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부스를 닦다가 여행에서 깨어났다
여행의 에필로그,
집 현관문 앞
여행의 노곤함에 온몸이 푹 젖어서 아파트 현관문 앞에 섰다. 세 개의 대용량 캐리어와 그만큼 큰 택배 상자 하나를 세워놓으니 사람 둘이 서기에 복도가 비좁다. 집 열쇠는 매일같이 매고 다니던 여행용 앞 가방의 가장 열기 불편한 지퍼 안에 그대로 숨어 있었다. 열흘 하고도 며칠 전, 집을 나서며 똑같이 문 앞에 섰던 순간이 떠올랐다. 문이 쾅. 단단히 닫히고 난 뒤 열쇠는 폴리 재질의 가방 주머니 속으로 쏙 미끄러져 들어갔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일상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려 한다.
큰 문을 열자 정지된 공기가 피부에 와닿았다. 바깥 온도보다 조금 더 찬 것 같은 공기. 집의 모양 그대로 굳어진 것 같은 공기에 파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걷어 내지 못한 건조대의 널린 빨래, 설거지대에 쌓여있는 그릇들. 모두 그대로였다. 공항으로 나서기 전이 여행보다 오히려 더 고됐다. 습한 나라에선 식자재건 그릇이건 옷이건 방치한 순간 제 주인이 바뀌어 버린다. 색색의 곰팡이로.
이것이 으른의 여행인 거신가~ 속엣말로 조-크를 날린다. 내 몸 하나에 짐 꾸러미만 들고 달랑 나갔다 달랑 돌아오면 그만이었던 이십 대엔 얼마나 자유롭고 무책임했나.
오빠는 먼저 씻어, 내가 짐 정리부터 할게.
조금의 틈도 없이 남편 두두를 화장실로 밀어 넣는다. 자신만의 여유를 사수하는 것이 그의 결혼생활의 주된 사명인 두두지만, 그도 군말 없이 직행했다. 코시국의 여행은 그래야 했다.
나는 지체 없이 트렁크를 열어재꼈다. 깨끗하게 정리된 옷들은 구겨진 빨랫감이 되어 돌아왔다. 빨랫거리가 든 비닐을 쏟아내 속옷 따로, 티셔츠 따로, 손빨래용 따로 분류한다. 트렁크가 반 이상은 다 정리된 듯하다. 나머지는 엘에이 한인 슈퍼에서 모셔온 소중한 한식 식자재와 과자들. 전리품들은 바로 서랍 속으로 넣지 않고 부엌 카운터에 모아놨다. 인증샷 하나 정도 남겨놔야 이 뿌듯함이 오래갈 것이다.
안방 건너로 웽 드라이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두두가 샤워를 다 했다는 신호였다. 곧 촉촉하게 젖은 머리를 닦으며 그가 나왔다. 시원해? 답을 알면서도 괜히 물어본다. 샤워를 마친 그가 부럽다. 소파에 푹 파묻혀서 본격적으로 노곤함에 몸을 맡길 수 있을 것이다. 여행이 주는 최고의. 아니, 최최고, 궁극의 즐거움.
내 몸 씻기는 일이 귀찮다는 생각이 스치지만 하릴없이 화장실로 움직였다. 두두가 남긴 습기가 자욱하다. 옷을 벗는다. 짧건 길건 비행을 하고 나면 입은 옷이 눅진하게 때 범벅이 된 듯하다. 한 겹 한 겹 벗겨 내는 일이 개운하지만 힘겹다. 몸에 달라붙어 있다 떨어지며 압박된 흔적이 남았다. 얼굴은 누렇게 떴다. 각질과 피지가 들떠서 푸석푸석하다. 알몸에 물을 쏟아붓는다. 비누칠을 한다. 나도 곧 성공한 여행자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샤워부스를 닦으며
다시 일상으로
집으로 돌아와 옷을 벗고, 샤워를 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여행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샤워부스를 나가면 나는 물기 남은 몸을 대충 닦고, 여행의 여운에 스스로 몸을 던질 것이다. 소파에서 나란히 앉아 여행이 잘 마무리됐다는 공식 선언을 할 것이다. SD카드에 남은 사진을 보며 끝 모를 이야기를 풀어내겠지. 어서 다 씻고, 스킨로션을 얼굴에 찹찹찹 때려 바르고, 거실로 나가고 싶다!
하지만 나는 샤워부스에서 반강제적으로 일상인으로 돌아왔다. 여행자로서의 감각과 의지를 넘어서 일상인, 주부로서의 의무에 따라 몸이 움직여졌다. 샤워를 끝낸 알몸으로 나는 물밀대를 들었다. 샤워 부스의 타일의 물기를 긁어 내렸다. - 번거롭지만, 파나마의 습기로부터 집을 방어하는 최선의 노력이었다. - 숙소에서는 물을 바닥에 줄줄 흘리며 욕조를 나와 잘 접힌 큰 타월을 펼쳐 몸을 닦으면 그만이었다.
그래 이게 내 일상이었지.
슥슥 습기가 맺힌 벽을 끌개 모양의 밀대로 긁어내자 물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마음속에 떠올랐다. 무엇 때문인지 나는 샤워부스를 닦을 때마다 그녀를 생각했다. 남편 친구의 여자 친구였던 그녀를 사당의 술집에서 처음 알게 됐다. 조금 지나 그 둘은 부부가 되었다. 몇 번 술자리에서, 카톡으로 이야기를 나눠 본 그녀는 나보다 한두 살 어릴 뿐인데 젊은 감각이, 활력이 느껴졌다. 디자이너로 일했던 그녀의 인스타 피드는 그녀만의 감성이 은은하게 감돌았다. 몇 년 전부터 그런 그녀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 암이었다.
여행 동안 잊고 있던 그녀의 얼굴이 샤워부스 닦으니 다시 그려졌다. 그녀는 여행을 많이 다니는 언니가 부럽다고 말했다. 이 여행이 죄책감이 되어 잠시 스쳤다. 혹시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을 보았을까? 마음 상하진 않았을까? 아니다, 너무 깊게 몰입하지 말자. 되잡았다. 기도를 하자. 나는 기도를 할 때마다 기도를 어떻게 하는 건지 몰랐다. 하늘에 기적을 구하는 것이 기도는 아닌 것 같았다. 멋대로 죽음을 상정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녀의 활기 가득한 미소를 떠올리기로 했다. 그녀의 일러스트, 손그림들, 바닷가 큰 바위 위에 올라가 두 팔을 펼치던 모습. 그녀는 씩씩하게 싸우고 있다.
여행 끝
일상의 옷으로 갈아입고
집 문 앞에 서니 비로소 몇 시간 전까지의 여행길이 찰나의 순간같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여행의 끝을 짐작하지 않는다. 나는 집 안에 정지되어 있는 바짝 마른빨래, 먼지가 내렸을 설거지대의 식기들의 다음 차례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여행은 삶의 선상에 드문 드문 있다가 사라지는 짧은 실선일 뿐인데, 여행과 일상 사이게 짙은 괴리를 만든다는 게 신기하다.
지난 여행의 풍경이 그립지 않다. 당분간은 그럴 것이다. 여행을 할 수 있었다는 것도, 돌아갈 자리가 있다는 것도 하늘에 감사할 일이다. 여행과 일상의 경계 사이에 머무는 지금이 유난히도 의미 있게 느껴진다. 낯선 땅과 여러 모습의 사람들에게서 얻어온 새로운 에너지를 가슴에 머금으며, 일상에 내려 뒀던 소중한 내 것들을 다시 찾고 있다.
나는 샤워부스에서 일상인으로 환복을 했다, 보통날과 다름없는 기도를 드리며.
두두는 언제 여행이 끝났음을 느끼는지 궁금해졌지만, 묻지 않기로 했다. 그의 대답을 알 것 같았다.
나는 회사 출근할 때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