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자 아빠

우리 아빠를 소개합니다.

by 중독작가

에피소드_1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이었다.

아빠는 1주일에 서너 번은 늘

술이 얼큰하게 취한 채 귀가했었는데 비틀대는 모습, 흥얼거리던 노래,

까끌까끌한 턱수염을 내 볼에 비비던 느낌, 함께 풍기던 술 냄새, 아직도

유튜브 쇼츠처럼 기억이 난다.

주말이 되면 우리 집에는 항상 아빠 친구들로 가득했고 거하게 술판을 벌였다.

방안은 담배 연기로 자욱했고, 엄마는 술상을 차리고 함께 수다를 떨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형은 워낙 조용한 성격이어서 방 안에서 나오질 않았다.

술과 담배가 떨어지면 늘 심부름은 형제 중 막내인 내 몫이었다.

작은 시골 마을이라 슈퍼마켓 주인아주머니도 내가 어느 집 아들인지 알고 있기에

술과 담배를 쉽게 구매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심부름을 다녀오면 심부름 값으로 몇 푼 받던 재미도 쏠쏠했다.

술판을 벌이는 중에 한 명이라도 만취가 되어 쓰러지면

그날 술 파티는 끝났다는 암묵적 신호였다.

쓰러진 삼촌(아빠 친구들을 부르는 호칭)은 서너 명의 삼촌들에게 익숙하게

팔다리가 잡힌 채 겨우겨우 택시에 실려 가면 그제야 북적대고 시끄럽던

우리 집은 서서히 고요해졌다.

드르렁 거리는 아빠의 코골이 소리와 함께...


에피소드_2


그날은 아빠의 월급날이었다. 대부분의 가정에선 기분 좋은 날이겠지만

나에게 월급날은 불안하고 무서운 날이었다. 왜 그런지는 곧 알게 될 것이다.

자정이 한참 지난 시간 어김없이 창밖에서 아빠의 노랫소리가 동네방네 울려 퍼졌다.

엄마는 식탁에 앉아서 팔짱을 끼고 걱정과 화가 섞인 표정으로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는 비틀대며 집으로 들어왔고, 엄마는 아빠의 주머니 속 노란색 월급봉투를

다급하게 꺼내어 손가락에 침을 뱉고 돈을 세어 확인하였다.

(당시에는 월급을 현금으로 받던 시절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월급의 3분의 1을 직장동료들에게

술값으로 크게 한턱 쏘고 남은 돈이 월급의 전부였다.

엄마는 "도대체 왜 자꾸 월급날만 되면 누구 좋으라고 돈을 펑펑 쓰고 와!!"라고 소리치며

아빠 옷가지를 잡아 흔들다가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아빠의 혀 꼬인 대답을 듣고선

자포자기한 채 바닥에 주저앉아 서럽게 펑펑 울었다. 그날은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아빠가 술에 많이 취해 대화할 정신이 없었다는 것이다.

술이 덜 취해서 정신이 좀 있는 날에는 말다툼 끝에 큰 싸움으로 번지기 때문이다.

나는 방 안에서 거실 상황을, 촉을 세우고 듣다가 아빠의 코골이 소리가 들리면

그제야 긴장이 풀려 스르르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깼다.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아빠의 헛구역질 소리와 함께...


에피소드_3


나의 고향은 강원도 한 시골 마을이다. 여름이 되면 동네 가족끼리 모여

가까운 계곡으로 물놀이를 자주 갔었다.

빨간색 몸통에 흰색 뚜껑으로 된 큼지막한 아이스박스.

삼촌 둘이 양쪽 손잡이를 하나씩 들고 낑낑대며 들고 와서 계곡 옆 명당자리에

철퍼덕 내려놓는다. 아이스박스 뚜껑을 열면 얼음물 위에

소주와 맥주들이 한가득 둥둥 떠다녔다.

어른들은 마치 맞추기라도 한 듯 감탄사를 동시에 터트린다.

"아따~~~!!"그 소리와 함께 계곡 파티가 시작되었다.

계곡 옆에 돗자리를 깔고 온 가족들이 둘러앉아 가스버너에 불판을 올리고 준비해 온

삼겹살 파티가 시작된다. 계곡 옆에 동글게 쌓은 돌담 속에 담긴 수박과 참외,

준비해 온 가지각색 음식들, 그리고 절대 빠질 수 없는 소주와 맥주.

각 집의 어린이들(나도 그땐 어린아이였다)은 계곡에서 물놀이하고 어른들은

시시껄렁 얘기를 나누며 밝은 대낮부터 한잔 두 잔 주거니 받거니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삼겹살이 다 익어가면 어른들은 "고기 먹고 놀아~!!"하고 큰소리로 무심하게

우리들을 부른다. 물놀이하고 먹는 삼겹살과 흰쌀밥 그리고 맛있는 김치, 그 맛은 아직도

잊을 수 없고 맛볼 수도 없다. 허겁지겁 밥을 먹고 다시 물놀이하다 보면

어김없이 아빠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코스모스~피어있는~"(고향 역_나훈아)

아빠의 18번 곡이다. 자기감정에 취해 눈을 지그시 감고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띤 채

숟가락 꽂힌 소주병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꽤 멋져 보였다.

실제로 삼촌들도 인정할 만큼 노래 실력도 근사했다. 다 같이 둥글게 앉아 노래에 맞춰

손뼉을 치고 함께 따라 부르는 모습이 꽤 즐거워 보였다.

노래를 마치고 아빠는 옆에 있는 삼촌에게 소주병 마이크를 넘겼다.

그 삼촌은 내성적인 성격이라 손사래를 치며 거절하자 농담이 짓궂은 아빠는

당시 유행하던 노래시킬 때 많이 부르는 노래

"노래를 못하면 장가를 못 가요 아~ 미운 사람"(미운 사람_윤형주)

을 부르면서 더 부추겼다. 중요한 건 그 삼촌은 당시 진짜 장가를 못 간 상태라 분위기가 조금 이상해졌다.

취기에 분위기 파악이 안 된 아빠는 다시 한번 노래를 부추기는데 나름대로 재치 있게 개사해서 분위기를

띄우겠다고 "노래를 못하면 장가를 못 가요 아~ 병신 같은 사람"….(나쁜 의도는 없었던 것 같다.)

분위기는 한순간에 한여름인데 얼음이 되었고, 옆에서 눈치 빠른 삼촌이 술잔을 들고

"자 먹고 죽자~건배!!"를 외치는 순발력을 발휘해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분위기 파악을 못 하는 아빠는 껄껄대며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켰고

장가 못 간 삼촌은 씁쓸하면서 불쾌한 표정으로 홀짝홀짝 소주를 들이켰다.

장가 못 간 삼촌과 흥에 겨워 껄껄대는 아빠의 상반되는 표정이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껄껄대는 아빠의 웃음소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