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중한 책임감

20살이 된 중독작가의 첫 아르바이트

by 중독작가

2005년 2월

나는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눈을 떠도 여전히 감은 듯, 방 안은 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창문 하나 없는 고시원, 공기마저 갇혀버린 듯한 공간.

전등을 켜자, 사람 둘이 누우면 꽉 찰 좁은 방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습관처럼 목욕바구니를 들고 복도를 걸었다.

공용 샤워실의 차가운 물소리와 희미한 비누 냄새가 아침을 대신했다.

젖은 머리카락이 마르기도 전에 옷을 주워 입고 문을 나섰다.

바람은 살을 에었고, 덜 마른 머리카락은 금세 얼어붙었다.

스무 살의 첫 직장은 대형마트 푸드코트 안의 함흥냉면집 주방 보조였다.

벼룩시장에서 본 구인 광고한 줄이 나를 그곳으로 데려갔다.

급하게 돈이 필요했던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저 '조금이라도 더 벌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요식업이라는 낯선 세계로 들어섰다.

5평 남짓한 오픈 주방엔 취사병 출신 형 둘, 실장님, 그리고 나.

우리 넷은 하루 12시간을 그 안에서 함께 버텼다.

당시 월급은 110만 원, 주 1회 휴무.

주방의 공기는 늘 뜨거웠고, 정신없이 분주했다.

경험이 없던 나는 새벽같이 출근해 청소와 설거지로 하루를 시작했다.

첫날엔 후드를 닦다 손가락을 베였고, 그게 나의 신고식이었다.

며칠 후엔 김치를 썰고, 밥을 짓고, 반죽을 다루는 법을 배웠다.

손끝이 점점 익숙해질수록, 나는 조금씩 '주방의 사람'이 되어갔다.

형들은 현란한 칼솜씨로 재료를 다듬었고, 여유롭게 손님을 맞았다.

그들의 팔에는 근육이 자리했고, 그 여유에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 모습은 나에게 동경이자 목표였다.

실장님은 첫인상부터 강렬했다.

눈 밑엔 흉터가 있었고, 짧은 키에도 단단한 몸, 그리고 매서운 눈빛.

실수를 하면 거침없이 욕설이 날아왔고, 나는 늘 긴장 속에서 일했다.

그렇게 두 달이 흘렀다.

손은 빨라졌고, 주방의 소음에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실장님과의 거리는 여전히 멀었지만, 술과 노래라는 공통점이

우리를 조금씩 가까이하게 만들었다.

퇴근 후엔 종종 뼈해장국에 소주 한잔을 나누고,

2차로 노래방에 가서 마이크를 잡았다.

술기운이 오를 때면 실장님의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어느 날, 실장님이 말했다.

“너 내일부터 냉면 뽑는 거 배워라. 자신 있지?”

그 말은 나를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보통 반년은 지나야 맡길 일을, 그는 내게 건넸다.

술김에 “자신 있습니다!”라며 대답했지만,

다음 날 숙취와 함께 그 말의 무게가 밀려왔다.

냉면을 뽑는 일은 단순한 조리가 아니었다.

실수 한 번이면 재료를 통째로 버려야 했고,

주문이 밀리면 가게 전체가 흔들렸다.

그 책임이 이제 내 몫이 된 것이다.

막중한 책임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