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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래서 생그래 _ 5학년 조찬

김용택 시인의 개미/ 강기원 시인의 제비꽃의 봄

by 예농
우리 엄마는 내가 진정하고 괜찮아질 때까지 말없이 기다려주는데, 선생님은 왜 그렇게 안 하세요?

야단 좀 치려고, 학교 끝나고 남긴 조찬이에게 오히려 훈수를 들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한마디 하려다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격정의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중3 아들에 나도 단련이 되었나 보다.

홀짝홀짝 운다. 그러다 중간중간 숨을 들이마신다. 5분쯤 지났을까? 음료수 하나 건네주니 홀짝홀짝 마신다. 하나 더 주니, 사양 않고 마신다.


조찬이는 또래보다 성숙한 아이이다. 체육 수업이 끝나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체드래곤 1)보다 더 빨리 체육 도구들을 치워 내 앞에 갖다 놓는다. 쉬는 시간 자기를 골려먹는 여자애들이 미워, 내게 와 이르려다, ‘아니, 아니에요.‘ 라며 한숨을 쉬고 그냥 자리로 돌아간 게 벌써 여러 번. 그런 조찬이가 오늘은 폭발을 한 거다. 도미노 게임에서 모둠 여자애들과 티격태격하더니, 내가 앞에 서 있는데도, 도미노들을 바닥에 냅다 던져버리고 눈물샘을 터뜨렸다.


“선생님은 지금 잘잘못을 따지려는 게 아니야. 그런데 너보고 남으라고 한건, 너의 ‘태도’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야! 선생님이 앞에 서 있는데, 어디서 물건을 던져!”

고조된 내 목소리를 듣고도 조찬이가 이렇게 대답을 한 거다.

“우리 엄마는 내가 진정하고 괜찮아질 때까지 말없이 기다려주는데, 선생님은 왜 그렇게 안 하세요? “


집에서도 사춘기 아들에게 적응 중.

학교에 와서도 내 반 아이들에게 열심히 적응 중.

아이들의 생그래 2)를 보며 열심히 열심히 노력 중.





조찬이의 <생그래> 두 편을 소개한다.


개미
김용택

토란 잎에 내린
이슬비가 모여
또르르 굴러
개미 위에
툭 떨어진다.
“어!
이거,

물벼락이여?”



여기 개미가 왠지 나 같다. 그저께 갑자기 집에서 동훈이 자전거 가져갔다고 엄마한테 크게 혼났다. 근데 난데없이 그게 게임 때문이라고 핸드폰을 정지시키고 평생 안 준다 하였다. (거짓말이겠지…) 그래서 정말 물벼락 맞은듯한 기분이 들었다. 짜증 나기도 하고 쩝. 어쩔 수 없다. 너무 어이가 없어 그 상태 그대로 10분 정도 멍… 있었다. 슬픈 하루였다.

_ 조찬이 생그래 (25.4.17)


제비꽃의 봄
강기원

골리앗 같은 겨울과
병아리 같은 제비꽃이
크게 한 판 붙었어요
쉭쉭거리는 겨울의 차디찬 이마를
제비꽃 향기의 돌팔매가
딱! 맞혀
겨울거인을 단번에 쓰러뜨렸지요
싸움에서 이겼지만 있는 힘을 다했기에
너무 힘들어 주저앉아 버렸어요
작디작은 제비꽃이
목숨 걸고 싸워 얻은
‘봄‘이랍니다


개미 2탄

결국 일주일이 지난 후… 나한테 핸드폰이라는 것을 받았다. 이걸 비유해서 엄청난 고전 끝에 봄이 오고 낙이 왔다는 것이 이 시와 너무 닮은 것 같아서 이 시를 골랐다. (하지만 나도 많이 피해를 본 거 같은 이 느낌은 뭐지?) 다시 핸드폰을 받은 건 기쁘지만 또 불안하기도 하다. 또 뺏기지 않게 간수 잘해야겠고 이번 일주일은 정신 똑띠 차리고 살아야겠다.

“응원해 주세요!”

_ 조찬이 생그래 (25.4.24)


* 표지 사진 _ 작년 학교텃밭 로즈마리를 집에서 월동시키고 다시 옮겨왔습니다. 조찬이가 만들어준 식물이름표예요.

* 우리 반 아이 이름은 가명입니다.


* 1) 체드래곤 _ 우리 반 1인 1역 체육부장을 부르는 이름입니다.

* 2) 생그래 _ 생태시 51편을 추려 만든 시 모음집 이름입니다. 생태시를 읽고 그림을 그리고 내 느낌과 생각을 쓴다는 뜻으로, 제가 직접 지은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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