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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쟈스민 Dec 24. 2021

고등학생인데, 왜 산타 안 믿어?

영화 '엘프'

영어 선생님이 되면 매해 가장 큰 행사가 두 개 생긴다. 하나는 할로윈이고 다른 하나는 크리스마스다. 이때엔 자체 야근인데 풍선이며 전구며 온갖 물품을 예산 신청하고 배달 온 물건들로 영어실을 그럴싸하게 꾸민다. '고등학생이, 그것도 남학생들이 무슨 이런 날을 챙기고 좋아할까? 초등학생도 아니고.'라고 생각하며 준비하지만 항상 히트를 친다. 요즘 같은 코시국엔 행사다운 행사도 없어져 이런 소소한 이벤트에도 아이들이 달려온다.


12월이 되면서 기말고사 출제보다 더 큰 영어과 행사는 크리스마스 준비였는데 할로윈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굉장히 호응이 좋았다. 영어실 칠판에는 크리스마스 영화가 틀어지고 캐럴이 울렸다. 크리스마스트리와 온갖 장식의 아늑한 영어실로 들어오기 위해 아이들은 거리를 두고 줄을 섰으며 영어동아리 학생들이 손 소독을 도와주고 방명록 안내를 했다. 그렇게 영어실로 들어선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영어 단어를 적고 작은 선물을 받아갔다.


나도 손 소독을 도와주는 아이들과 함께 복도에 앉아있었는데 국어 선생님이 지나가시며 뭐 하는 건지 물어보셨다. "딱 봐도. 크리스마스 행사잖아요. 선생님!" 내 대답에 국어 선생님은 즐거워 보이는 동아리 아이들의 표정을 읽으시곤, "산타할아버지한테 선물 받으려고 기다리냐?"라고 하셨는데, 아이들은 전부 산타가 어딨냐며 웃었다. 그때 선생님이 갑자기 정색하시며 산타가 왜 없냐며 물어보셨다.


"에이, 당연히 없죠. 없는 거 다 알아요. 저희 나이가 몇인데."라는 아이들의 대답에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산타가 없다는 증거를 대보라고 하셨다. 나도 뭔가 이 상황이 재밌어져 거들었다.

"그래, 산타 할아버지가 왜 없어? 당연히 계시지!"

그러자 아이들은 선생님들이 자기들을 놀린다며 재밌어했지만 산타가 없다는 증거를 말하지 못하자 오히려 국어 선생님과 내게 반문했다. "그럼, 산타할아버지가 계신다는 증거는요?"


그 말에 나는 얼른 "야, 산타할아버지가 작년에 샘 계좌로 10만 원 쏴주셨어. 봐, 산타할아버지 있지?"라고 대답했고, 아이들은 웃으며 산타할아버지가 어떻게 선생님 계좌번호를 아냐고 자꾸 놀린다고 웃어댔다. 국어 선생님은 '산타할아버지가 너희들 집 비밀번호도 아는데 계좌번호를 모르겠냐'라고 후방 지원해주셨고 우리는 아이들을 놀리는 데 성공했다.


아이들과 '산타할아버지는 있는가'로 신나게 토론하다 교무실 자리에 앉자,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생인데, 왜 산타 안 믿어?'


이렇게 산타를 기다리는 아저씨도 있는데! 왜 산타 안 믿어?


나는 지금도 산타를 믿는다.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영화 '엘프'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엘프를 본 게 고등학생 때인데, 그때 이후로 노인이 되어서도 산타를 믿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그 영화는 어른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영화였기 때문이다. 대부분 크리스마스 영화는 당연히 산타가 있다고 믿는 아주 어린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아이용 크리스마스 영화인데 '어른을 위한 크리스마스 영화는 없는 건가'라고 생각할 때, 딱 이영화를 만나게 됐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나는 꼭 이 영화를 본다.


내게 산타에 대한 미련을 심어준 영화, 엘프의 스토리는 간단하다.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나누어주러 인간 세상에 왔을 때 의도치 않게 선물 보따리 안으로 한 아이가 들어간다. 산타할아버지는 그것도 모르고 산타와 엘프가 사는 마을로 돌아온다. 그러다 아이를 발견하고 난감해하는데 한 아저씨 엘프가 그 아이를 키우겠다고 한다.

버디의 엘프 아버지

 엘프가 아버지가 되어,  아이는 그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난다.  아이는 버디. 버디는 어른이 되어버렸는데 뭔가 자신이 다른 엘프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그는 아버지와 달리 자신은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친아버지를 찾아 인간 세계로 온다. 하지만 자신의  아버지는 나쁜 사람 목록에 있을 만큼 각박하고 무미건조한 사람이었다. 그의 친아버지는 버디를 귀찮고 성가신 존재로 생각했고 오로지 사업 생각뿐이었다. 새엄마도 아버지와 별다른 사람이 아니었고 동생도 그런 부모 아래에서 우울하게 자라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인간 세계에서 버디는 여자 친구 조비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 역시 사회에 치여 어두운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버디의 활약으로 그들 모두가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한다.



이 영화에 나오는 버디의 부모, 동생, 여자 친구는 모두 우리 자신이다. 우리도 버디의 가족, 연인과 다를 것이 없다. 가족의 정을 모르고 자라나는 동생과 물질의 노예가 되어버린 부모, 그리고 사회에 찌들어가는 여자 친구 모두가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보통 맞벌이 가정에서 자랐다. 집에 오면 외롭고 심심하다. 친구와 컴퓨터, 학원으로 빈 공간을 채워보려 해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가족의 사랑이다. 이 사회가 어쩔 수 없이 아이들로부터 부모를 빼앗아 가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기를 먹여 살리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자기를 떠나야 하는 부모를 그리워하며 어른이 된다. 그러다 보면 동심도 순수함도 잃어간다.


부모는 부모대로 가족을 위해 일하느라 정신이 없다. 처음엔 가족을 위해 일했는데 난중엔 자기 자신이 누군지도 잊어버리고 물질의 노예가 되어버린 스스로를 발견할 뿐이다. 그렇게 사회에 찌들어선 어두운 어른이 되어버린다. 그들에겐 일찍이 동심과 순수함이 사라지고 없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끝'이 아니라 그러한 존재들이 동심과 순수함으로 만들어진 버디와 함께 지내면서 다시 동심을 찾고 자신을 돌아본다. 버디의 동생도 가족의 정과 사랑을 느끼게 되고 그의 여자 친구도 사람에 대한 신뢰감을 회복한다. 버디와 함께하는 천진난만하고 엉뚱한 시간이 슬픈 어른과 아이들을 웃게 한다. 동시에 그들의 상처 받고 잃어버린 동심과 순수함을 되찾아준다.  


우리 주위에 버디 같은 사람이 있다면 정말 행운이겠지만, 그런 사람은 잘 없다. 그래서 '존 파브로' 감독이 어른들을 위로하고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주기 위해 버디 같은 존재인 영화'엘프'를 만들었나 보다. 왜냐면 우린 이 영화를 보면서 그 천진난만함과 따듯함으로부터 위로받고 동심을 회복하기 때문이다. 아! 어쩌면 그래서 크리스마스가 있고,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있는 게 아닐까. 삭막한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를 위로하고 회복시키기 위해. 그래서 난 버디같이 주위의 순수함과 동심을 지켜주는 존재가 되고자 산타클로스를 믿기로 했다. 할머니가 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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