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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인순 Sep 24. 2023

분양

떠나보내는 마음

자견들은 약 2주간 2-3시간 간격으로 젖을 먹는데 일반적으로 생후 30일까지 젖먹이 시기이다. 이 시기에 사료를 물에 불려 먹이는 이유식을 시작으로 서서히 건사료로 넘어간다. 단미나 단이를 하는 품종의 경우 일반적으로 신경의 발달이 미숙한 생후 2주 정도에 시행한다. 생후 6-8주에 첫 기본접종을 시작으로 약 2주 간격으로 4-5회의 기본접종을 완료한다.

자견에게 젖먹이기를 거부하는 깜순이 덕분에 졸지에 시작된 인공포육으로 2-3시간 간격으로 분유를 먹이려다 보니 나의 삶이 피폐해지고 있었다. 이유식을 시작하면 젖먹이는 간격이 조금 늘어난다고 하여서 강아지들이 깜순이의 사료에 관심을 보이는 기미를 보이자마자 이유식을 시작하였다. 일반적인 슈나우저 출생견이 손바닥의 절반정도 크기라고 하는데 깜순이의 자견들을 태어날 때부터 내 손바닥을 가득 채우고도 약간 넘칠 만큼 커서 그런지 눈도 일주일 만에 뜨고 2주 만에 급여하기 시작한 이유식도 탈없이 잘 먹어주었다.

슈나우저는 일반적으로 단미를 시행하는 품종인데 앞에서도 이야기하였지만 불필요한 수술을 지양하는 가치관을 지니고 있었다. 최근에는 나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단미를 하지 않은 슈나우저를 종종 볼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꼬리가 긴 슈나우저는 쉽게 볼 수도 없었고, 설마 있다고 하더라도 단미 된 슈나우저가 기본값이었기 때문에 꼬리가 길다는 이유로 믹스견으로 오해받는 시절이었다. 하물며 깜순이의 자견들은 이미 분양처가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나의 가치관만 주장하기는 어려운 입장이었다. 결국 남들이 그러하듯이 2주 차에 단미수술을 하기 위해 병원에 방문했다. 10분이면 끝나는 아주 간단한 수술이라며 수술방의 문이 닫혔다. 수술방 문 앞에서 들은 강아지들의 절규는 길고 길었고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남았다. 6 주령에 1차 기본접종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강아지들과의 이별을 준비해야 했다. 

슈나우져의 평균 산자수가 6마리이고, 깜순이의 형제가 12마리였던 것을 생각하면 깜순이의 자견들까지 모두 내가 감당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깜순이의 교배를 계획하면서부터 분양처를 미리 물색해 두었다. ‘자견들의 소식을 종종 들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관계일 것’이 내가 분양처를 정하는 유일한 기준이었다. 그렇게 5명의 분양대기자들이 순번을 정해 대기를 했다. 1순위는 나의 본가 부모님 댁이었고, 2순위는 가까운 지인의 본가 부모님 댁, 3순위는 사춘기가 시작되는 아들이 있는 지인의 직장상사, 4순위가 나였고, 5순위는 친구였다. 우리는 깜순이의 교배부터 한 마음으로 깜순이의 임신과 출산을 기도했다. 우리의 바람대로 깜순이는 3마리의 건강한 강아지를 무사히 출산하였고, 깜순이와 자견의 알콩달콩한 삶을 기대했던 나에게는 아쉬운 결정이었지만 처음 정한 순서대로 분양을 가기로 했다. 강아지의 젖먹이 시기와 사회화 시기를 고려하여 2개월 후 2-3차 기본접종을 한 다음으로 분양시기를 결정했다. 우리 부모님이나 지인의 부모님은 반려생활의 경험이 있으셔서 이미 분양시기에 맞춰 만반의 준비를 하고 설렘 속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내는 마음은 또 그런 것이 아닌지라 믿을 만한 분들이라 분양하기로 결정해 놓고도 재차 불상의 사유로 파양이 필요하다면 꼭 다시 돌려보내 달라고, 잘 지내는지 꼭 소식을 전해달라고 부탁하고 또 부탁했다. 그리고 셋째가 분양 가기로 한 집은 반려생활이 처음이고 반려견의 관리와 책임을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드는 아들이 맡겠다고 하여서 노파심에 분양 전 날 반려견 관리의 기본적인 내용들과 2달간 함께 생활하면 관찰한 셋째의 특징 등을 조목조목 기록하다 보니 4장이 넘는 장문의 편지를 적었다. 편지의 말미에는 반려생활 중 어렵고 궁금한 것들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는 당부와 부탁을 꾹꾹 눌러 적었다.

그렇게 두 달여의 달달하고 말랑말랑했던 아기 강아지들과의 시간이 지나고 이별의 날은 어느새 성큼 다가왔다. 분양 보내는 날 아침, 모성애라고는 코딱지만큼도 없던 깜순이도 이별을 직감했는지 강아지 주변을 서성이며 낑낑거렸다. 강아지를 보내고 돌아온 집이 어찌나 허전해 보이던지 자식들의 출가시킨 부모의 마음이 이쯤 되지 않을까 짐작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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