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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랑삼 Jul 03. 2020

우리는 여기 머물게 너희는 더 자유롭게 날아

파나마 완전격리 백일의 소회


오전 6시의 적막감을 좋아한다





우리는 전보다 더 열심히 창 밖을 내다본다.

이 긴 격리의 시기에 우리집에 대해 하나 만족하는 점은 창이 강과 바다 쪽으로 크게 트여 있는 것이다. 높은 층이 아니라서 바다와 땅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것도 마음에 든다. 파나마의 태평양은 조수간만의 차가 크다. 물이 들어올 땐 마티아스 헤르난데스라는 이 작은 강줄기가 찰랑찰랑 물결이 인다. 물이 빠져나갔을 때는 수 킬로미터 너비의 드넓은 파나마만의 갈비뼈가 드러난다. 바다는 쉬지 않고 움직인다. 성실함이라는 말로 감히 정의할 수 없는 자연의 존재함을 느낀다.

이 바다를 바라보고 사는 존재가 우리만 있는 게 아니다. 파나마의 바닷새들, 하늘과 바다를 공유하는 명실공히 우리 이웃들.



내가 사는 동네는 해수면에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바닷새의 군집을 쉽게 볼 수 있다. 양 날개 길이가 2미터는 돼 보이는 덩치 큰 새들에서 큰 무리로 움직이는 작은 새들까지 종류도 다양하고 개체수도 상당히 많다. 하지만 자주 보는 만큼 잘 알지는 못해서 별명으로 부르곤 했다. 펠리컨, 벌쳐, '흰 새', '익룡', '우리가 구해준 새', '옆에 시끄러운 새'. 그러고 보니 새 박사들은 박식한 만큼 작명 센스도 좋은 편인 것 같다, 우리가 붙인 익룡에 비하면. 집 안에서 관찰할 수 있는 바닷새의 종류가 6종이나 된다. 이들은 보통 파나마만에 형성된 망글라르 숲이나 강가의 나무 위에서 살고, 강과 해안가 따라 이동하거나 바다를 건너 이동을 하고 먹이 생활을 한다.












사람도 없고.. 이상하게  이상적인 사진이어라


그러다 어느 날 그들과 우리가 동거하는 빌딩 숲 아스팔트 거리가 움직임을 멈췄다. 완전격리 조치로 온 세상이 고요해진 것이다. 그 흔한 잔디 깎는 소리, 클락션 소리, 질주하는 차와 오토바이 굉음, 오래된 차의 힘겨운 엔진 소리가 거짓말처럼 하룻밤 사이에 사라졌다. 거리를 걷던 사람들도 자취를 감췄다.




'이게 가능하구나. 파나마가 조용해지는 게'

파나마의 소음에 질릴 대로 질린 나는 격리를 막 시작하고는 이 도시의 침묵이 신기하고 반갑기까지 했다. 아침을 자동차 소음이 아니라 새들의 지저귐으로 시작했다. 도시의 변화를 눈치챈 새들은 차가 사라진 도로 위에 앉아서 노닐기까지 했다. 가끔 지나던 차들은 이제 새들의 눈치를 봤다. 길을 막은 새가 길을 비킬 때까지 기다렸다. 분명 운전자는 '이 녀석들아 그러다 차에 치인다!'라고 말하고 있었을 것이다.





컴퓨터를 하느라 어깨가 뻑적지근하고 눈은 침침해지는 시간이 되면 자리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며 창가에 선다. 한낮의 더위를 피하려고 쳐놓은 블라인드를 걷는다. 멀리 수평선에 떠 있는 대형 선박들을 한번 훑고 가까운 해안가로 시선이 움직인다. 이제 우리 이웃 새들을 관찰하는 시간. 두두는 새들의 특이할 만한 동향을 포착하면 나를 불렀다. 망루에 선 병사 같다. '새들이 모여서 목욕해!' '새들이 밥 먹으러 간다야' 혹은 '새들이 밥 먹고 돌아오네' 같이.

우리는 우기가 와서 새들의 움직임이 더 활발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내에서 머물다 보니 바깥을 더 예의 주시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느낀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새들은 분명 종에 따라서, 시기나 시간대에 따라서, 날씨에 따라서 달리 움직였다. 움직이는 방향도, 무리 수도, 포메이션도, 비행법도 종마다 다 달랐다.

새 관찰의 기간이 길어지자 새들에 성격을 부여하기도 했다. '펠리컨은 관대한 새야', '벌쳐는 하늘을 나는 히피야' 같이.





파나마 완전격리자의
바닷새 관찰일기






그래 너희는 날아,



6월 초, 엄청난 수의 네오트로픽 가마우지 무리가 움직였다. 서쪽 바다에서 끊임없이 이동했다. 새들은 늘 눈에 보이지 않는 주행선이라도 있는지 꼭 해안가에서 강하구를 지나 강줄기를 따라서 움직이곤 했다. 그런데 어떤 무리들은 사오십층 고층 빌딩 사이 공간을 '침범'하듯 지나갔다. '이 새들이 이렇게 동네를 가로지르는 건 본 적이 없어' 말을 했다. 두두가 영상을 남기려고 테라스로 나가자, 겁이 많은 이 새들은 급하게 경로를 돌려 강줄기를 향해 우회했다.


분명 격리로 동네가 조용해지자 생긴 변화였다. 설거지를 하면서 아파트 창가를 보란 듯이 지나는 새들 무리를 보며 대리만족했다. 많은 인간들이 갇혀 있는 빌딩을 빠르게 지나가는 새들. 가마우지 무리의 비행을 감상하는 나는 사람이면서 새가 되기도 했다. 나는 쾌감을 느끼는 동시에 부러움도 느꼈다. 새는 건물 창가에 붙어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보란 듯 스치고 지나갔을 것 같다. 유독 많이 주차장에 갇히고 차와 충돌 사고가 많은 새들이었다. 이 빌딩 숲이 생기기 전 그들의 하늘은 지금보다 훨씬 더 넓었을 테다. 그래 너희들은 날아, 사람이 없는 이 특별한 시간을 누려.





벌쳐와 '익룡', 아메리카 군함조







애정하는 펠리컨들






너희는 내 맘도 모르고 멀어져 가니




5월 어느 일요일 한 뼘만 한 테라스에 앉아 있었다. 그날은 유독 펠리컨들이 무리를 지어서 서쪽으로 이동했다. V자 포메이션으로 해안선을 따라 평화롭게 유유히 지나갔다. 그리고 좀 더 높은 하늘에선 벌쳐나 '익룡'으로 보이는 무리가 원을 그리며 기류를 즐기고 있었다. 어디에서 오고, 어디에서 무엇을 하러 가는지 GPS라도 붙여서 알고 싶은 지경이었다. 답을 내기 위해 되는 대로의 상상과 추측을 내놨다. 그러다 과거 기억을 훑는다.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저 새들을 봤던 때를 떠올린다. 이 바닷새들을 보던 곳은 늘 덥고 습한 공기에 온 몸이 끈적거렸다. 그래도 새들만큼 우리도 파도를 즐기고 바람을 맞고 공기를 가르는 기분을 느꼈다. 한편 테라스에서 멀리 보이는 새들을 눈으로 좇으니 이거 참 단조롭다.



하지만 불만할 일이 뭐야, 난 이 바닷새들 덕에 격리 기간 중 많은 날들이 활력으로 채워졌다. 밖에 못 나가다 보니 이젠 바깥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래서 새들이 날아오를 땐 그들에 심히 이입을 하게 된다.

창틀을 밟고 허공으로 뛰어들어 하늘을 나는 환상. 가마우지들처럼 사람이 없는 거리를 용감하게 지나도 봤다가 벌쳐처럼 빌딩 위로 치솟아 오를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하나가 되어서 빙글빙글 원을 그려야지. 그러다 해질녘이 되면 펠리컨들 따라서 서쪽으로 유유히 이동할 거다. 그럼 이제 펠리컨들이 어디로 향하던 건지 알게 되겠다! 펠리컨들만 사는 무인도 일지, 사람 발 닿지 않은 해변가 일지!

상상은 즐겁다. (오랜 격리로 정신을 놓은 거. 아니다.)

나의 이웃, 바닷새들은 이런 내 맘 모르고 오늘 저녁도 자기 자릴 찾아서 어디론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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