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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정운 May 12. 2021

90년생 이야기

제주도로 도망간 백수, 그리고 한 달이라는 시간

4월 초 어느 날


 굴지의 대기업은 아니지만, 모두가 그 정도면 괜찮지 하는 나름 안정적인 직장, 그리고 12월 승진 0순위 약 15% 연봉인상, 그냥 그렇게 일하면서 청약 넣고 당첨되면 모은 돈과 대출로 내 집 마련! 30대 초반이 이룰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테크트리....를 눈앞에 두고 4월 초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출장에서 돌아온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사직서를 내는 것이었다. 왜냐고? 솔직히 말하면 나도 모르겠다. 굳이 이유를 꼽으라면 100개도 더 댈 수 있지만, 무엇 때문이라고 확실히 말하기엔 너무 복합적인 것 같다.

 (회사에 있는 또라이 부서장, 하는 일에 비해 부족한 대우, 월급루팡과 나의 연봉 차이, 업무 과중 등등)


 물론 회사에서도 가성비 좋은 직원을 그냥 보내려 하진 않고 회유책을 쓰지만, 하루도 안 가 말 바꾸며 열통을 터트리는 또라이 부장의 태도를 보고 다시 생각해 본다는 말을 번복하고 사직서를 결재판에 끼운다.

 (퇴사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냐고 일주일 휴가 다녀오라더니 다음 날 자기 골프치러 가게 수, 목, 금만 가란다.)


 분명 다시 다닌다고 해도 얼마 못 가 같은 이유로 한계를 맞이할 것이 뻔하다. 이젠 많이 지친 것 같다. 아니 더  못 참겠다. 그리고 반복되는 출근과 퇴근, 크게 바뀌지 않는 무료한 삶...인생은 한 번뿐이라는데 한 번뿐인 내 인생을 이렇게 쓰는 게 맞는가 라는 물음표도 이번 결정에 큰 파이를 가져갔다. 그렇게 나는 두 번째 직장을 4년 6개월이라는 시간을 끝으로 나오게 됐다.



제주도? why?

 왜 제주도를 한 달이나 가? 한 달이나 볼 게 있나? 한 달 살기 유행 지난 거 아니야? 라는 질문을 한 달 살기를 계획하거나 실천한 사람들 대부분이 들어봤을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그냥 "쉬러" 였다. 그냥 쉬러 한 달을 제주도에 가는 것이다. 여행이 아닌 마음과 몸의 휴식을 위한... 솔직히 제주도가 너무 좋아서 제주도에 꽂혀서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이 시국이 아니었다면 어디 한 달 유럽이나 미국 서부로 여행을 갔을 것이다. 나는 처음 보는 풍경과 동네를 좋아하고 안 해본 경험을 해봤을 때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이 시국에 어디를 가도(물론 자가격리 안 하는 소수의 관광지도 있지만 돌아오면 내돈내산 2주 격리 필수) 제대로 된 여행을 할 수 없을 것이고 나 또한 세계 질병 전파에 한몫을 담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제주도로 한 달 살기를 결정했다.



제주도 한 달 살기 준비

자동차 탁송 (490,000원 인천-제주 왕복)

숙소 (약 1,100,000원 호텔&게스트하우스)

구명조끼, 스노쿨링 장비  (약 40,000원)

비오는 날 읽을 책 (읽어야지 하고 책상에서 1년 묵음)

한 달 돌아가며 입을 정도의 충분한 옷과 속옷 양말 (속옷은 30개가 없어 2번 세탁)

혹시 몰라 챙기는 수건

전기면도기, 보조배터리,  세면도구, 로션, 썬크림, 비비크림, 렌즈통, 안경, 상비약

선글라스 (5년전 면세점에서 삼)

캠핑의자 (준영이 협찬)

퇴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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