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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랑삼 Feb 14. 2021

경찰 앞에서 역주행한 사연

도로 위 시위자  VS  도로 위 여행자



파나마 국내여행의 시작과 끝

판아메리카나 도로



파나마 서쪽 국경 끝에 위치한 치리끼 주州 여행을 마치고 도시로 돌아가던 날이었다. 집까지 주행거리가 530km, 내비게이션 어플에서 알려주는 예상 시간이 7시간 30분이었다. 딱 그 정도 시간만 들여서 도착하기만 해도 행운인 일이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기간의 앞, 뒤 이틀은 꼬박 이동하는 데만 쓰였다. 우린 에어비엔비의 독일인 주인이 차려준 아침 상으로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운전을 시작했다.




길을 나서며 마음이 편했던 점은 치리끼 주에서 파나마 시티로 향하는 방면의 통행이 훨씬 수월하다. 포트홀 없이 매끈한 아스팔트 길, 적은 교통량, 도로 인근 마을이 없어 불시의 일에 마음 졸일 일도 적을 것이었다. 이 반대의 경우가 파나마 시티에서 외곽으로 나갈 때이다. 결국 파나마 시티로 들어갈 때 보게 될 길을 먼저 겪지 않아도 되는 것이니 조삼모사이긴 하다.



여하튼 치리끼 주의 주도인 다비드를 지나서 하나의 거치적거림 없이 일정한 주행속도를 유지하며 달리고 있었다. 오르락내리락 얕은 고개들을 거치다 다시 어느 오르막에 이르러 한 무더기의 정차된 차들이 눈 앞에 나타날 때까지 그랬다. 우리 차도 그 무리 사이에서 파킹에 기어를 두고 사이드 기어까지 끌어올리고 정차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 우리 옆 소 무리를 싣고 있는 트럭 주인아저씨가 도로 한가운데서 할 일 없어진 팔다리를 이리저리 휘젓고 있었다. 정보가 없는 상황일수록 친화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 아저씨예, 앞에 무슨 일인데예?

(시골 농장 아저씨와의 대화니, 사투리로 구성해본다. 나의 고향 부산말.)

- 저 앞에 도로에서 인디오들이 시위하고 있다  하나, 어데로 가는데?

- 파나마 시티로 갑니더..

- (이마를 짚으며) 와따메, 시상에! 마, 돌아가삐라, 유턴해가꼬 돌아가라. 이거 한 시간이 걸릴 지 두 시간이 걸린 지 모린데이!



소를 태운 트럭. 뙤약볕이었다.




상황 파악 완료. 또다시 걸려들었구나, 판아메리카나 도로의 덫에.

'소 아저씨'의 말을 듣고, 일단 차에 내렸다. 뒷좌석 문을 열고, 식량 꾸러미에 팔을 쑥 넣어 초콜렛 주머니를 꺼냈다. 크게 한 움큼 쥐어서 소 아저씨에게 쥐어줬다. 얼마나 오래 함께 할지 모를 이 힘든 길의 동행이 생긴 기념이었다. 아저씨는 '그라시아스, 린다'라고 말했다. '고마워, 예쁜이'라고 한국식으로 직역하면 추파질일 텐데, 파나마식으로 생각하면 애정스런 표현이었다. 아저씨 덕에 오랜만에 '린다 킴'이 되고 나니, 답답한 상황에서도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차에서 내려서 길 앞의 상황을 보러 간 두두가 돌아왔다. 언덕을 넘어서 앞으로 한참을 걸어간 모양이었다. '그래서 기다리는 줄 끝이 보였어?'라는 물음에, '아니'라고 길이 금방 줄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도 잃은 듯한 무표정과 정지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상황을 보던 사이 우리 뒤로 차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빨리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이대로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된다.



- 아저씨예, 우리 차 돌릴라꼬예! , 창문을 열고 소리쳤다.

- 그래, 그래, 돌리가 가다가 나오는 경찰서에서 옆길로 빠져가꼬, 소나 거쳐서 산티아고로 가면 된다. 한두 시간 더 걸려도 그게 낫다, 마.






그리고 소 아저씨는 따로 부탁하지 않았음에도 뒤로 줄지어 있던 운전자들에게 길을 터 달라고 수신호를 보냈다. 주로 물류차량의 이동의 많은 도로의 대형차들이 슬쩍슬쩍 후진을 하고 옆으로 빠져주며 갓길이 생겼다. 차량 이동이 적은 도로라 가능한 일이었다. 대형차들 틈에서 가까스로 유턴에 성공했다. 아저씨는 역시 차의 뒤를 봐주고 있었다. 이제 다시 달려야 할 시간. 아저씨와 나는 차 하나를 사이에 두고 깔깔깔 웃으며 팔꿈치를 맞부딪쳤다.


인사의 힘이었을까. 초콜렛의 힘이었을까. 달아오른 도로 위 정체 위에서 누군가와 짧지만 진하게 인정을 나누고 헤어졌다. 비상등을 깜빡이며, 왔던 길을 느린 속도로 달렸다. 역시 인디오에 의해 막혀 있던 반대 방향 차선에서 역주행을 하는 차량, 정주행을 하는 차량이 오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우리 앞으로 주행하는 차들이 많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차량들은 직전에 있던 검문소를 거치며 주행속도가 많이 줄어 있었다.



곧 우리가 거쳐왔던 검문소가 눈 앞에 보였다. 경찰들도 역시 서있었다. 이 역주행할 수밖에 없던 상황을 설명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내려서 한 경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상황 설명이 아닌, 갈 길을 물었다. 경찰은 교통법규 위반에 대해서 아무런 눈치도 언급도 없이, 옆으로 난 우회로를 가리켰다. 이미 상황을 다 알고 있다는 듯했다. 알고 있었으면, 미리 좀 말을 해주지!

친절한 시골 아저씨, 무뚝뚝한 경찰을 만난 하루였다.





길 위의 시위자,

길 위의 여행자



위험하지만 역주행해 돌아가는 걸 선택한 이유에는 그 며칠 전에 겪은 적이 아직 생생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번 여행을 시작할 때, 파나마 시티에서 출발하던 첫날에도 판아메리카 도로는 도로변 '카피라'라는 작은 동네 사람들의 점거로 완.전.히. 막혀버렸다. 자그마치 5시간 동안 겨우 1킬로 남짓 움직인 정도였다. 포기하면 편하단 생각에 장편의 웹툰을 보고,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까먹었다. 그러다가 지겨워지면 답답함이 치밀어 올랐고, 다시 인내로 마음 가다듬길 반복했다.



정체된 지 4시간 반 만에 경찰 부대가 출동했고 -역시 반대 차선을 역주행해서-, 곧 상황이 정리되었다. 그날 우리는 저녁 통금시간에 걸릴까 봐 휴게소에서 제대로 쉬어 갈 수도 없었다. 미국도 아니고 이 작은 파나마 내륙을 이동하는 데 11시간이 걸렸다.







판아메리카나 하이웨이는 아메리카 대륙을 연결하는 도로망으로, 북미 알래스카에서부터 가장 남단으로 파나마의 콜롬비아 접경 지역인 다리엔 지방까지 이어진다. 문제는 파나마에서는 국토의 동과 서를 관통하는 이 도로를 대체할 다른 경로가 없다는 것이다. 동네를 들어가 사잇길로 통해봐도 얼마 안 가 판아메리카나로 나와야 한다. 그러니까 이 경로가 막히면, 그야말로 '노답'이다. 이 나라의 느리고 무관심한 행정력을 온몸으로 느끼고, 괜히 발이 묶인 채 다른 선택지가 없음에 무력함마저 든다.

그랬기 때문에 우회로가 근처에 있었던 그 시점에 빨리 결정을 내려야 했다. 경찰을 향해 역주행을 하더라도.





교통상황청(?)에 보고를 했더니 눈 가리고 있는 원숭이 이모지를 받았다.

그들은 왜 길을 막았나?



소 아저씨가 말한 '인디오의 시위'는 나름 설득력이 있었다. 파나마에는 인디오 자치구가 다섯 군데가 있는데, 그날의 시위는 치리끼 주에 접해있는 노베 부글레 민족들이 주체가 됐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정부에 도로를 깔아달라는 요구를 해왔지만, 약속은 매번 이행되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이번에도 거리를 막았았고, 우기가 오기 전에 도로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를 하던 것이었다.



파나마의 길고 거센 우기 동안 포장되지 않은 비탈길을 차가 오르내리기 건 생각하고 싶지 않다. 고도가 높은 지역에는 비가 오지 않아도 아찔한 길이 많다.





여행 첫날에 만난 시위대는 요구가 달랐다. 디지털 식권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었다. 팬데믹 이후 파나마는 긴 도시 봉쇄가 이루어졌고 많은 사람들은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했다. 그래서 파나마 정부는 '파나마 연대Panama Solidario'라는 사회보장 프로그램을 약속했다. 그 일환으로 디지털 식권, 식자재 및 생필품 꾸러미, 바우쳐(bono solidario, 일정 금액에 상응하는 교환권)을 배분했다.


하지만 숫자가 명확히 찍혀 있는 바우처와 디지털 식권과는 다르게 정부가 나누어 준 꾸러미는 일정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보내진 제품의 양과 질이 불만족스러운 수준이니, 다른 지역민들이 받는 100불짜리 디지털 식권과 동등하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www.tvn-2.com/nacionales/provincias/Residentes-Capira-Interamericana-Vale-Digital_0_5771422858.html




그들이 막은 길에 갇힌 우리, 두 외국인은 시위라고 하면 일가견이 있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달궈진 아스팔트와 정오의 볕 아래에서 에어컨의 냉기마저 단번에 쪄버리는 차 안에서 고운 말이 나올 리가 없었다.

시위를 왜 여기서 해, 대통령궁 보이는 곳에서 해야지. 왜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들 발을 묶어.


그러다가 이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진정하는 말로, 이것 또한 마리 앙뚜와네트(가 했다고 와전됐다는) '빵이 없으면 고기'식의 사고일지도 모른다며 사고의 전환을 시도하기도 했다. 확실히 대통령 궁 앞으로 대절 버스를 타고 몰려가서 소음을 일으킨다는 발상은 파나마에선 위험을 자초할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판아메리카 도로 길 막기'처럼 이동하기 가깝고, 사람이 모이기 쉽고, 메시지 전달이 확실한 시위법도 없어 보이긴 했다.



우리가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한들 그들이 1년에 걸쳐 겪었던 고충과 처해 있는 현재 상황을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길을 막은 그들과 줄지어 멈춰 선 차들이 장면만큼 서로의 실상도 대치적이었다. 그들은 먹고살기 위해 '시위자'로 도로 위에 나왔고, 같은 길 위에서 우리는 그 이름도 사치스러운 '여행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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