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
2006년 1월, 신병훈련소
그날은 재식훈련이 있는 날이었다.
훈련병 둘씩 짝을 지어 마주 선 채
거수경례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내 앞에 서 있던 훈련병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최대한 무표정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지만
표정 속에는 분명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어딘가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운 그 얼굴이
결국 내 웃음 버튼을 눌러버렸다.
모두가 진지하게 훈련에 임하고 있을 때
나 혼자 웃음을 참지 못하고
깔깔거리기 시작했다.
조교가 다가왔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내 바로 앞에서 고함을 질렀다.
"너 훈련이 우스워?!! 미쳤어?!!"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정말 미친 건가?'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결국 나는 얼차려를 받았다.
몸이 점점 고통에 잠기자
그제야 웃음도 함께 멈췄다.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웃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이상하게 웃음이 터져 나오는 일이 종종 있었다.
친구가 힘든 가정사를 털어놓을 때도 그랬다.
이야기 속 어떤 단어 하나에 꽂혀
나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오곤 했다.
다행히 그 친구는
오랫동안 나를 알아온 사이였기에
내 성격을 알고 그냥 넘겨주었다.
하지만 군대라는 사회는 달랐다.
그곳에서는 그런 웃음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하지 말라고 할수록 더 하고 싶어지는 욕구,
그리고 무언가를 억지로 가두려 할 때
그 틀을 벗어나려는 어떤 본능이
내 안에서 작동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덕분에 얼차려는 자주 받았고
내 체력은 나날이 좋아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하늘에서 흰 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군대에서 맞이하는 첫눈이었다.
훈련병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잠깐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훈련병이 아니라
그저 눈을 바라보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 감성은 오래가지 않았다.
조교의 우렁찬 목소리가
운동장을 울렸다.
"주목! 지금부터 제설작업을 실시한다!
5분 안에 재설 장비 챙겨서 다시 집합!"
군대에서 맞이하는 첫눈의 낭만은
단 3초 만에 끝이 났다.
그리고 곧
제설작업이라는 노동이 시작됐다.
사회에서는 낭만적이고 아름답게만 보이던 하얀 눈이
시간이 지날수록 내 체력을 갉아먹는
흙 섞인 얼음덩어리로 변해갔다.
넓은 운동장의 눈을 힘겹게 밀어내고
뒤를 돌아보면
어느새 다시 눈이 쌓여 있었다.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하얀 눈이 미웠다.
어릴 적 첫눈이 내리면
눈이 많이 쌓여 눈사람을 만들 수 있기를
기도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의 나는
눈을 바라보며 설렘을 느끼던 아이였다.
하지만 그날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같은 눈을 바라보면서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세상을 보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첫눈은 낭만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끝이 보이지 않는 노동이다.
세상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달라졌을 뿐이었다.
아마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세상이 변하는 일이 아니라
같은 세상을 바라보면서도
그 의미가 달라지는 순간을
조금씩 경험해 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나는 아주 조금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