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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랑삼 Jul 13. 2020

여행이 끝난 후의 여행을 좋아한다

여행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롭게





여행이 끝나고 

빈 집 안에 들어서면



꼴랑 며칠 떠나 있었을 뿐인데 집이 낯설다. 

'사나흘 정도면 사람은 다른 공간에 적응을 해버린다는 건가?'  

집에서 사람 두 명, 캐리어 두 개 정도의 부피가 빠졌을 뿐인데 공허해 보인다. 며칠 전 만해도 내가 나로서 살던 공간 속에 입장한다. 아직 여행자 모드를 벗지 못한 집주인의 일탈의 기운과 빈 집 사이에 묘한 기운이 감돈다. 마음은 가뿐하지만 사실 몸은 무겁다. 그래도 한시바삐 처리할 일들이 있다. 바닷물에 젖은 옷가지들, 세탁기에 돌려야 할 빨랫거리부터 후다닥 처리한다. 전前여행자의 남은 기운을 쏟아서. 대충 정리해 대충, 눈에 안 보이게 집어넣어. 트렁크는 전처럼 아예 없던 것처럼 어두운 구석으로 내몰린다. 할 일을 대충 다 한 것 같다.




쿠스코 사람들에게서 받은 선물들 잊을 수 없다

하아. 긴장한 몸을 의자에 놓으며 만족스럽게 다음 단계로 돌입한다. 트로피를 펼쳐보는 시간. 짐을 풀 때 펼쳐 놓은 기념품을 탁자 위에 이쁘게 나열해 두고 사진을 찍는다. 어디에 장식이라도 할까 고민하지만, 사실 물건이 널려 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서랍에 두기로 한다. 언젠가 장식장이 있는 집에서 온통 전시해 둬야지, 순도 높은 낙관론자의 미래. 카메라는 기념품 단체샷을 찍으며 마지막 역할을 했다. 클릭, 카메라에서 카드를 눌러 빼내는 느낌이 좋다. 메롱, 튀어나온 작은 메모리 카드를 컴퓨터에 당장 넣고 폴더를 연다. 나의 소오중한 사진들. 여행이 끝나고 난 뒤의 여운에 온몸에 적시자.



사진을 한 장씩 보노라면 여정길에 지나친 풍경이 눈 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지겨워지지 않을 정도로만 반복해서 봐야 한다. 아무리 좋고 이쁜 사진도 계속 보면 질리고 아쉬운 마음이 슬금 생긴다. 나보다 일상 충격파를 더 크게 받고 있을 '회사인 미스터' 두두에게 엄선한 사진 몇 장을 보내면서 여행의 여운의 즐기기도 전에 일상 복귀한 그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 달래기를 시도한다. 마음에 드는 사진을 우린 동시에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니가 이 사진 올릴 거면 난 다른 거 올릴게 협의점을 맞춘다. 당분간 하트를 받으며 간질간질 한 여운을 조금 더 느낄 수 있다. 






여행이 끝나고

혼자, 다시 그곳으로



짐을 다 정리하고 집이 안정이 되면 나만의 여행 세계를 연다. 이번엔 동행 없이 혼자 떠난다. 마음은 설렌다기 보단 침착하고 약간 비장하다. 준비물은 적당한 속도의 인터넷, 컴퓨터와 허리 쿠션 정도면 된다. 컴퓨터 모니터 앞이 공항 카운터다, 내 '킹스 크로스 역 9와 3/4 승강장'. (요즘 해리포터 시리즈 정주행 했다)

먼저 여행 사진 폴더를 열어 시간순으로 차근차근 넘겨본다. 깊은 회상 속에 잠겨 본다. 길 위에서 스쳐 지나간 크고 작은 흥미로운 것들, 가끔 떠올랐던 질문들을 떠올린다. 최대한 빨리, 이 여행의 세포가 아직 살아 있을 때 시작해야 한다. 몇 가지 생각들은 금방 선명하게 떠오르지만, 아 그때 분명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는데... 한참을 머릿속을 파 들어 가도 기억이 날똥 말똥할 때도 많다. 여행 중 한 때 강력하게 날 자극하던 호기심도 금세 망각의 그림자 뒤로 사라진다. 생각이 떠올랐을 때 메모 남길 부지런함이나 의지, 강한 동기 부여는 없다는 게 문제다. 잊힌 질문은 몇 해가 지나서 무던한 일상에서 앙큼하게 고개 내밀기도 한다. 





여행 중 무엇을 보나요?



그간 내 관심을 받은 질문들엔 이런 것들이 있었다 ;

코스타리카 시골 도로가에 파는 그 음료의 정체는 뭐지? 

파타고니아 토레스델파이네는 돌의 색깔은 왜 다양하지?

멕시카 문명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은 호수 위에 지었다면서 멕시코 시티는 왜 호수가 없나? 

플로리다 키웨스트엔 왜 언제부터 무지개 깃발을 걸었나? 

... 등.



한 가지 의문점을 붙잡고 폭풍 서치를 한다. 가능한 키워드 모두를 조합해 본다. 운이 좋으면 금방 내 호기심의 가려움증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자료를 찾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전문 자료를 뒤져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땐 논문을 가지고 한참을 끙끙 대다가 내 주제에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현실 자각을 한다. 배경 지식도 없으면서 전문지식을 이해해 보겠다고 말이지, 용어 하나도 제대로 모르는 마당에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답을 찾길 포기하면 무지의 몇 년 혹은 평생을 보낼까 봐 그리고 궁금해했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릴까 두렵다. 이왕 칼을 빼 든 김에 되는 대로 결판을 내자며 마음을 다잡는다. 꾸역꾸역. 노트패드를 열어 용어 정리부터 시작한다. 질문과 무관한 정보는 무시하고 필요한 정보만 집중적으로 - 가끔 옆으로 샌다. 그러다 처음 질문과 영 다른 곳에서 헤매는 나를 발견한다. - 장님 코끼리 만지 듯하더라도 알아 내고야 말겠어.



질문 한 줄을 가지고 공부를 하다 보면 난 중남미 고고학자가 되었다가 사회학자나 역사학자, 지질학자가 되었다가, 스페인어 번역가가 되기도 한다. 서른이 지나서도 꿈이 이렇게 많고 휘휘 바뀌는지 이마를 친다. 하지만 원하는 답을 얻고 나면 아주 만족스럽다. 내 집착이 승리했다. 기특해. 이날 저녁 식사는 아주 흥미로울 것이다. 여행 동행 두두가 퇴근하면 오늘 알아낸 이야기를 공유할 것이다. 며칠 만에 공부한 얕은 지식을 말로 설명하고 상대를 이해시키는 게 영 순탄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코끼리를 처음 만져본 장님 1은 너무 신기하고 흥분한 나머지 친구 장님 2를 불러 앉히고 들떠서 자기가 희미하게나마 알아낸 사실을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이다. 그도 나와 같은 흥분을 느끼길 바라면서.




 

스페인어로  나는 안다 혹은 너 (스스로가) 되어라 라고 읽을 수도 있는 상파울루 역명








여행 후 남은 것이 아쉬움이지 않기를.  





이십 대 초반에 처음 떠난 장기 여행이 하필 유럽이었다. 말만 들어도 청운의 꿈이 그려지는 '유럽배낭여행'. 큰 배낭을 메고 돌 포장도로 위에 섰을 때, TV로 보고 듣던 세상이 실재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다른 나라'라는 개념을 알아버린 어린 시절 나로부터 시간을 뛰어넘은 듯 착각이 들었다. 그 도시의 모든 걸 흡수하고 싶은 열망이 꿈틀거렸다. 안내문이나 여행서 설명글은 내 갈증을 친절하게 해소시켜 주려는 하는 듯 보였지만 사실 어수룩한 관객을 조롱하고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단 몇 줄로 과거 누군가의 위업을 압축하고, 이 정도는 알지? 다 이해됐지? 마침표를 찍어 버리는 무심함, 그 오만방자함이, 그리고 그 몇 문장 안 되는 단락 중에서 제대로 이해하는 용어 하나 없는 내 무지함이 실망스러웠다. 분명 세계사 배웠는데.. 안타깝게도 그 감정은 사십일의 여행기간 동안 나를 따라다녔다. 알랭 드 보통이 <여행의 기술>에서 말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여행의 위험'이었다.



여행의 위험은
우리가 적절하지 않은 시기에,
즉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물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정보는
꿸 사슬이 없는 목걸이 구슬처럼
쓸모없고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 된다. 




안내문을 어떻게 읽는 타입인가요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때의 열망은 채울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때 나는 센 강을 지나며 다리 하나하나의 연원을 궁금해했다. 그런데 그 수많은 질문은 어디 가고 이젠 그런 여행을 다녀왔었는지도 까마득하다. 그래서 그 여행은 내게 무엇을 남겼나? 몇 가지 사건들의 드문드문한 퍼즐 조각, 뭉뚱그려진 감정의 기억, 여행의 증거물인 사진들. 경험과 추억이라고 포괄하는 것이 남았다. 결과적으로 눈 빠지게 해석하던 안내판의 숫자 정보와 긴 이름, 어쩌고 하는 양식이나 분파 등은 그 내재된 의미를 파악할 자격이 있는 누군가에게 유용했을지 모르나, 나에겐 암호와 다를 게 없었고 그 사실 정보들을 기억할 수도 없었다. 나는 내심 속상했다. 하지만 실망감은 기대나 열망이 커서 생긴 반사작용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가 집중해야 할 감정은 실망이 아니라 기대와 열망이다. 나는 질문을 계속한다.





상파울루 밤의 기억


내가 말하는 '여행 후 여행'은 듬성한 인식의 그물을 살피는 후반 작업이다. 

여행이란 바다에 푹 내려놓은 그물을 걷는다.

그물에 남아 있는 것을 살피고 그물망을 빠져나간 아쉬운 것들을 떠 올린다. 

그리고 한 데 모은다. 가능하면 꿰어도 본다. 




여행을 왜 하느냐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누구나 여행에서 남는 것을 온전히 보호하고 싶을 것이다. 나는 '여행 후 여행'을 통해 여행 중에 겪는 스트레스나 실망감, 권태의 위험은 덜고 기대와 호기심에 더 집중하고 싶다. 여행의 '안전'을 보강하는 작업이며, 여행 순간에 보험 같은 기능을 하기도 한다. 궁금해? 궁금하면 나중에 알아보면 되지! 뭔가 알아가야 한다는 여행자의 책무와 압박감에서 자유로워지는 주문이다. 



질문은 내 선호와 관심에 따라 이루어진다. 내 관심이 향하는 대상은 다른 장소에서 보지 못한 차이를 느꼈기 때문에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곳만의 분위기가 있어, 왜 유달리 이곳에서만..?, 왜 여기서 더 많이...? 왜 더 자주...? 등과 같은 정도를 나타내는 부사가 느낌표나 물음표와 함께 떠오를 때, 그것들이 이번 여행을 특별하게 만든다. 차별점에서 보이지 않는 가치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이 사소한 것이라고 해도 그 안에 그 지역, 국가의 문화, 역사, 지리 등 방대한 배경이 숨어있다. 돌멩이 하나에도 이 돌은 백악기 후기에 심해 퇴적층에서 만들어졌어라거나 이 돌로 만든 칼은 이 지역 어느 문명대에 값비싼 상품으로 가치로 인정받았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 남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질문의 주체는 나라는 사실이다. 지식은 널려 있다. 내가 아무리 그 돌멩이에 대해 조사를 하고 모르던 사실을 알아내더라도 세상에 하나도 새로울 것 없는 잡식이다. 구글에 검색하면 수백만의 유사한 결과 자료가 나올 테고 누군가에게는 상식일지도 모른다. 혹은 이 발견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흥미롭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정리한 내용을 블로그에 올려도 구독자 수가 겨우 두 자릿 대면 괜히 마음 상한다. 하지만 다시 한번, 질문의 주체가 나라는 걸 기억하자. 철수도 영희도 아닌 내가 궁금해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가는데 도움을 주는 여행의 가장 큰 성과다. 원하는 만큼 지리학자, 사회학자, 역사학자, 고고학자가 되었다가 마침내 나로 완성된다.





아, 또 하나 좋은 점이 하나 생각났다. 

'여행 후 여행'은 이 판데믹의 지루한 격리 중에도 언제든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 (라고 위로하고 싶은 요즘)





'저어기 우리집 있네' 착륙하는 비행기에서 늘 우리 집 아파트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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