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도피처
2005년 12월, 스무 살.
차가운 겨울 새벽 공기를 들이마시며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막노동 현장으로 향했다.
장갑을 꼈는데도 손가락은 감각을 잃었고,
얼어붙은 얼굴은 표정을 짓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강원도의 겨울은 그렇게 사람을 무너뜨릴 만큼
혹독하고, 날카로웠다.
고등학생 때 아버지의 사업은 부도가 났고
부모님은 이혼했다.
계획했던 대학 입시는 꿈도 꿀 수 없게 되었고
졸업만 하면 돈을 왕창 벌어 부자가 되겠다는
막연한 다짐 하나로 졸업식까지 버텼다.
처음 일했던 냉면집.
정직원이었지만 월급에서 고시원비, 식비, 생활비를 빼면
통장은 늘 텅 비어 있었다.
고향으로 내려와 아버지 사업 때문에 하게 된
래프팅 가이드 일도 마찬가지였다.
일당이 가장 셌던 막노동마저도
일당 8만 원쯤이었는데,
그럼에도 내 통장은 늘 바닥이었다.
지금은 잘 안다.
당시 가장 큰 지출은 술값이었다는 걸.
졸업만 하면 인생이 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내 꿈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고
그 무력감과 우울감에서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출구는 술뿐이었다.
눈을 뜨면 또 새벽.
그리고 다시 같은 현실.
결국 나는 도망칠 곳을 하나 더 만들었다.
군입대였다.
2006년 1월 3일, 춘천 102 보충대.
입대까지 남은 한 달 동안
나는 거의 매일 친구들과 술로 밤을 지새웠다.
군대라는 도피처가 생겼다는 안도감과
어디로 끌려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이상하게 공존했다.
그 불쾌한 감정을 지우기 위해
내 주량은 날이 갈수록 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생일이었다.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그중에는 초등학교 때 짝사랑하던
동창도 있었다.
남녀가 섞이니 분위기는 더 달아올랐고
나는 그 흥에 취하다 못해
술에 얼큰하게 취해버렸다.
누군가 내 어깨를 거칠게 흔들었다.
"야! ㅇㅇㅇ 일어나! 집에 가야지!"
눈을 뜨니 나는 옆 테이블 소파에 누워 있었고
술자리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머릿속은 비어 있었고
기억은 뚝 끊겨버렸다.
친구들은 나를 보자 깔깔대며 웃었다.
웃음소리가 귀에 꽂히듯 아프게 울렸다.
그때,
아직 자리에 남아 있던
그 아이가 나를 보고 있었다.
표정이 이상했다.
웃음기 뒤에 불쾌함을 숨긴 듯
애매하게 굳어 있는 얼굴.
그 순간 한 친구가
낮게,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니... 기억 안 나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바지에 닿는 축축한 감촉을 느꼈다.
바지가... 젖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