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자 엄마

우리 엄마를 소개합니다.

by 중독작가

에피소드_1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어느 여름방학

해가 중천에 뜰 무렵이면 엄마는 어김없이 동네 아줌마들과

삼삼오오 모여 고스톱판을 벌이곤 했다.

그날도 나는 엄마를 따라 엄마 친구 집으로 향했다. 판돈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용돈벌이 정도의 소소한 판이었을 것이다.

아줌마들 사이에서 어깨너머로 혼자 구경하던 꼬마아이, 바로 내가 있었다.

그 시절엔 여자들이 담배를 피우는 일이 흔치 않았는데, 그 무리 중 '골초 이모'가

쫙쫙 담배를 피우던 모습은 어린 내 눈에 꽤나 충격적이고 인상 깊었다.

엄마가 "원고!" "투고!"를 외칠 때마다 나는 옆에서 환호하며 응원하는 조력자였고,

동시에 골초 이모의 담배 심부름꾼이었다. 물론 그 대가로 받는 심부름값은 생각보다 쏠쏠했다.

엄마가 "쓰리고!"를 외치며 한탕 크게 먹는 날이면, 지폐 대신 남은 잔돈이 내게 보너스로 주어졌다.

엄마의 성패는 곧 나의 용돈 액수와 직결되어 있었기에, 돈을 따면 함께 웃고 잃으면 함께 풀이 죽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리는 그야말로 '모자(母子) 도박단'이었다.

해가 저물 무렵이면 화토판은 끝이 나고, 각자의 남편들이 퇴근하기 전 아줌마들은 황급히 흩어졌다.

귀가하는 택시 안, 엄마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늘 이렇게 말했다.

“아빠한테는 절대 말하면 안 돼. 알았지?”

그 비밀의 대가는 내 주머니 속에 찰랑이던 동전들, 바로 그것이었다.


에피소드_2


그날은 우리 집이 고스톱판의 무대였다.

도박이 허락된 시간은 단 네 시간,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그 이후에는 아빠가 퇴근하니, 모든 것은 그전에 끝내야 했다.

(아빠는 엄마가 화투 치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하나둘씩 멤버들이 모이고, 머릿수가 채워지면 곧 화투판이 열린다.

엄마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착착 일정한 리듬으로 화투를 섞었다.

그 손끝의 움직임은 마치 숙련된 타짜의 손놀림처럼 능숙했다.

패를 나눠주며 본격적인 승부가 시작되면, 엄마의 표정엔 긴장과 흥분이 교차했다.

원하는 패가 손에 들어오면, 엄마는 팔뚝살이 출렁일 만큼 힘차게 화투패를 내리쳤다.

찰싹~! 그 소리가 공기를 가르며 방 안에 울려 퍼질 때면

나도 덩달아 속이 시원하게 뚫리는 기분이었다.

도박판에 낄 수 없는 나는, 혼자서 화투를 착착 붙게 내리치는 연습을 하며

엄마의 스코어를 어깨너머로 훔쳐봤다.

그리고 엄마가 화투에 몰입해 경계가 느슨해질 때면 , 나는 조심스레 부엌으로 향했다.

그곳엔 금단의 유혹, 프리마가 있었다.

컵에 물을 붓고, 하얀 프리마 가루를 넣어 젓는다.

꿀꺽꿀꺽 삼키면 입안 가득 달달함이 퍼지고,

물에 덜 풀린 가루들이 씹히는 그 느낌이 얼마나 좋았던지.

엄마는 늘 “몸에 안 좋아, 어른 돼서 먹어”라며 금지했지만,

그 마성의 가루는 어린 나에게 세상 가장 강렬한 도파민이었다.

한 잔으로는 부족했다.

숟가락으로 프리마 가루를 한가득 떠 입에 넣고 침으로 섞어 꾹꾹 씹어 삼켰다.

하지만 급히 먹다 가루가 목에 걸려 “콜록, 콜록!”

그 소리에 놀란 엄마가 달려와 결국 들키고 말았다.

그때, 평화롭던 방 안에 낯선 소리가 울렸다.

'철컥~끼익~'

우리 집 대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아줌마들은 일제히 대문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곳으로, 근엄하고 무표정한 아빠가 천천히 들어왔다.

(하필 그날 회사 사정으로 조기 퇴근을 하신 것이다.)

둥글게 둘러앉은 이모들을 본 아빠는 허스키하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어디 여자들이 살림은 안 하고 대낮부터 모여서 화투질이야!”

(조금 순화해서 말하자면 그렇다. 실제로는 훨씬 거칠었다.)

아줌마들은 지진이라도 난 듯 허둥지둥 돈을 챙겨 도망쳤다.

엄마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우리 가족의 식탁에는 평소보다 훨씬 화려한 반찬이 올랐다.

임금님 수라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빠는 미간을 찌푸린 채 말없이 소주잔을 들어 천천히 삼켰다.

잔 안에 담긴 술빛만이, 그날의 긴 여운처럼 고요히 흔들리고 있었다.


에피소드_3


그날은 같은 해,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시절의 대명절 추석이었다.

아침부터 큰 이모 집으로 온 가족이 모여 차례상에 올릴 음식을 만들고, 상을 차리며 바삐 움직였다.

정성껏 차린 상엔 조상님께 올릴 정종과 막걸리가 놓였다.

차례를 마치고 나면, 남은 막걸리를 어른들이 장난 삼아 내게 한 모금씩 권하곤 했다.

처음 마신 막걸리의 맛은 씁쓸하고 시큼했다.

도대체 어른들이 왜 이런 걸 마시는지, 그때의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누리끼리한 냄새와 톡 쏘는 신맛은 어린 나에겐 세상에서 가장 불쾌한 음료였다.

차례가 끝나면 명절 음식이 한상 가득 차려졌다.

산적, 흰 도라지나물, 소고기뭇국, 그리고 흰쌀밥.

그중에서도 나는 이 네 가지를 특히 좋아했다.

남자들은 상에 둘러앉아 막걸리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세상사를 논했다.

반면 여자들은 고된 차례 준비를 마친 후, 잠시의 해방감 속에서 고스톱을 쳤다.

그날 엄마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명절에 치는 고스톱은 '합법적인 도박'이었기에,

아빠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유일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엄마는 무대의 주인공이었다.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은 마치 핀조명처럼 엄마를 밝게 비췄다.

그동안 몰래 갈고닦은 실력을 친척들 앞에서 마음껏 뽐낼 수 있는 자리였다.

화투패를 착착 섞는 소리와 함께,

“원고! 투고! 쓰리고!”

엄마의 목소리가 방 안을 울리고, 웃음과 환호가 뒤섞였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고, 화투도 쳐본 사람이 잘 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그날 엄마는 친척들의 돈을 싹쓸이했다.

그때의 나는 엄마가 환하게 웃는 모습이 그저 자랑스러웠다.

'뭐든 1등을 하는 건 좋은 거야.'

그게 어린 나의 단순한 생각이었다.

엄마 덕분에 뜻밖의 용돈 천 원을 손에 쥔 나는

들뜬 마음으로 문방구로 달려갔다.

종이 뽑기 판 앞에서 두 주먹을 꼭 쥐고 속으로 다짐했다.

'오늘은 꼭 1등을 뽑아야지.'

그때 내 눈앞엔,

햇살처럼 맑고 순수했던 욕망이 있었다.

하지만 그 반짝임은 금세 탐욕의 빛으로 바뀌어,

막걸리의 쓴맛보다 더 진한 욕심으로 내 마음을 물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