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왕자와의 지난 추억을 적으면서 몹시 아픈 슬픔에 빠져버렸다. 나의 친구가 양을 데리고 내 곁을 떠나가 버린 지도 어언 6년이 흘렀다. 이 친구의 이야기를 지금 여기에 쓰는 것은 그 친구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 친구를 잊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누구나 친구다운 친구를 갖는 건 아니다. 만일 내가 그 친구를 잊는다면 나도 어쩌면 숫자에만 관심이 있는 어른들과 같은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나는 어린 왕자를 무척 좋아해 몇 차례나 재독 했음에도 기억에 남지 않았던 구절이었다. 이 글쓰기를 시작할 무렵 어린 왕자를 재독 하면서야 눈에 들어왔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아마도 깜순이를 잊지 않기 위함이지 않을까.
깜순이는 운명처럼 내 삶에 들어왔다. 책임감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시작된 반려생활이었다.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를 매 순간 실감했다. 어떤 날은 족쇄처럼 느낀 날도 있었다. 그땐 미처 몰랐다. 오로지 책임감으로 버틴 날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보니 깜순이는 내 삶의 원동력이었고, 위로였고,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주는 유일한 존재였으며, 함께했던 모든 시간들을 찬란하게 빛나게 해 주었다. 깜순이는 나에게 어린 왕자이자 장미였다. 나는 깜순이를 통해서 성장했고,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깜순이를 통해서 배운 사랑과 세상을 보는 법을 잊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는지 모르겠다. 막상 글을 쓰다 보니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던 펫로스의 슬픔, 죄책감, 아쉬움과 같은 감정들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기분을 느꼈다. 어쩌면 깜순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 6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상실을 완벽하게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던 나에게 치유의 작업이 되었던 것 같다.
깜순이를 통해 배운 더 많은 세상을 소개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나에게 삶과 사랑,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법을 알려준 깜순이에게 이 글을 바친다. 또한 이 글들이 반려동물과의 삶을, 사랑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