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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쟈스민 Dec 24. 2021

너라서 양보한 거야. 내 첫사랑.

카레카노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있을 것이다. 첫사랑이 누구인지 물어본다면 기억이 날까. 이 질문의 답은 모두 'yes'일 것이다. 첫사랑은 그야말로 '처음의 사랑'이므로 절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된다. 첫사랑은 보통 이루어질 수 없다는데, 그래서 첫사랑을 떠올리면 어딘가 가슴 한편이 찡하게 아프다.


나도 첫사랑에 실패했다. 내가 처음으로 사랑했던 소년은 얼굴도 잘생기고, 착하고, 인기도 많고, 전교 1등에 검도부 부원이었다. 그 남자애가 검도복을 입고 땀 흘리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희대의 경쟁자로 인해 그 남자애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데 내 첫사랑을 뺏아간 소녀는 예쁘고 인기가 많은 데다 공부까지 잘했다. 그래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남자에겐 이런 여자가 딱 맞아. 어쩔 수 없지. 어차피 사람도 아니었는데..


응? 아마 다들 의아해할 것이다. 첫사랑이 사람이 아니라니!


그렇다. 나의 첫사랑은 만화 캐릭터다! 하지만 이 만화를 본다면 모두 나에게 동의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 완벽한 남주, 여주가 등장하는 만화는 '카레카노'다. 한국에선 '비밀일기'나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나는 공중파에서 '비밀일기'로 방영될 때 엄마 몰래 보았던 기억이 난다. 결국 전국 엄마들의 항의 전화로 조기 종영되어버렸다. 학업에 열중해야 하는 아이들이 다소 선정적으로 느껴지는 만화에 빠지게 된다는 이유로.


이 작품은 종이 만화도 좋지만 먼저 애니메이션으로 보길 추천한다. 볼 때마다 90년대의 일본 고교 느낌과 서정적인 풍경, 그 시기와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낭만이 고스란히 잘 전해지기 때문이다.



 이유는 다양한 그림체와 촬영기법에 있다. 일반적인 애니메이션과 달리  작품은 중간중간 의미심장한 단어의 정의가 제시되거나 동화 같은 그림을 사용하거나 사진을 활용하고 심지어 실재 연출 스텝이 다른 반장으로 등장해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한다. 그래서  때마다 '이거 만든 사람은 천잰가'하고 생각하는데 정말 천재가 맞다. 감독이 '안노 히데아키'. 아마 애니메이션 덕후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가 바로 '에반게리온' 만들어  사람이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제작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등장한 인상적인 존재, '거신병' 만들어낸 사람이다. 의외로 안노 히데아키 감독은 순정만화에 심취하여 그림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카레카노'에서  간질간질한 순정만화의 느낌과 낭만을 완벽하게 살려냈다.



이 작품이 감독만 잘 만난 것은 아니다. 아무리 실력 있는 감독이 있어도 작품 자체가 좋아야 하는데 '츠다 마사미'라는 작가가 생각해낸 스토리도 참 흥미롭다.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용모단정, 명석한 두뇌의 완벽한 여자아이가 있다. 바로 '미야자와 유키노'. 그녀는 학교에서 임원을 맡으며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다. 공부만 잘하는 것이 아니다. 아름답고 가녀린 외모인데 체육까지 잘한다 그런 그녀를 모든 학생이 동경한다. 그런데 그녀에게 엄청난 라이벌이 등장한다. 그녀의 유일한 경쟁자는 ‘아리마 소이치로'. 그 역시 완벽한 외모에 검도부 부원으로서 모든 여자아이들의 이상형이자 남자들에겐 영웅이다. 학교 최고의 인기남 아리마가 완벽해 보이는 미야자와를 좋아한다. 우리의 상식대로라면 '비슷한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고상하게 연애를 하다 끝났습니다.'로 결말이 나는 게 당연한데 그렇지 않다. 미야자와가 아리마의 고백을 가볍게 거절해 버리기 때문이다.


사실 미야자와는 사랑 같은 덴 관심이 없다. 미야자와는 딸만 셋 있는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의 J장녀다. 그녀는 인정 욕구에 목말라 있는 허영덩어리로 모든 행동의 근원이 남들보다 우월하다며 추앙받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건 안중에도 없을 수밖에. 오히려 입학성적 1등을 아리마에게 빼앗기며 그에 대한 반감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CD를 빌려주러 미야자와의 집에 방문한 아리마에게 그녀는 들키지 말아야 할 것을 들켜버린다. 벨소리와 함께 학교에선 여신인 미야자와가 동생들이 온 줄 알고 빨간 체육복에 두꺼운 안경을 끼고 씻지도 않는 체로 달려 나왔기 때문이다. 그녀의 원래 모습을 그에게 딱 들켜버린 것! 그녀가 허영덩어리였다는 것을 아리마가 알게 되면서 이 둘의 로맨스는 독특한 형태로 시작된다.



자신의 비밀을 알고도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받아들이며 좋아하는 아리마에게 미야자와도 마음을 열고, 동시에 미야자와도 아리마의 비밀을 알게 된다.

그것은 친부모에 대한 그의 심각한 콤플렉스였다. 그의 친부모는 문제만 일으키는 존재로 집안의 수치였다. 그러다 그들은 아리마가 아주 어릴 때 집안의 돈을 들고 도망가버린다. 그렇게 고아가 되어 모두에게 손가락질받던 아리마를 큰아버지 부부가 사랑으로 감싸고 외동아들로 받아들여주는데, 아무리 큰 사랑을 그에게 쏟아주어도 존재 자체에 대한 죄송함과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그의 속은 썩어간다. 그런 아리마의 비밀을 알고도 미야자와는 그를 받아들이고 여전히 좋아한다. 그렇게 서로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된 그들은 함께 성장하고 진심으로 사랑을 키워나간다.


이 만화를 보면 주인공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친구들 역시 다양한 모습으로 어른이 되어간다. 고등학생인 그들이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가 얼마나 자신을 돌아보기에 완벽한지 알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무엇인가. 이때 우린 이런 고민과 시행착오를 겪는다. 그러다 보면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외면한 체 어른이 되면 어딘가 완전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없다. 그런 자아는 누구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누군가를 받아들일 수도 없다. 그런데 의외로 그렇게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으로부터 도피한 어른들이 많다. 자신의 추한 모습을 받아들이거나 치유하지 않고 위태롭게 놔두는 것. 그건 누군가에게 거부당할 것이라는 공포에서 오는 '자기기만' 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만화에서처럼 사실을 밝힌다고 해서 걱정한 만큼 최악의 상황이 되진 않는다. 의외로 우리는 상대방의 추한 부분도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기 자신의 가장 추한 민낯을 보여줄 수 있는, 누군가의 가장 추한 민낯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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