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덧과 먹덧
임신초기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소화기계의 이상으로 메스꺼움이나 구토가 유발되는 것을 입덧이라고 한다. 드라마 속에서 임신했음을 알리는 표현으로 음식 앞에서 헛구역질을 하는 장면을 흔하게 보았을 것이다. 입덧을 경험해 보았다면 실제에서는 엄청 고통스러운 시간임도 알 것이다. 또한 입덧의 일종으로 음식을 섭취할 때 오히려 메스꺼움이 덜하다고 느끼기도 하는데 이를 임산부들 사이에서는 먹덧이라고 한다. 이러한 입덧을 과연 개도 할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개도 입덧을 한다. 개의 임신기간은 9주, 약 60일이다. 보통 2-3주 정도의 임신초기에 입덧을 하며 식욕부진이나 구토의 증상을 보일 수 있다.
깜순이는 교배를 다녀온 후 평소와 다름없이 발랄한 모습을 보이고, 심지어 우다다도 서슴없이 하고 놀았기 때문에 임신에 실패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그런데 2주 정도 지나자 유두가 도드라지는 것 같더니 급격히 식욕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몇 일사이에 그마저도 전부 게워내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개가 입덧을 한다는 사실도, 입덧이 진짜 구토를 하는 것이라는 것도 전혀 몰랐기에 뭔가 탈이 났다고 생각했다. 하루종일 사료는 한 톨도 먹지 못하고 물만 먹더니 저녁나절부터는 물조차도 먹지 못했다. 밤새 위액까지 토해내는 모습에 정말 큰일이 날 것만 같은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깊은 새벽, 깜순이가 다니던 동물병원 원장님께 울며 전화를 드려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원장님은 어차피 병원으로 와도 임신 중에는 약을 쓸 수가 없으니 일단은 물에 설탕을 한 숟가락 타서 먹여보고 구토가 멈추는지 확인해 보라며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전화해도 좋다고 나를 다독여주셨다. 설탕물을 한 컵 타서 깜순이 물그릇에 주고는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구토가 완전히 멈추지는 않았지만 축 처져있던 깜순이가 조금씩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식욕이 떨어져 사료도 잘 먹지 않아서 사료를 물어 불려주며 조금이라도 잘 먹을 수 있게 도왔다. 그렇게 일주일쯤 지나니 입덧이 끝났는지 식욕이 좀 돌아오는가 싶더니 급격히 식욕이 왕성해지고 배도 불러오기 시작했다. 내내 아무것도 못 먹고 처져있다가 잘 먹고 잘 노는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입덧의 시기를 넘기고 안정기에 접어든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며 치킨을 먹다가 뭔가 이상한 느낌에 돌아보니 식욕이 왕성해진 깜순이가 내 손에 들린 닭다리를 탐하고 있었다. 깜순이의 건강을 위해서 사람 음식, 특히 간이 된 음식은 절대 급여하지 않는 것이 내 철칙이었고 깜순이 역시 이것을 잘 알고 있어서 내 음식에 눈독을 들이는 일이 없었는데 내 닭다리를 탐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다. 혼내려다가 이내 깜순이는 임신 중이니까 먹고 싶은 건 다 먹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 치킨의 튀김옷을 벗겨내고 살을 발라 물에 헹궈서 깜순이와 나눠먹었다.
그렇게 입덧의 시기가 지나고 출산예정일이 보름쯤 남았을 때에는 배가 급격히 불러와 몸이 무거운지 깜순이는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누워있는 깜순이를 보고 있으면 배 속 아기들의 태동이 육안으로 보일 정도였다. 일반적으로 동물병원에서 초음파는 임신 25일 이후, 엑스레이는 임신 45일 이후에 확인하고 출산계획을 세우게 된다. 당시 나는 발생번식학을 전공하고 있었고, 돼지의 분만을 도왔던 경험도 있었기 때문에 겁 없이 직접 분만을 도우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개의 분만을 돕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임신기간 동안 틈틈이 개의 출산에 관한 책을 보면서 전공공부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
출산 전에 배 속에 산자수를 확인해야 출산을 도울 수 있기 때문에 구비되어 있던 동물용 초음파장비를 이용해 직접 초음파를 보는 특별한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초음파를 통해 본 깜순이의 배 속에는 3마리의 강아지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육안으로도 충분히 태동이 느껴지는 시기였지만 초음파를 통해 새끼들을 만나보니 깜순이의 출산이 한층 더 실감이 나는 것 같았다. 깜순이는 이러다가 배가 터져버리는 건 아닐까 할 만큼 배가 부르고 출산예정일을 며칠이나 넘기면서 설렘이 초조함으로 변해갈 때쯤 드디어 출산의 징후가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