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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정운 Jul 26. 2021

90년생 이야기

제주도로 도망간 백수, 그리고 한 달이라는 시간



섭지코지



 오늘의 조깅코스. 성산이 보이는 해안도로를 따라 무작정 걸었다. 이제 아침엔 더워 도저히 뛸 힘이 없다. 10분 걷고 2분 뛰고 이런 식...? 이젠 몸이 녹는다 녹아.


 

아침 7시 한가한 도로


 이른 시간인데 배낭을 메고 혼자 걷고 있는 여행객들과 뒤에서 마라톤 복장으로 함께 뛰어 오는 남녀 한쌍이 보인다. 땀 뻘뻘 흘리며 뛰는 그들을 보며 나도 힘내서 같이 뛰기 시작했다.


 목표는 성산까지 걸어서 가는 것이었는데, 가다 보니 아니다 싶었다. 금방 도착할 것 같던 성산은 가도 가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결국 목표를 수정해서 나 혼자 산다에서 장도연 씨가 한치와 맥주를 마시면서 유명해진 슈퍼 근처까지만 갔다가 오기로...


잠시 쉬는 중...


 되돌아가는 길에 너무 힘들어 바로 옆에 쳐져있는 펜스 위에 앉아 바다를 구경하며 잠시 숨을 돌렸다. 이젠 주위에 지나가는 사람도 하나 없고 가끔씩 지나치는 버스만이 나와 함께 해주었다.


 쉬는 것도 잠시 다시 멍하니 걷다 보니 어느새 숙소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씻고 주섬주섬 짐을 챙긴다. 하루만 묵는 숙소라 짐을 많이 안 풀어서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다.


 밖으로 나와 배도 고프고 아침에 뭐 먹을지 고민하는데 내차 맞은편에 스쿠터 뒤에 혼자 짐을 묶고 있는 분이 보였다. 아무래도 여자들이 맛집 같은 건 잘 아니까 근처에 괜찮은 곳이 있을지 물어봤는데, 그분도 모르겠다고 하셔서 다시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아침은 그냥 지나가다 보이는 곳에서 먹기로 하고 섭지코지로 향했다. 가다가 중간에 기사식당이 보여 검색해보니 가성비도 좋고 맛도 좋다는 평이 많아 이곳으로 아침밥 도전!!!


 

일오반 식당 백반정식


  

주문한 백반에는 제육과 생선구이가 나왔다. 8천 원에 이 정도라니 진짜 너무 만족스러웠다. 생선은 뭔지 모르겠는데 우럭인가...? 정신없이 먹다 보니 사장님한테 물어볼 생각도 못했다.


 게눈 감추듯 순삭 하고 사장님께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인사 드리 린 후 섭지코지로 다시 출발~


 (사장님이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셨는데 그 정도는 아닌데...?라는 표정으로 나의 격한 반응에 당황하셨다.)


  섭지코지 주차장 가는 길부터 절경이었다. 차도 없어 창문을 열고 천천히 구경하면서 갔다. 도착한 섭지코지는 오전부터 사람이 꽤 많았지만 능숙한 주차요원 아저씨들 덕분에 쉽게 주차하고 올라갈 수 있었다.


 (제주도 관광지 주차시스템은 진짜 최고!!!!)


흔한 섭지코지 풍경

 

 아침부터 힘을 뺐지만 여태 갔던 오름들과 험한 코스에 비하면 섭지코지는 지칠 정도는 아니었다. 정상에는 그네가 있는 커다란 포토존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 줄 서서 찍고 싶진 않아 눈으로 구경만 하고 내려왔다.


 혼자 다니니까 아무래도 사진 찍어 달라는 요청이 많았다. 귀찮기보다는 어머님들이 사진 이쁘게 찍어줘서 고맙다고 할 때마다 뭔가 뿌듯했다. 제주에서 사진 찍는 스킬이 많이 늘긴 한 거 같다.


 다시 내려온 주차장에서 어디로 갈지 생각하느라 10분은 쓴 거 같다. 오늘은 어디를 가냐를 떠나서 숙소도 예약하지 않아 어디서 잘지도 잘 모르겠다.


 우선 다시 보고 싶은 김녕 바다로 가볼까???






뜻밖의 동행


  섭지코지가 있는 5시 방향에서 김녕이 있는 1시 방향까지 온 이유는 그냥 단지 김녕 바다에서 멍 때리며 책도 읽고 바다 구경을 하기 위함이었다.


처음 시도해본 라테

 

 

 오늘은 새로운 메뉴를 먹어보고 싶어 시그니처 메뉴에 적혀있던 메뉴 중에 색이 제일 예쁜 걸로 골랐다. 김녕 바다색과 너무 잘 어울리는 라떼. 색 때문에 맛은 별로일 것 같았는데, 다행히 맛도 나쁘지 않았다.


 창가 자리는 사람이 많아 그 뒷자리에 앉아서 바다를 보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 보다가 막히면 바다 구경하면서 머리도 식히고 책 - 바다 - 책 - 바다 머리 아플 일 없는 진정한 백수의 삶... 행복 그 자체...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바다 위에 날아다니는 아저씨들도 많이 보이고 요트도 보여 구경할게 더 많았다. 그렇게 앞에 있는 유리창을 통해 구경하고 있는데 낯익은 뒷모습이 보였다.




멍 때리기 좋은 김녕 바다


  

 물 가지러 가면서 보니 앞 유리 명당에 자리를 잡은 사람이 유진 씨였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백수 되자마자 제주도로 오셨던... 그분)


 명당이 탐나서 보단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했다.


 "어 여기서 만나네요 유진 씨!!"


 유진 씨도 "우와 여기서 만나네요" 라며 반가워했다.


 유진 씨의 명당자리로 자리를 옮겨 다시 바다 구경을 했다. 오래 본 사이는 아니지만 뭔가 엄청 편했다. 유진 씨에게도 나쁘지 않은 호감이 있어 그랬을 수도...? (이성적으로 가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이틀 전 게스트하우스에서 내가 돈 내고 뿜빠이하기로 한 거 안 주고 튄 경상도 사투리 쓰는 X도 있었는데 유진 씨는 5천 원 더 주신 거 보고 괜찮은 사람이다 싶었음.)


 유진 씨도 그때 그때 느낌을 살려 간단한 일기 형식의 글을 쓰고 있었고, 제주를 떠나기 전에 시를 몇 개 쓰는 게 목표라고 했다. 다이어리도 보여주셨는데 예쁜 글씨로 쓴 일정과 글들이 썩 괜찮았다.


 그렇게 카페에서 쉬다 보니 점심시간이 살짝 넘어갔다. 유진 씨는 닭머르 해안이라는 곳을 찾아 그곳으로 동선을 짰는데, 중간에 내가 알아본 회국수 맛집도 있어 오늘 오후를 같이 보내기로 했다.


 (동선은 회국수 - 함덕해변 - 닭머르 해안)


  네비에 회국수 집을 찍고 가게 앞에서 보기로 했는데, 얼마나 빨리 달린 건지... 나보다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던 유진 씨에게 배가 많이 고프셨나 봐요.... 라며 장난을 치다 입구로 들어갔다.


 

 (입구부터 수많은 연예인들 싸인이 가득 차 있었는데 대부분 누구...?라고 하게 되는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시원한 회국수


 

 점심시간이 지나긴 했어도 맛집 치고 사람이 얼마 없어 조금 불안했는데, 그래도 회국수와 같이 나온 파전도 나쁘지 않았다. 솔직히 회국수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제주에서 한 번은 먹어보려고 했었는데 유진 씨 덕분에 회국수도 먹어보고 어떻게 일정이 맞아 같이 다닐 수 있어 다행이었다.


 운 좋게 전날 주식 사놓은 것도 많이 올라서 점심은 내가 산다고 하니 정말 좋아하셨다. (5천 원으로 산 호감이 회국수가 될 줄은 유진 씨도 몰랐겠지...?)


  함덕해변은 한 번도 안 가봤다가 내가 게스트하우스에서 김녕이랑 함덕 노래를 부른 덕분에 가보려 했다 하셨는데, 도착해서도 이렇게 예쁜 곳이 있는지 몰랐다고 좋아하셨다.


 서우봉 산책로를 올라가긴 힘들 거 같다고 하셔서 밑에서 서로 사진만 찍어주고 해변 구경하는 것으로 마무리. 콘셉트 사진 찍으려고 사진기를 가져왔다며 꺼내셨는데 여태 찍어달란 말을 못 해서 한 번도 못쓰셨다고...


 나 덕분에 써본다고 너무 고맙다고 하셨다. ㅋㅋㅋㅋㅋ 귀여운 카메라를 소품으로 서로 사진을 찍어줬다. 요즘 유행하는 인스타 콘셉트이라나... (나는 SNS를 하지 않는다... 시대에 뒤 떨....ㅠ)


씬스틸러 내 발....



 함덕 해변 구경을 마치고 마지막 코스인 닭머르 해안에 도착했다. 이곳도 인스타에 유명한 사진 포인트인지 서로 사진 찍어주는 커플들이 많이 있었다.


 앞에 있던 커플이 사진을 찍고 나서 우리 차례가 되어 서로 사진을 열심히 찍어 주었다. (내 폰보다 아이폰 사진이 너무 이쁘게 나와 유진 씨 폰으로 찍어 달라하고 카톡으로 사진을 받아서 좀 귀찮게해서 죄송했음...)


 처음 들어본 곳인데 따라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높이 올라가는 코스도 아닌데 앞에 있는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풍경이 이쁜 그런 곳.


 

닭머르 해안


 위에 있는 정자에서도 사진을 찍고 시간을 보내다 유진 씨는 다음 숙소 근처로 일정을 마무리하러 가기로 했다. 


 짧지만 즐거웠다고 작별인사를 하고 나는 조금 더 구경을 하다 숙소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전에 있었던 위미항은 서귀포 시내와 떨어져 있어서 시내 근처는 갈 일이 없었는데, 서귀포 중심지에 가성비 괜찮은 신축 호텔이 있어 그곳으로 예약을 하고 바로 출발!!


 오늘도 운전을 얼마나 하는 건지... 섭지코지에서 닭머르.. 여기서 또다시 한라산을 가로질러 서귀포 시내까지... (갈수록 쉬는 일정에서 돌아다니는 일정으로 반대로 가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한 시간이 넘게 걸려 호텔에 도착하여 체크인 후 객실로 들어갔는데 이상하게 에어컨이 안 나온다. 카운터에 문의하니 에어컨이 나오는 곳과 히터 나오는 곳이 따로 있다고... (처음에 그렇게 안내를 하고 어디로 갈 거냐고 물어봐야지...ㅠㅠ)


 다시 에어컨이 나오는 방으로 바꿔 올라가니 이번엔 커튼이 떨어져 있다... 호텔 컨디션이 왜 이래... 다시 바꿔 달라고 하기도 귀찮아서 낑낑 거리며 의자를 밟고 다시 커튼을 달았다.


 

오른쪽 커튼 내가 달았음.

 

 로비로 내려와 카운터에 있는 직원 누나(?)에게 근처에 맥주집 괜찮은 곳 물어보니 두 분 다 같은 곳을 추천해주셔서 시내 쪽으로 내려가 가보기로 했다.


 밖에 부슬부슬 비가 내려 차에 있는 우산을 가지고 천천히 내려갔다. 시내 초입에 있는 맥주집은 음... 상당히 비쌌다. (웨이팅은 10분으로 나쁘지 않았음.)


 귀여운 260CC 잔에 들어있는 수제 맥주 한잔에 4800원... 솔직히 전날 주식이 대박 나지 않았으면 바로 나갔을 가격인데 여기서만 4잔을 마셨다. (제주에서 부린 최고의 사치...)


 그래도 분위기도 괜찮고 펍 직원들도 친절했다. 특이점은 직원들이 전부 잘생긴 남자라서 그런지 여성분들이 90% 가까이 됐다.


 (나랑 외국인 한 명만 혼자 오고 대부분 여자들끼리 친구랑 온 듯?)


너무 비싼 요망한 수제 맥주


 맥주 맛은 솔직히 함덕 햄버거집에서 먹은 것보단 훨씬 나았다. (가격이 문제...) 맥주도 금세 다 마시고 더 있을 분위기도 아니어서 일찍 자리를 일어났다.

 

 돌아오는 길에 사람들이 줄 서있는 초밥 맛집을 점찍어두고 호텔로 바로 들어간다.


  휴... 이제 좀 쉬는 것 같다.


 내일은 아무것도 안 하고 쉬기만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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