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대결

막사

by 중독작가

1999년 7월 중학교 1학년.


푸른 하늘과 초록빛으로 물든 산들이 둘러싼
강원도 시골 마을에
바짝 마른 여름이 찾아왔다.

두 달 전, 골목에서 벌어진 싸움에서 이긴 이후
내 위치는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학교생활도 어느 정도 몸에 익었고
그 사이 결이 다른 애들은
저마다 무리를 이루며 흩어졌다.

나는 태준이와 몇몇 친구들 곁에 있었고
우리한테 재미란 곧 일탈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손쉽고 확실한 일탈은 술이었다.

그날은 일요일 아침,
다 같이 약속을 해 둔 날이었다.
친구들 중 가장 어른스러운 얼굴을 한 녀석이
동네 막걸리 공장에서
막걸리 반말을 사 들고 나왔다.

막걸리가 절반쯤 담긴 약수통을 들고
숨을 헐떡이며 달려오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이미 한 번 취해 있었다.
술을 손에 넣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이다 1.5리터 네 병과 생두부 네 모.
대여섯 명이 먹기엔 충분했다.

한여름 대낮,
땀을 뻘뻘 흘리며
무거운 약수통을 번갈아 들고
학교 뒷산 정상까지 올라갔다.

아무도 오지 않고
아무도 묻지 않는 곳.
그곳은 우리만의 아지트였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강원도의 풍경은
이 모든 짓을
잠시 정당하게 만들어줄 만큼 좋았다.

약수통을 가운데 두고
우리는 둥글게 자리를 잡았다.
사이다 두 병을 부어 섞자
막걸리는 거의 두 배로 불어났고
단맛과 탄산이 더해졌다.

우리는 그걸
막사라고 불렀다.

종이컵에 가득 따른 막사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안주는 생두부를 젓가락으로 조금 집어 먹는 게 전부였다.
몰래 더 먹다 들키면 종이컵 가득 벌칙이 돌아왔다.

땡볕 아래,
산 정상에서 빈속으로 한두 잔을 들이마시면
머리가 핑핑 돌고 기분은 금세 느슨해졌다.

취기가 돌 무렵
자연스럽게 술대결이 시작됐다.

그땐 술을 버티는 게
강함이었고 취하지 않는 게
남자다움처럼 여겨지던 때였다.

남은 사이다를 전부 붓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빈 페트병 윗부분을 잘라 1리터는 족히 들어갈
커다란 임시 컵을 만들고 시계 방향으로 원샷을 돌렸다.

마지막까지 서 있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었다.

토하는 애,
끝까지 버티다 쓰러지는 애,
소리를 지르는 애,
말없이 사라지는 애.

나는 끝까지 버티는 쪽이었다.

결국 셋만 남았고

주거니 받거니 마시다 보니
눈앞이 겹치고 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리는 말을 듣지 않았고 나는 먼저 손을 들었다.

성장이 빨라 덩치도 크고 힘도 좋았던 녀석이
끝내 남은 걸 다 비웠다.

눈앞이 겹치고 바닥이 흔들리는 상태로
나는 그 녀석의 부축을 받아 겨우 산을 내려왔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대로 쓰러졌다.

눈을 떴을 때
엄마가 미간을 찌푸린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 솔직히 말해. 누구랑 술 마셨어!?”


나는 끝까지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방 안엔 술냄새로 가득했고
이불엔 토한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반쯤 풀린 눈으로 나는 끝까지 부인했다.

엄마는 한숨을 길게 쉬더니
말없이 등을 돌렸다.

“콩나물국 끓여 놨으니까
먹고 자.”

그날도 엄마는
술에 취한 아들을 남겨 둔 채
늦은 밤, 도박을 하러 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