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놀이, 골목의 시간
"영희야, 노 올-자!"
누군가의 우렁찬 외침이 골목을 울리면, 그 말은 곧 신호탄이 된다. 어느새 동네 꼬마들이 골목으로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반질반질 닳은 운동화, 튀어나온 무릎의 반바지, 땀이 배어 눅눅한 티셔츠. 그런 모습들이 모이면 어느새 골목은 작은 축제의 장이 된다.
우리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단연 ‘경찰과 도둑’이었다. 규칙도 단순하고, 역할도 명확해서 누구나 함께할 수 있었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 우리는 둥글게 모여 "데덴-찌!"를 외치며 손을 앞으로 내민다. 손바닥이 하늘을 향한 아이들과 땅을 향한 아이들로 자연스럽게 편이 갈리고, 눈짓과 장난기가 오가는 그 짧은 순간에도 우리는 이미 마음을 주고받고 있었다. 간혹 인원이 맞지 않으면 언니를 따라 나온 어린 동생이나 달리기가 느린 친구가 ‘깍두기’가 된다. ‘깍두기’는 어쩌면 그 시절 우리가 배운 첫 번째 배려였다. 잘 뛰지 못하고, 숨는 데도 서툰 친구들이 게임에서 완전히 소외되지 않도록 만들어진 룰이었다. 술래에게 깍두기는 언제든 손쉽게 잡을 수 있는 약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도망갈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찾았지만 눈감아주는 여유 속에는 경쟁보다는 함께 노는 즐거움을 더 소중히 여겼던 마음이 담겨 있는 배려의 상징이었다.
게임이 시작되면 도둑 편 아이들은 순식간에 골목으로 흩어진다. 그들은 높다란 담장을 다람쥐처럼 넘고, 좁은 틈 사이로 유연하게 몸을 숨긴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높이의 담벼락도, 그때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경찰 편은 숨을 몰아쉬며 도둑을 쫓고, 누군가 “잡았다!” 소리치면, 잡힌 도둑은 골목 모퉁이에 만들어 놓은 ‘감옥’에 갇혀 동료들을 응원한다. 결국은 모두가 잡히고 경찰의 승리로 게임은 끝난다. 하지만 곧바로 역할을 바꿔 다시 게임이 시작된다. 그렇게 쫓고 쫓기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덧 해가 지고, 골목에는 붉은 저녁노을이 내려앉는다. 바람결에 밥 짓는 냄새가 실려 오고, 아이들의 마음엔 슬슬 조급함이 깃든다. 아이들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게임을 아쉬워했지만, 곧 “철수야, 밥 먹어라!” 하고 집집마다 엄마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 목소리를 애써 못 들은 척한다. 조금만 더 놀고 싶은 마음, 아직 끝나지 않은 판을 완성하고 싶은 마음이 발길을 붙든다. 하지만 이내 더 날카롭고 단호한 외침이 들려오고, 아이들은 내일도 이 골목에서 또 만나자는 눈빛을 주고받으며 하나, 둘 아쉬운 발걸음을 뗀다. 아이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서야 골목엔 조용한 어둠이 내려앉는다.
시간은 흘러 그 골목은 이제 낯선 건물들에 가려졌지만, 내 기억 속엔 여전히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발자국이 또렷하다. 그 시절 친구들과 나누었던 배려와 우정, 그리고 함께했던 시간은 그 어떤 놀이보다 값진 추억으로 빛난다. 가끔은 문득 그 골목이, 그 소란스러운 저녁놀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