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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랑삼 Jan 10. 2021

별똥별 세던  그 밤을 못 잊어서

파나마살이 캠핑의 시작

`




파나마에서 캠핑을



파나마에서 캠핑을 해 볼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안전에 대한 우려가 드는 건 차치하고서라도 하룻밤을 보내는 데 필요한 장비들을 사모으는 것이 싫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해외생활에서 손 떼 묵은 물건들을 버리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다. 그런데 우리집 창고엔 부피 큰 침두 팩과 텐트가 놓이게 됐다.



파나마를 다니다 보니 야영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첫 번째 캠핑은 파나마 북부, 보케테 여행에서 바루 화산 정상에서였다. 보께떼로 차를 몰고 가는 길에 대형 철물센터에 가서 텐트와 침낭을 샀다. 화산 정상엔 숙소가 없음이 당연했다. 싸구려 텐트가 포장된 상자를 집어 들고 있으니 이 여행 계획이 새삼 어처구니없게 느껴져서 실없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땐 생각했다. 1회용 텐트일 것이라고. 그런데 웬 걸! 이 20불짜리 텐트는 폴대가 부서지도록 - 물론 언제 부서지거나 찢어져도 놀랄 일이 아니긴 하지만- 자신의 온전한 쓰임을 감당해야 할 운명이었다.




화산 정상에서 데뷔를 한 텐트



파나마의 여행 또는 관광 환경은 한국인의 상식과 달라 새삼스럽게 놀라곤 한다. 특히 보카스 델 토로, 보케테 같이 해외 관광객에도 알려진 지역을 제외한 곳에는 볼거리는 있으나 관광지는 없었다. 멋진 자연경관들, 수 십 미터 높이에서 떨어지는 삼단 폭포, 기이한 형상의 산봉우리, 화산 분출이 만들어 낸 협곡이 있어도 방문객들이 머물고, 소비할 만한 상업 시설들이 없다. 아마도 국내 관광의 소비력이 여태 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우리 부부는 한적한 풍경에 놀라며 말한다. '한국이라면 지금쯤 이 계곡가에 파전에 탁주, 백숙 파는 식당들이 널려 있을 텐데.'



두 번째 캠핑은 이런 이유로 하게 됐다. 잘 곳이 없어서. 근방에 묵을 숙소가 없었다. 본인의 파나마 살이 '그곳에 가고 싶다' 리스트에 있던 코클레 주州 피카초 데 올라Picacho de Ola를 가기 위해서였다.





캠퍼의 자연 예찬



지루한 우기의 끄트머리, 두두의 직장 동료인 카를로스가 흥분되는 뉴스를 전했다. 피카초데올라에 가는 방법을 찾았다는 것이다. 삼사십 분 거리에 있는 캠핑장에서 만든 투어 프로그램으로, 캠핑장에서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새벽에 이동해서 산을 오르는 일정이라고 했다. 호텔도 여관도 없는 곳에 캠핑장이 있을 줄이야. 긴 잠에 들었던 텐트가 빛을 볼 차례였다.



이번 일정은 카를로스와 그의 여자 친구 밀라그로스도 함께 했다. 우린 토요일 오후, 라틴타임에 맞춰 느즈막한 시간에 출발했다. 3시간을 달려 캠핑장에 다 이르렀을 즈음엔 태양이 너른 대지에 붉은빛을 고루고루 내려 보내고 있었다. 소와 말을 풀어 키우는 임야를 가운데를 뚫고 달리다 보니 점점 파나마 북쪽 산맥의 품에 가까워졌다. 캠핑장은 좀처럼 예상이 되지 않게 좌회원 우회전을 반복하다가 비포장 도로를 지나고서야 그 입구에 도착했다. 먼저 오랜 시간 도로 위에서 긴장한 몸을 풀며 캠핑장으로 뛰어 들어갔다.







차를 타고 올 때 본 산등성이가 캠핑장이 있는 언덕을 둘러 펼쳐졌다. 산줄기는 나무 숲으로 전체가 뒤덮이지 않고, 정상에 가까울수록 관목만 있는 구릉이 있었고, 꺾어지는 암벽 절벽이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산이라고 하기에 깊지도 높지도 않고 정상은 편평했다. 그 위에 성성하게 서 있는 큰 나무들은 셀 수 있을 정도였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루. 그 모습이 두드러져 저 나무 하나를 집고 서서 땅 아래를 내려다보는 상상이 불쑥 들었다. 오늘 이 대지의 에너지와 아름다움을 등에 베고, 눈 앞에 펼쳐 놓고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다 가진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별똥별 세는 어른들



아름다운 저녁노을의 시간은 온전히 누리기엔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빛이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텐트를 치고, 짐을 정리하고, 바베큐 불을 붙여놓아야 했다. 쉴 새도 없이 우리 네 명은 작은 베베큐 그릴에 둘러앉았다. 소고기 엔뜨라냐와 집에서 씻어온 채소를 잘라 올리고, 한 켠엔 연어 조각이 올라갔다. 밀라그로스는 육식을 하지 않는다는 걸 새로 알았다.



바베큐 불을 지피면 불의 만지는 권력자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 사람이 의지로 인해서거나 나머지 멤버들의 자연스러운 동의로 인해서 자연 속 야생의 권력이 발생한다. 이 날 불의 권력은 자칭 '고기 잘 굽러'라는 두두에게 갔고, 영광의 고기 집게와 가위를 쥐었다. 그리고 카를로스에게 말했다. '너흰 고기 가위로 안 자르지? 이게 얼마나 편한데!'



두두는 고기가 익는 대로 차례로 각자의 접시 위에 올렸다. 완전한 어둠이 된 들판에서 맥주 캔을 모아 살룻Salud, 건배를 하고 카를로스가 선곡한 음악을 들었다. 라디오 헤드의 <creep>이 선선한 밤공기 중에 작게 울려 퍼졌다. 두두도 빠질 세라 스포티파이에 저장해 놓은 몇 곡을 틀었다. (시골 깊숙한 캠핑장에는 와이파이도 3G도 연결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고기도 구워지고, 분위기 좋은 음악도 틀어주고, 가끔 대화에 맞장구치다가 웃기도 하고, 그것도 아니면 미소를 짓다 주위를 둘러봤다. 어둠이 사방에 깔려 있었다. 내 등 뒤 어깨에도 짙은 어둠이 달라붙었다. 누군가와 함께지만, 의식을 그림자 뒤로 물리기 좋은 시간이었다. 멍 때리기. 그런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러다, 누군가 먼저

어? 나 별똥별 봤어! 라고 외쳤다. 그리고 곧 다른 누구도 나도 봤어! 라며 탄복을 이어갔다. 어느새 다 같이 빛이 아닌 어둠의 저편에 있는 밤하늘을 올려보며, 별똥별을 누가 많이 봤나 콘테스트가 열렸다.  



하늘엔 은하수가 흐르고, 크고 작은 별과 인공위성이 가득 빛났다. 별똥별은 우리 지루하지 말라고 무시로 길고 짧은 획을 긋고 사라졌다. 이 잊을 수 없는 황홀한 밤의 기억을 기록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름다운 순간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게 너무 아쉽다. 카메라를 들었지만 결과는 검은색 스크린이거나 폭발하는 광선만 찍혔다.



은하수가 하늘에서 조용히 위치를 옮겨가고 우리는 텐트로 들었다.

내일 해뜨기 전에 산에 오르려면 일찍 일어나야 했다.




드디어 피카초데올라에 올랐다




대지가 아침 첫 빛 받을 때





하늘은 분 단위로도 달라진다



우리는 그 후, 두 번 더 그 캠핑장을 찾았다. 그 밤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고, 그 밤하늘을 기록하고 싶었다. 한 달 뒤 우린 다시 똑같은 곳에 텐트를 쳤을 땐 바람이 어찌나 세차게 불어 치는지 텐트를 언덕 아래 골짜기로 이사를 해야 했다. 게다가 약간의 어그러짐 없이 완벽한 모양의 보름달이 떠서 별빛을 가릴 줄이야.



그리고 다시 우기를 보내고 지난 달, 빗방울이 떨어지는 흐린 날에 이곳을 다시 찾았다. 진득한 습기를 품은 큰 구름이 산을 넘어 태평양으로 꾸준히 밀려났다. 얼굴엔 땀방울이 흐르고 KF94 마스크 사이의 공간엔 더운 김이 후끈거렸다. 구름을 보니 오늘도 별을 보긴 글렀다, 마음 내려놓자 혼잣말을 했다. '그날 밤하늘'을 떠올릴수록 동떨어진 현실이 더 도드라져 보였다. 비구름은 그렇다 치고, 팬데믹이 온 미래를 상상이라도 했을까.

모순적으로 마스크라는 장치를 벗을 때마다 지금 얼마나 자유로운지를 들숨과 날숨으로 허파 가득히 느꼈다. 허파 가득 자유가 채워지니 불만을 할 수 없다. 지난 긴 격리를 생각해보라. 나는 별 사진을 남기겠다는 기대를 접고서, 우리는 야영지 언덕돌아 다니며 유치한 컨셉사진을 찍고 즐겁게 놀았다.


 

하늘은 매일, 아니 매 분 단위로 달라졌다. 파란 하늘을 틈타 사진을 찍다 보니 소나기가 쏟아져 텐트로 피신했다가 잠시 후 무지개가 떴다. 요사스러움에 기가 막혔다. 그렇게 몰려오던 짙은 구 어둠이 내리자 약간의 습기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리고 별빛이 떠올랐다. 은하수는 없었다. 밤이 깊도록 둘이서 밤하늘을 보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 다시 밤하늘을 찍었다. 그날 친구들과 본  밤하늘은 기대하지 않은 선물이었다. 그와 똑같은 하루를 바라지 않는 게 좋다. 대신 내 머리 회로는 이따금씩 피카초데올라, 카를로스와 밀라그로스, 싸구려 텐트를 떠올릴 때 아름다운 기억의 연쇄가 작동할 것이다. 어느 순간 사는 게 구름 낀 것처럼 갑갑할 때, 별빛을 좇아 캠핑장을 찾았던 날들을 기억해야겠다.





음 사실 조금 과장되어 나온 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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