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작가 금주를 결심하다.
2025년 11월 29일,
오늘이 금주를 시작한 지 딱 80일째 되는 날이다.
누군가에겐 짧은 시간일지 몰라도, 나에게 이 80일은
뜨겁게 사랑했고, 추억도 많았던 사람을 떠나보낸 뒤
하루가 1년처럼 느리게 흐르는 듯한 시간이었다.
금주를 결심한 이유는 많지만 간단히 말하면,
나는 알코올중독과 알코올사용장애를 가진 사람이었다.
부끄럽지만 술과의 첫 만남은 중학교 1학년,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한 건 허준 선생님도 못 고친다는
중2병이 제대로 걸렸을 시절이었다.
제대로 된 어른에게 배우지 못하고,
친구들끼리 마치 경기라도 하듯 마셨던 그 습관이 문제였는지,
아니면 태생적인 기질이었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술이 내 인생에 남긴 흔적이 너무도 깊고 어두웠다는 사실이다.
술이 약이 되는 사람이 있고, 독이 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분명 후자였다.
금주를 시작하며 가장 먼저 한 일은
오랫동안 미뤄왔던 영어학원에 등록하는 것이었다.
영어도 배우고 싶었지만, 무엇보다
프리랜서라는 불규칙한 삶에서 벗어나
수면과 생활 패턴을 다시 세우는 것이 더 절실했기 때문이다.
월·화·수·목, 매주 오전 11시 수업.
다행히 지금까지 꾸준히 수업에 참석하고 있다.
규칙적으로 깨어나는 삶이 몸에 스며들자
가장 먼저 느낀 건, 하루의 시작이 이렇게나 맑을 수 있다는 놀라움이었다.
예전엔 숙취, 두통, 속 쓰림, 안개 낀 정신 속에서
억지로 하루를 열었다면,
지금은 알람이 울리면 10초 안에 눈을 뜨고
흐트러진 이불을 정리하며 아침 공기를 들이마신다.
금주가 만든 작은 루틴들이
부드럽게, 그러나 단단하게 나를 이끌어준다.
술을 끊고 나서야,
40년 가까이 살아온 삶을 차분히 되돌아보게 됐다.
고쳐야 할 습관들, 놓아야 할 욕망들,
그리고 지금이라도 바로잡을 수 있는 것들.
차분하게 고민하다가 문득 모델 한혜진 님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일도 사랑도 내 의지대로 안 될 때가 많지만, 유일하게 내 의지대로 되는 게 몸이다"
그 말이 유난히 깊게 박혔다.
그때부터 다이어트와 금주를 함께 시작했다.
이제 두 달이 조금 지난 지금, 나는 10kg을 감량했다.
처음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지만
'무리하지 말고, 매일 몸을 움직이자'라는 단순한 원칙을 세웠다.
그날부터 매일 저녁, 집 앞 공원을 뛰었다.
비가 내리면 계단을 올랐고, 날씨가 좋으면 산을 올랐다.
며칠 동안은 의심도, 합리화도, 핑계도
끊임없이 머리를 들이밀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렇게 까지 살아야 되나'
'남들은 술 마시면서도 즐겁게 잘 사는데 나는 뭐 하는 거지?'
'적당히 조절하면서 마시면 괜찮아'
그래도 버텼다. 그렇게 1주일이 지나자 몸이 조금씩 익숙해졌고,
지친 몸 대신 작은 성취감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게으름과 욕망이란 기름으로 가득 찬 뱃살이 조금씩 빠지고,
숨도 덜 차고, 몸이 가벼워지면서 운동에 조금씩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후론 달릴 때 기록도 재보고, 지루하면 다른 공원이나 운동장으로
30분가량 차를 몰고 가서 러닝을 했다.
러닝에 흥미가 떨어지려고 할 때는 생전 가보지 않았던 수영센터에 가서
수영을 하며 천천히 호흡하면서 고요한 물속에서
내 몸이 변해가는 속도를 즐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김없이 달리던 중 문득
머릿속에서 뜻밖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인생을 180도 바꿀 것이다.”
나도 처음 듣는 낯선 목소리였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목소리는 나의 남은 인생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조용히, 그리고 강렬하게 알려주는 듯했다.
나는 이제부터 조금씩 변화해 가는 나 자신을
그 목소리의 주인에게 기록하고 보여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