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나우저의 산자수는 평균 6마리 정도이고 일반적으로 대형견일수록 더 많은 산자를 출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산 전 복중 태아의 수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출산을 준비하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몇 마리가 있는지 알아야 출산의 종료와 태반의 배출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깜순이는 수의사의 도움 없이 내가 직접 분만을 돕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서 출산 준비를 하였다.
출산예정일을 앞두고 침대 옆에 산실을 마련했다. 매뉴얼적으로는 은밀하고 분만견이 안심할 수 있는 장소에 산실을 마련해 주도록 권고하지만 깜순이는 애초에 침대에서 같이 생활하였고, 빈 방에 혼자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깜순이에게는 침대 옆이 더 안정을 느낄 수 있는 장소라고 판단했다. 출산예정일에 딱 맞춰 출산을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예정일 전에 미리 멸균된 실과 가위, 탯줄집게, 라텍스 장갑, 소독약 등도 미리 구비해 놓았다.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출산예정일이 지나가는데도 깜순이에게서는 분만의 징후가 전혀 나타나지 않아서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출산예정일을 일주일쯤 넘긴 날 밤, 깜순이가 갑자기 집 안 이곳저곳을 빙글빙글 돌더니 침대 위에 올라가서 베개를 이리저리 헤집으며 분만을 준비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드디어 때가 왔음을 감지하고는 깜순이를 번쩍 들고 산실로 향했다. 깜순이는 산실 안을 빙빙 돌더니 이내 진통이 시작되었는지 불편한 기색을 보이며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자세로 낑낑대기 시작했다. 미리 준비해 두었던 분만 준비물들과 따뜻한 물과 수건을 챙겨 깜순이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저 응원의 눈빛만 보낼 뿐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시간이 지나고 깜순이의 산도로 양막에 싸인 강아지의 머리가 불쑥 나왔다. 깜순이가 몇 차례 더 힘을 주자 첫 번째 강아지가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 강아지가 쑥 하고 빠져나오는 느낌이 생경했는지 깜순이는 화들짝 놀라며 급기야 산실을 뛰쳐나가 버렸다. 덩그러니 남겨져 산실을 나뒹굴고 있는 강아지를 안아 들고는 탯줄을 자르고 젖은 몸을 수건으로 닦여 산실에 다시 잘 눕혀놓았다. 그리고 추격전 끝에 도망갔던 깜순이를 안아 들고 다시 산실로 돌아왔다. 산실 안의 깜순이와 새끼 강아지의 어색한 기류에 직접 새끼를 깜순이의 품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내 강아지는 본능에 이끌린 듯 젖을 찾아 물려고 애썼지만 깜순이는 그런 강아지의 존재가 여전히 불편한지 자꾸만 몸을 피했다. 그리고 한 시간 여가 흐른 뒤 두 번째 진통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다행히도 새끼를 낳고 산실을 뛰쳐나가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탯줄을 끊거나, 새끼를 핥는 등의 행위를 할 의지가 없었다. 두 번째 강아지도 내가 탯줄을 자르고 몸을 닦이고 깜순이의 품으로 밀어 넣었다. 곧이어 세 번째 진통이 이어졌다. 3-4시간 동안 이어지는 분만에 깜순이가 지쳤는지 좀처럼 힘을 주지 못하더니 강아지 목이 산도에 걸린 상태로 30분이 넘도록 분만에 진척이 없었다. 양수도 터지지 않은 채로 머리가 걸린 강아지는 움직임도 없었다. 이 상태로 너무 오래 방치되는 것 같아서 결국 강아지를 머리를 잡아 살살 꺼내고, 양막을 벗겨냈지만 여전히 움직임이 없었다. 혹시나 죽은 건 아닐까 걱정하며 입안과 콧속에 들어 찬 분비물을 빼내고 강아지의 온몸을 수건으로 닦아내고 비벼주자 이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도하며 탯줄을 정리하고 깜순이의 태반이 3개가 모두 나온 것을 확인하고서야 6시간 여의 길고 긴 분만이 종료되었다.
그렇게 한시름 놓은 줄 알았는데 문제는 그다음 날 바로 발생했다. 깜순이는 출산과정에서도 새끼 강아지들에 대한 모성적 반응이 없었는데 출산 후에도 여전히 젖을 물리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새끼들은 배고픔에 달려드는데 깜순이는 몸을 피하더니 이내 산실을 박차고 나가버리기까지 했다. 일단은 깜순이를 붙들고 강제로라도 수유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몇 번의 수유가 깜순이에게는 꽤나 스트레스였는지 이내 공격적인 반응까지 보이기에 이르렀다. 나는 강아지용 초유와 젖병을 구매해 인공포육을 시작해야만 했다. 강아지도 갓 태어나서 2주간은 2-3시간에 한 번씩 수유를 해줘야 하기에 몇 날 며칠을 밤새워 분유를 먹였다. 또 다른 문제는 이 시기의 강아지들은 스스로 배변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어미가 생식기을 자극해 배변을 도와야 하는데 깜순이는 이마저도 전혀 할 생각이 없었다. 이 역시 내가 따뜻한 물에 적신 손수건으로 강아지들의 생식기를 자극해 배변을 도와야 했다.
다수의 연구에 의해서 우리가 모성이라고 느끼는 감정 역시 호르몬의 영향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모성애에 관여하는 호르몬으로 대표적인 것이 도파민, 옥시토신, 프로락틴이다. 여성이 출산을 하는 과정에서 흥분전달물질인 도파민과 자궁수축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분비되며, 젖을 물리게 되면 유선자극 호르몬인 프로락틴이 분비되는데 이 호르몬들의 수치가 높아지면 아이의 울음소리에 예민해지는 등 우리가 ‘모성애’라고 정의하는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행동양상을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엘리자베트 바탱테르의 저서인 ‘만들어진 모성’에서 18세기말 산업화가 일어나면서 인구증식이 곧 국부라는 이데올로기가 강조되면서 여성을 모유의 공급처, 집안의 붙박이로 남겨두려는 사회적 움직임에 따라 여성의 의무, 본능이 탄생했다고 말한다. 즉, 모성애는 본능이 아니라 사회화에 의해 만들어진 산물이라는 주장이다.
나 역시도 모성이라는 것이 당연한 본능인 줄 알았다. 배우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분만을 하고, 탯줄을 끊고, 젖을 물리고, 자식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것인 줄 알았다. 깜순이의 출산과 자견 양육의 과정을 보내면서 모성은 본능이 아님을, 강요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