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
깜순이는 펫샵에서 교배를 했다. 첫 생리를 시작하고 중성화수술을 하지 않기로 선택하면서 세 번째 생식주기에 교배를 하기로 결정했다. 개의 생식주기는 6개월이므로 1년 후에 교배를 하기 위해 준비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펫샵에서의 교배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들에 어느 정도는 공감했었기 때문에 깜순이의 신랑감을 주변에서 구하고자 했다. 슈나우저를 키우는 가까운 지인이 없었기 때문에 지인의 지인들까지 수소문을 부탁도 하고, 깜순이를 처음 키우기 시작하면서부터 가입했던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신랑감을 수소문해 보았지만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지금도 우리나라에는 브리더라는 개념이 거의 없지만 당시에는 지금보다도 더 희소했던 시절이었다. 전문 브리더들은 대부분 대회수상견을 종견으로 하거나 희귀품종견을 고가에 교배를 해주는 형식이었다.
많은 고민과 여러 방면으로 방법을 강구했으나 결국 일반적인 교배를 손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펫샵을 통한 교배뿐이었다. 하는 수 없이 펫샵에서 교배를 하기로 하면서도 윤리적으로 교배를 한다는 업체를 찾고자 했다. 펫샵에서 교배를 하게 되면 일반적으로 생리시작일로부터 11일부터 3일간 2회 정도의 교배를 유도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교배를 유도한다고 한다. 암컷과 수컷을 강제로 붙들고 인위적으로 교배를 시키거나 정액을 기구를 이용해 암컷의 자궁에 주입하는 외과적 방법을 수의사자격이 없는 자가 시행하는 것 등이 그러하다. 묻고 또 물어서 종견을 보유하고 있으며 자연교배만 한다는 업체를 통해 교배를 통해서 진행하기로 했다. '보유종견'이라고 말씀하셔서 가정견과 유사한 환경에서 사육, 관리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혹시 종견을 사진으로라도 볼 수는 있는지 여쭤보았지만 거절당했다.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최근 합법번식장에서 벌어진 비윤리적인 사육, 관리로 죽어가던 천여마리의 번식견을 구조한 사건이 연일 보도되었다. 우리가 익히 '강아지공장'이라고 알고 있는 번식장은 과거 신고제로 영업할 수 있었으나 2018년 허가제를 도입하고 매년 감사를 통해 관리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법번식장이라는 곳에서조차 불법적인 사육, 관리, 유통으로 수천 마리의 동물들이 고통받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는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영국의 한 번식장에서 6년간 출산으로 고통받아오다 구조되어 18개월 뒤 죽게 된 루시가 있었다. 이 사건을 통해서 강아지공장 근절을 위한 루시법 운동이 일어났고 2018년 영국정부는 루시법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2022년 11월 연천의 허가 번식장에서 구조되던 중 사망한 루시가 있었다. 루시는 강제출산으로 인해 자궁과 질이 돌출되고 장기가 꼬여 2차 감염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사망하였으나 부검결과 심장과 간의 궤사, 지방간, 담낭 확장, 장간막 유착, 소장 내 염증, 장 꼬임 등으로 엉망이었다고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강아지공장철폐와 펫숍 금지를 위한 루시법이 발의되었다. 루시법은 펫숍이나 인터넷을 통한 동물의 매매를 금지하고 자격 있는 브리더에 의한 번식과 분양, 종모견 개별 등록 및 연간 판매 마릿수 제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의 루시법은 현재도 정부에 계류 중이라고 한다. 이번 합법번식장 사건으로 인해서 이 루시법 제정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또한 무허가 번식장, 변칙영업, 동물학대 등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함에 따라 내년부터 번식용 부모견도 의무등록하는 제도가 도입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건들을 접할 때 우리는 피해동물로 모견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이 안에는 자견과 종견이라는 피해동물들이 더 있다. 종견은 교배에 이용되는 수컷을 말한다. 종견의 처우 또한 비좁은 뜬장에서 제대로 된 관리 없이 번식을 위한 착취만 이루어진다.
내가 선택한 펫숍이 설사 강제교배를 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결국은 종견을 착취하는 비정상적이고 비윤리적인 산업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모든 산업구조는 수요가 없어야 공급이 줄어들게 된다. 나의 무지와 이기적 선택이 비정상적이고 비윤리적인 산업의 수요를 높이는데 일조했음을 통감한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현실을 알게 되었고 나의 잘못을 깨달았으며 더 이상의 루시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루시 프로젝트를 응원하고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