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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쟈스민 Dec 24. 2021

닭의 목을 비틀어도 꼬박꼬박 새벽은 온다.

정글은 언제나 맑음 뒤 흐림 (하레와 구우)

닭은 해가 뜰 무렵 '꼬끼오~'하고 울면서 우리에게 또 다른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그런데 다음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다. 하루하루가 힘들 때. 우리는 사는 게 우울하거나 고통스러울 때 그냥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닭의 목을 비틀어버릴까 싶기도 한다. 닭이 울지 않으면 내일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도 내일은 온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꼬박꼬박 새벽은 온다.


힘들 때 웃는 게 일류라는 말이 있다.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일류 타령을 하는가. 힘들 땐 폭주할 거 같은 기분인데..' 그런 생각을 하다 갑자기 전기가 파박하며 떠오른 게 있었다. 바로 '정글은 언제나 맑음 뒤 흐림'이다.


지금도 기억나는 이 만화는 내 학창 시절 밤마다 한 케이블방송에서 방영되었다. 나만 좋아하던 게 아니라 아빠, 언니까지 모두 좋아했던지라 다 함께 쥐포를 뜯으며 보았던 기억이 난다. 왜 사는 게 힘들 때면 이 만화가 그렇게 생각이 날까.


아마 어두운 스토리가 개그와 어그로로 승화된 것이, 보는 이로 하여금 어이없이 기분 좋아지게 하기 때문인 거 같다. 무슨 변태 같은 말인가 싶어도 진짜 그렇다. 그래도 이 만화가 어이없고 두서없는 것만은 아니다. 이따금 인생의 진리가 되는 말을 하찮아 보이는 캐릭터들이 툭툭 던진다. 그게 또 힐링이 되는 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주인공부터 식재료까지 모든 캐릭터가 상상 그 이상이라 보기만 해도 흥미진진하고 우습다.

 

괴물 아니고 이발소 할머니다. 
맛있다고 소문난 포쿠테..


이 특이한 만화를 만든 사람은 고등학생이었던 킨다이치 렌주로다. 사실 이 만화의 스토리를 보면 절대로 고등학생이 이 정도 수준의 작품을 만들어냈으리라곤 생각할 수 없다. 아니 어쩌면 반대로 아직 동심과 창의력이 풍부한 시기에만 그릴 수 있었던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든 이 만화, 별다른 스토리는 없다. 딱 두 문장이면 충분하다.


한 귀족 집안의 소녀 '웨다'가 임신하게 되고 미혼모 처지의 그녀는 부모님과 대립하면서 집을 떠나 정글로 들어와 아들'환희'를 키운다. 그러던 어느 날 웨다는 정체불명의 고아 소녀 '구루미'를 집으로 데려오고 셋은 함께 살아간다.


듣기만 해도 어두운 스토리다. 귀하게 자란 여자아이가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한다. 아이 아빠는 나 몰라라 하고 부모님은 비난할 뿐이다. 그래서 집을 나오게 되고 연고도 없는 정글 오지로 들어가 홀로 아이를 키우며 또 고아인 소녀를 데려와 키운다. 듣기만 해도 기구하지 않은가. 그런데 전혀 어둡지 않다. 오히려 지나 칠 정도로 유쾌하다.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이 그렇다. 웨다처럼 모두 위험하거나 어둡거나 우울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데 마냥 지나 칠 정도로 낙관적이다.


이 작품의 가장 좋은 점은 무슨 심오한 뜻이 있다고 구석구석 해석하며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작품이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이건 워낙 엉뚱해서 의미를 이해하려면 만화에 집중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 만화를 볼 때 머리 아프게 의미를 찾지 말고 그냥 즐기면 된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웃고 있거나 이상하게 위로받는 기분이 들것이다. 그건 캐릭터들이 비극적인 순간이나 위험한 상황에도 웃기게 그려지기 때문인데 그게 바로 이 만화가 주는 위로다.


칼질을 하다 팔까지 잘라버리는데!


그 팔을 또 먹는다! 근데 다시 팔이 자라난다. 이 비극적 순간도 황당하고 웃기게 그려진다.


어두운 인생을 살던, 얼마나 기구한 운명을 가졌던, 우리는 상대방을 볼 때 그들이 어떤 사연을 가졌는지보단 어떤 마음과 태도로 살아가는지를 먼저 본다. 아무리 힘들고 안 풀리는 인생이라도 매일 재밌게, 어쩌면 지나 칠 정도로 낙관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좋아 보인다. 그들과 함께하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잘 나가는 사람이라도 매일 비관적이거나 우울해하면 그 사람과는 일분도 공유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힘들 때 웃는 자가 일류라 하나보다.


한국어 번역판에서 만화 속 주인공들은 '환희'와 '구루미'로 들린다. 이 작품을 잘 해석하고 번역한 것 같다. '환희의 순간'이라고 할 때처럼 정말 즐거움이 넘칠 때 우린 '환희'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구루미는 '우울한'이라는 뜻의 영어단어 'gloomy'처럼 보인다. 구루미는 왜 갑자기 환희의 집에 찾아와 함께 살게 되었을까. 우울한 삶도 환희의 순간처럼 살아가는 게 좋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에 우울함은 너무나 쉽게 찾아온다. 우울함이 찾아오면 얼른 기쁨을 찾아가는 게 답일지 모른다. 마치 구루미가 어느 날 갑자기 환희를 찾아와 함께 살자고 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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