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쟈스민 Dec 24. 2021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중학생 시절 친구가 내게 만화영화 여주인공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보통 만화영화 속 여주인공은 아름답고 여리여리한 이미지여서 내심 기대하며 물어보았다.

'주인공? 누구?'

돌아온 대답은 '유바바!'였고, 친구의 인중을 한 대 쳐줄까 하다 겨우 참았다. 근데 생각할수록 웃겨 다 같이 낄낄 거리며 웃은 것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대한 추억이다.


그 시기, 이 영화는 엄청나게 흥행했고 선생님이 영화를 틀어준다고 하면 보고 싶은 영화 1위가 되었다. 내가 선생님이 되고 나서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 1위도 바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다. 우리 반 아이들은 식상하다고 재미없다지만 처음 이 영화가 나왔을 땐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화려한 볼거리와 기괴한 등장인물이란!


어른이 되어 다시 보니 그 안에 담긴 철학과 수많은 상징에 또 다른 충격을 받았다. 어쩔 땐 이 영화가 품고 있는 철학이 너무나 현실적이고 사실적이어서 이게 애니메이션이 맞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아기자기한 장면과 아이의 시선에 맞춘 천진난만한 요소가 중간중간에 끼여있어 ‘맞다. 이거, 만화였지!’ 하고 무의식 중에 깨닫는다.


안 닮았다고! 유바바.


이 재밌고도 심오한 만화영화는 어떤 여자아이가 차 뒷좌석에 누워 친구가 준 환송 꽃다발을 안고 시무룩해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러다 이 주인공 소녀 '치히로'의 가족이 길을 잃고 대중탕이라고 적혀있는 이상한 터널을 건너게 된다. 그곳에서 맛있는 냄새가 나고 치히로의 부모님은 주인도 없는 음식점에 멋대로 들어가 허락도 없이 음식을 먹는다. 그 모습이 마치 돼지 같은데 그러다 정말 돼지가 되어버린다. 돼지로 변해버린 부모님을 보고 공황상태에 빠진 치히로는 이건 꿈이라며 현실을 부정한다.

알고 보니 치히로 가족이 길을 잃고 들어선 터널 건너편은 마녀 '유바바'가 운영하는 신들의 목욕탕이었다. 그곳에서 치히로는 미소년 '하쿠'의 도움으로 살아남게 된다. 하쿠는 이 신기하고도 무시무시한 세계의 지배자 유바바의 오른팔로서 유바바가 시키는 갖은 어렵고 위험한 일들을 처리하는 존재였다. 하쿠는 원래 하천의 신이었는데 그만 욕망에 눈이 멀어 유바바와 계약을 해버렸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밑에서 노예처럼 일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가 자유로워지려면 계약으로 인해 잊어버린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내야 했는데 끝엔 치히로의 도움으로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자유롭게 된다.

서로의 조력자 치히로와 하쿠.



영화를 보면 수많은 욕망이 드러난다. 치히로의 부모, 가오나시, 유바바, 하쿠.. 사실 유바바의 대중탕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이 탐욕에 눈이 멀어 마녀에게 영혼을 팔아버린 존재들이다. 자아를 잃고 죽을 때까지 혹사당해야 하는.. 치히로의 부모가 식탐으로 돼지가 되어버린다던가, 하쿠가 마법을 배우고자 유바바와 계약하고 자신의 이름을 잊어버리는 건 모두 욕망에 눈이 멀어 자아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는 제목이 딱 맞는 것 같다. '행방불명'이란 뜻은 '행방이 불명확하다'인데, 사라져 버려서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욕망과 파멸이 이 영화의 주제인 것은 이렇게 반복적으로 자아상실의 예를 제시하고 있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중심이 되는 게 하쿠다. 심한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은 자기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데 하쿠가 그렇다. 이름이란 무엇인가. 이름이란 자기 정체성을 의미한다. 이름은 우리가 누구인지 나타내는 말 그 자체이므로 바꾸어 말하면 하쿠가 자신의 이름을 잊어버렸다는 건 욕심에 눈이 멀어 자기 정체성을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자기가 누구였는지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린 체 살아가는 건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쿠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욕망과 파멸의 예가 아닌 것은 치히로뿐이다. 가장 나약한 존재로 그려지는 치히로가 아이러니하게도 알고 보면 가장 강인한 존재이다. 치히로는 욕망과 파멸의 본질을 잘 알고 그러한 길로 빠져들지 않는다. 결국 현명한 치히로 덕에 그녀의 부모도 하쿠도 구원받는다.


가장 강력한 존재는 치히로였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은퇴를 번복하며 완성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그가 제작한 이전의 작품과 비교했을 때 뭔가 다르게 느껴진다. 그가 주로 다루었던 소재가 전쟁, 환경오염, 자연파괴와 같은 이슈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대중목욕탕에서 보여주는 자아상실이라니! 하지만 사실 그의 작품의 핵심은 모두 같다. 전쟁, 환경오염, 자아상실 모든 것이 욕망이 가져온 파멸이니까.


보아라 결국 파국이다.


우리는 욕망에 눈이 멀어 이러한 파멸을 맞이하는 존재들을 심심치 않게 본다. 인간은 어리석다. 욕망이 파멸을 부르고 다시는 욕망에 빠지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같은 일을 반복한다. 그래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하쿠가 또다시 유바바의 제자가 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