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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쟈스민 Dec 27. 2021

에헤이, 넣어둬. 넣어둬.

고양이의 보은

우린 다른 사람이 먼저 밥 값을 지불하려 하거나 예상치 못한 사례를 하려고 할 때 이렇게 말한다.

‘에헤이, 넣어둬. 넣어둬.'

그건 '고맙지만, 괜찮아. 좀 부담스러워.’라는 뜻이다. 

이 말이 절로 나오는 만화가 있으니 바로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 미야자키 하야오 기획, 모리타 히로유키 감독의 '고양이의 보은'이다.

고양이의 보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선생님이 되고 나서 나도 이 말을 자주 한다. 그건 아이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사탕 하나를 줘도 받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무슨 촌지도 아니고 그냥 돈으로 환산하면 몇십 원, 몇백 원이 될까 싶지만 제자의 예쁜 마음에 상처 주기 싫어 그 간식을 받았다간 자칫 김영란법에 혼쭐이 날 수도 있다. 정말 정 없어 보이지만, 법은 법이다. 그래도 용기를 내 사탕을 건넨 제자에게 ‘에헤이, 넣어둬. 넣어둬.’라며 재밌게 말하여 무안 주지 않는 걸 최선으로 삼는다.


나의 상황과는 전혀 다르겠지만 고양이의 보은에서 주인공 '하루'도 나처럼 말하고 싶을 것이다. ‘에헤이, 넣어둬. 넣어둬.’라고. 눈치챘겠지만 이 만화에서 주인공은 은혜를 갚으려는 고양이 때문에 곤욕을 치른다.


그녀의 사연은 이렇다. '하루'는 평범한 여고생이었다. 그녀는 하굣길에 차에 치일뻔한 고양이 한 마리를 살려주는데, 이상하게도 그 고양이는 고맙다며 마치 사람처럼 인사를 하고 간다.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집에 돌아온 그녀는 좀 이상하지만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그날 밤 그녀가 구해준 고양이의 아버지 고양이가 그녀의 집으로 찾아온다. 알고 보니 그녀가 구해준 고양이는 ‘룬’이라는 고양이 왕국의 왕자였다. 그리고 당연히 그의 아버지는 고양이 대왕이었다! 그때부터 고양이들은 은혜를 갚겠다며 쥐를 선물하거나, 개박하를 선물하거나, 룬을 구할 때 부서진 라켓을 지나 칠 정도로 선물하는 등 주인공이 전혀 원하지 않는 선물들을 부담스럽게 안겨준다. 그러다 정말 큰 문제가 생긴다. 


그건 가장 큰 선물로, 하루를 고양이 왕국에 데려가 룬의 신부로 만들어주겠다는 것이었다. 하루는 당연히 인간으로서 고양이와 결혼하고 싶지 않았지만 별생각 없이 '고양이 왕국은 좋겠다'라는 말을 해버린다. 이걸 오케이 사인으로 알아들은 고양이들이 결국 하루를 고양이 왕국으로 끌고 가 버린다. 그래도 하루가 고양이 왕국으로 끌려가기 전, 알 수 없는 여자 고양이 목소리가 그녀에게 고양이 사무소로 가서 도움을 청하라는 조언을 해준다. 


그 사무소의 주인은 고양이 남작 '바론'이었다. 바론은 하루를 구해주기로 약속하고, 실제로 그녀가 고양이 왕국에 끌려가자 그녀를 구해주러 온다. 그녀를 구해주는 건 바론뿐만이 아니었다. 하루가 어릴 적 굶어 죽어가던 새끼 고양이에게 빵을 주어 살려준 적이 있었는데, 그 고양이는 자라서 고양이 왕국의 시녀가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유키'. 하루에게 고양이 사무소로 가라고 알려준 것도 유키였다. 유키는 사실 룬의 여자 친구였는데, 그녀는 하루가 고양이 왕국에 계속 있다간 고양이가 되어버릴 걸 알고 시종일관 탈출할 수 있게 돕는다. 어쨌든 유키의 도움과 바론의 노력으로 하루는 탈출에 성공해 고양이가 되지 않고 다시 행복한 일상을 누린다.

하루를 구하는 바론


영화를 보면 큰 교훈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아주 미묘하지만 중요한 인생의 진리가 떠올랐다. 우리는 어떤 이유로든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주고받는다. 이 과정이 인간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인데 우린 이것을 처세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축의금 때문에 의절하는 경우가 그렇다. 누가 더 많이 주고 더 많이 받고, 이런 것으로 우리는 심상하기 마련이다. 혹은 이 만화에서처럼 원하지 않는 것을 억지로 주고 고생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잘 주는 것도 중요하고 잘 받는 것도 중요하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나이 여든이 넘어서도 처세가 어렵다고 한다. 


고양이의 보은에서 주인공 하루는 명확하고 예의 있게 고양이의 성의를 거절하지 못한다. 원하지 않는 보답에 대해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여서 결국 그 대가를 치른다. 고양이 왕국의 대왕도 역시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선물들을 부담스럽게 투척한다. 그래서 끝엔 분노와 굴욕을 맛본다. 서로 좋은 마음이었는데 둘 다 상처 받고 피해만 본다. 처세에 실패하면 우리도 이러한 꼴을 면치 못한다. 


진정 현명하게 처세할 줄 아는 존재는 인간인 하루도, 고양이 대왕도 아닌 시녀 고양이 유키였다. 그녀는 받을 때 자신이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알리고 고맙게 잘 받는다. 줄 때도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필요할 때 준다. 그게 진정한 배려의 모습일 것이다. 난 이 만화 덕분에 고양이 대왕처럼 주거나 하루처럼 받지는 않는다. 천만다행이다! 내가 주고 싶은 걸 주고, 어설픈 태도로 받는 사람이 아니라서.


현명한 유키가 왕비가 되는 게 당연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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