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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농 May 06. 2024

안녕하세요,  다육이 사장님

<다육이와 꼬마정원> 그림책과 반려식물 다육이

미술학원 가는 길에 다육이를 잔뜩 실은 트럭을 보았다. 햇볕에 한껏 그을린 얼굴에 빨간 캡모자를 쓰고 계신 사장님은  오십이 넘어 보이셨다.

다육이 두 개가 오천 원이었다. 작아 보이지도 않는데, 저렇게 해도 이윤이 남을까?

"우리 학교 1학년 아이들이 1인 1 화분으로 교실에서 다육이를 키우려는데요. 120개 마련해 주실 수 있나요? 종류가 다양했으면 좋겠어요. 예쁜 화분으로 분갈이해 주시면, 얼마 더 드리면 될까요?"


며칠 만에 전화가 왔다.

"120개 맞춰줄 수 있어요. 하얀 자기 화분에, 분갈이 삯 오백원까지 추가해서 하나에 오천 원은 받아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싸게요? 사장님?’ 몇 번이나 말할 뻔했는데 꾹꾹 참았다. 보내주신 샘플 사진을 보니, 꽃가게에서  팔천 원, 만원에 팔리던 것들이다.


며칠 후에 학교로 직접 배달해 주시기로 했다. 오늘도 트럭 장사를 나가야 해서, 이른 아침 시간밖엔 안된다며, 아침 일곱 시 넘어 학교에 오셨다.

“저 많은 걸 옮기고, 싣고, 다시 옮기느라 팔 아파 죽는 줄 알았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말 끝을 흐리셨다. 안다. 어떤 말을 하려다 참으셨는지.

운동장을 가로질러 나가는 트럭이 정문을 빠져나갔다. 사장님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운동장에 서서 한참을 배웅해 드렸다.


아이들과 그림책 <다육이와 꼬마정원>을 함께 읽었다.

각자 자기 다육이 화분을 골랐다.

그림도 그리고 이름도 지어줬다.

한 달에 한번 자기 반려식물에게 물도 준다. 잎이 다칠세라, 할머니들 하듯이 숟가락으로 살살살살.

내가 하는 일이라곤, 퇴근할 때 창문을 살짝 열어두는 것을 잊지 않는 게 전부.


다시 미술학원에 가는 길, 여전히 다육이 트럭이 서 있었다. 고마운 마음에 화분 몇 개를 샀다. 서비스라며 다육이 화분 하나를 덤으로 더 주시며 헤헤 웃으신다.


안녕하세요. 다육이 사장님.

빠듯한 예산이었는데, 사장님 덕분에 아이들 모두 자기만의 다육이를 갖게 되었어요.

어떤 다른 식물보다 햇볕을 좋아하지만, 물은 좋아하지 않는 다육이.  

같은 모양으로 우직히 창가를 지키고 있는 저 다육이들이 사장님을 꼭 닮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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