.
당시에는 '이래서 슈나우져를 악마견이라고 하는구나'라며 애견인 커뮤니티에서 떠도는 이야기들에 공감했었다. 하지만 깜순이와 12년이란 세월을 보내고 나니 '슈나우져는 악마견'이라는 말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관상을 목적으로 품종화 된 시츄나 몰티즈와 같은 견종과 비교했을 때, 사냥견의 특성 때문에 더 활동량이 많고 호기심도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부분을 반려인이 어떻게 풀어주느냐도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대체로 충분한 산책만으로도 이러한 문제행동을 확연히 줄어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견종과 상관없이 개린이 시절에는 모든 게 새로워서 탐색의 목적으로 혹은 이가 새로 나는 시기에 잇몸이 간지러워 해소의 목적으로 물고 뜯고 맛보고 즐기려고 하는데 이 시절은 퍼피 라이센스라고도 한다. 사람으로 치자면 아동발달단계 중 구강기와 비슷한 시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시기에 물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경험은 강아지의 인지발달에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이러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막으면 안 되는 시기라는 것이다. 이 시기에 이런 경험을 막는다면 나중에 더 골치 아픈 문제행동이 나타날 수 있으니 반려인과 반려견은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덩치가 큰 견종일수록 더 크고 힘도 세다 보니 상상 이상의 사고를 치기 마련이다. 이러한 정상행동을 문제행동으로만 몰아가기보다는 다양한 놀이나 산책을 통해서 탐색의 욕구를 해소해 주고, 이갈이 시기에는 다양한 제형의 개껌이나 약간의 얼음을 급여함으로써 해소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행히도 깜순이의 개린이 시절엔 내가 학생이라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깜순이는 거의 매일 산책을 나갈 수 있었고, 산책을 나가지 못하는 날에는 백만 스물두 번씩 인형 던지기를 해주면서 활동량을 맞춰주었다. 그리고 단단한 정도가 다른 다양한 개껌들을 그냥 집안에 막 굴리면서 본인이 선택해서 물고 뜯으며 즐길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렇게 개린이 시기가 지나가자 자연스럽게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일이 줄어들었다.
심지어 노령견이 되어서 서 있는 시간보다 누워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을 때에는 오히려 혈기왕성하게 저지레 하던 그 시간들이 그리워지기까지 했다.
언제나 반려견을 문제견으로 만드는 건 반려인의 무지와 게으름이라는 사실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반려동물을 데리고 오기 전에 내가 함께 살게 될 반려동물의 과거를 공부하고, 반려동물과 함께 현재를 살고, 미래를 그리는 숭고한 시간들에 게으름이 끼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후회가 없는 반려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