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이들이 학교에 와서 캐릭터와 소품을 만드는 날이다. '뚝딱뚝딱 만들면 2교시 정도면 충분하겠지'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뚝딱뚝딱' 만들지 않았다. 몇몇 아이들은 예술 작품 만들듯이 온 힘을 쏟았다. 집에 가기 전까지 자기가 맡은 캐릭터를 4개씩 만들어 모둠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시간이 부족해 미술 시간을 3교시까지 연장했다. 3개 모둠은 가까스로 완성했는데, 이탈리아 모둠과 둥글돼지 모둠이 다 마치지 못했다.
이탈리아 모둠은 지난 모둠 줌두레 때 세웠던 계획을 계속 수정하였다. 종이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로 했는데, 클레이 애니메이션으로 바꾸기로 했다. 캐릭터와 소품은 등교일에 교실에서 만든다고 아이들에게 안내했는데, 인후가 반칙을 했다. 입이 벌어질 정도로 멋진 수수깡 집을 집에서 만들어 왔다. 그 소품을 비중 있게 사용하고 싶어서인지, 계획을 바꾸어도 되는지 은우가 내게 물었다.
인후의 수수깡 집
“당연하지! 계획은 계획일 뿐 얼마든지 바꾸어도 돼. ”
그런데 30분 정도 지나니, 은우가 지금 교실에서 사진 촬영까지 끝내도 되느냐고 물었다. 모둠이 함께 찍겠다고 했다. 안된다고 했다. 코로나 19 방역 수칙 때문에 교실에서 모둠활동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각자 집에서 사진 촬영과 영상 제작을 하고 완성된 영상을 내게 보내주면, 내가 편집해서 하나로 잇겠다고 다시 설명했다.
그러나 은우는 포기하지 않았다. 인후가 만든 수수깡 집은 영상 모든 장면에서 필요하다고, 수수깡 집을 모둠원 개수만큼 더 만드는 것은 지금 불가능한 일이니 교실에서 그냥 찍게 해달라고 다시 졸랐다.
'다른 모둠 아이들은 지금 캐릭터를 만드느라 열심인데, 옆에서 촬영을 한다?'
'그것도 각각 하는 게 아니라, 모둠이 같이?'
인후가 힘들게 만들어온 것을 또 만들라고 할 순 없고, 소품 없이 찍으라고 할 순 없고... 생각하지 못한 변수다. 여러 생각 끝에 허락해주었다. 아이들 책상 간격을 최대한 멀리 배치해 앉게 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모둠 아이들은 모르게 찍어야 돼!"
네 모둠이 캐릭터와 소품을 열심히 만들고, 한 모둠이 몰래 촬영을 하는 동안, 나는 종하에게서 받은 캐릭터와 소품을 모둠원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한 작업을 했다. 약속대로 종하가 아침에 자기가 맡은 캐릭터와 소품 사진을 클래스팅에 올려주었다. 어제 종하에게 전화를 걸어 같은 캐릭터와 소품을 각각 4개씩 그려 오늘 오전까지 학교 보안관실에 갖다 놓으라고 부탁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문자가 왔다. 시간이 부족해 한 개씩 밖에 못 그렸다고, 엄마 학원 프린터를 이용해 모둠 아이들 수만큼 컬러 인쇄해 오후에 보내줘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아이들 과제에 엄마 일터까지 동원되는 것은 아닌 듯했다. 게다가 무지개 모둠 아이들이 집에 가기 전에 종하 캐릭터를 받아야 한다. 직접 그린 캐릭터를 사진을 찍어 클래스팅에 올려주면, 다음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클래스팅에 들어가 종하 작품을 열어 보았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시간이 촉박할 만했겠구나.'
종하가 그린 캐릭터와 소품이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캐릭터에 입힌 색깔도 눈에 번쩍번쩍 띈다. 캐릭터 하나 그리기도 정말 오래 걸렸을 것 같았다.
크기를 조정하고, 3부씩 칼라 출력해서 수인, 재승, 준호에게 각각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수인, 재승, 준호에게 받은 받은 캐릭터와 소품을 봉투에 담아 학교 보안관실에 맡겨 놓았다. 종하 어머니께서 오늘 중으로 찾아가신다고 하셨으니, 가장 걱정했던 무지개 모둠은 우선 안심.
종하 에피소드
종하는 건강 상의 이유로 수요일 등교일에도 학교에 올 수 없다. 이제까지 ZOOM에서만 만났다.
종하 때문에 자주 웃게 된다. 줌두레 서클에서 아이들에게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물었던 적이 있다. ZOOM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들과 내가 어색했던 때.
"종하야. 무슨 음식 좋아해?"
" 햄버거요."
"어떤 햄버거 자주 먹는데? 롯데리아? 버거킹?"
"음... 맥. 도. 널. 드. 요."
우리 학교와 종하 집 사이에는 롯데리아와 버거킹 매장만 있다. 그런데 굳이 맥도널드라고 답한다. 만일 '롯데리아? 맥도널드?'라고 물어봤다면, 분명히 '버커킹'이라고 대답했을 아이다.
종하는 수업 중에 수시로 비디오 기능을 끈다. 한 번은
"종하야. 화면 끄면 안 돼. 얼굴 보여줘야지."
"아, 네!"
씩씩하게 대답하고 다시 나타난 화면에는 샌드위치를 우적우적 먹고 있는 종하 모습이.
수업 중에 먹으면 안 된다는 나의 제지에 '내가 아침을 안 먹었거든요.' 구김살 없이 웃으며 먹던 샌드위치를 부랴부랴 치웠다.
종하가 등교를 못 하니 몇 가지 불편한 점들이 생겼다. 수행평가를 볼 수 없다는 것과 과제 확인을 꼼꼼히 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1학기 때 과제를 놓칠 때가 많았다. 종하 어머니와 전화 상담을 하며 2학기 때는 고삐를 조금 더 조이기로 서로 마음을 맞추었다. 종하와 나는 어느새 하루에 한두 번은 통화를 하고, 수시로 카톡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2주 전에는 다음과 같은 일도 있었다. 전날 못 올린 과제를 다음 날 2시까지 올리기로 약속했는데, 클래스팅을 아무리 뒤져봐도 종하 과제가 안 보였다. 그러다 밤 10시에 종하의 글과 함께 과제 사진 파일이 올라왔다.
'국어는 오늘 한 거고 수익은 어제 한 거예요. 영어 숙제는 책이 없어서 못하니까 제 동생의 못생긴 표정을 올릴게요ㅋㅋ'
과제 사진 파일을 열어보니, 정말 동생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종하를 꼭 닮은 여동생이 짓궂게 웃고 있는 모습.
지난주 금요일에 수학 '분수의 나눗셈' 단원으로 2학기 첫 수학 줌두레(모둠협력학습)를 했다. 인디스쿨에서 분수의 나눗셈 문제들을 찾아 수정해 만든 수학 줌두레 문제지를 등교일에 나누어 주었다. 금요일 모둠별로 모여 수학 줌두레를 하기 전에, 우선 각자 해결하고 수학 줌두레 공책 사진을 찍어 올리라는 과제를 내주었다. 과제 마감 시간은 2시였는데, 밤 10시쯤 되니 종하 과제가 클래스팅에 올라왔다.
'선생님, 제가 배터리가 없어서 숙제를 핸드폰으로 못 올리니 컴퓨터로 올렸는데, 5시 32분에 올렸던 걸로 아는데 지금 나왔다고 안 뜨네요. 그래서 줌두레 숙제 지금 올립니다. 5번 문제는 몰라서 선생님 생각하는 마음으로 썼어요ㅎㅎ'
5번 문제는 빵 9개를 10명의 사람이 나누어 먹을 때, 한 사람이 얼마나 먹을 수 있는지 그림으로 나타내라는 '분수의 나눗셈' 문제였다. 사진 파일을 열어보고 또 웃고 말았다.
종하 과제 사진
'어찌 이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종하 덕분에 나의 '이공 프로젝트'의 수준이 한 등급 올라갈 수 있었다.
'서울어린이 창작영화제'에 우리 반 아이들의 영화를 진짜로 출품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만든 아이.
꿈이 영화감독이었던 아이.
내가 ZOOM을 하지 않았더라면, 한번도 만나지 못했을 아이.
훌륭한 그림 솜씨로 고퀄리티 캐릭터들을 만드느라 시간이 부족했던 둥글돼지 모둠과 교실에서 촬영을 끝까지 완성하고야 말겠다 마음먹은 이탈리아 모둠, 이렇게 두 모둠이 수업이 끝난 후에도 집에 가지 않고 교실에 남았다. 가까스로 작업을 마친 아이들이 모두 가고 나니, 시간은 오후 2시. 아이들이 가는 모습을 5반 선생님이 우연히 지켜보셨나 보다. 우리 교실로 오셔서 물으셨다.
“숙제 안 해 남아서 하고 가는 아이들 표정이 왜 저렇게 밝아? ”
“숙제 안 한 게 아니구요. 수업 시간에 못 끝낸 미술마저 하고 가느라요.”
아이들이 웃으며 갔다니 다행이다. 아이들이 이 프로젝트를 부담스러워하진 않고 있구나.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네
퇴근하고 집에 와 쌍둥이들 밥 차려주고 잠시 쉴 겸 침대에 누워 있으니, 하나에게서 카톡이 왔다.
"저 하나인데요, 클래스팅에 안 올라가져서 카톡으로 보내요"
하며 보내준 영상 한 편.
'벌써 찍어 보냈다니 참 빨리 했네.'
영상을 확인하니, 하나가 만든 개별 영상이 아니라 모둠 전체 영상이다.
'엥? 뭐지?'
"하나야, 혹시 모둠 완성작이니?"
"아이들끼리 모여서 제 폰으로 찍고 편집했어요. 은행에서요."
"뭐라구? 은행에서?"
일정이 있는 혁준이는 집에 먼저 가고, 준영이와 하나는 교실에 남아 있던 원진이를 학교 교문 밖에서 기다렸다고 했다.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은행에서 함께 모여 무려 한 시간 넘게 영상을 찍었다고 했다. 코로나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한 이때에.
"음, 어떻게 하는 게 옳았을까? 다음에 ZOOM에서 반 전체 아이들과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보자. 잘 자렴!"
고생했다고 다독이고 마지막 카톡을 보냈다.
'계획한 건 이게 아니었는데, 뒤죽 박죽이 되어버렸네.'
'이탈리아 모둠에 이어 메리마스 모둠까지. 내가 도대체 어떤 부분을 놓친 거야?'
수업 흐름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 아이들 이름은 가명입니다.
----- 2학기에 본격적으로 ZOOM을 시작하려는 선생님들이 많을 것 같아, 저의 ZOOM 수업 이야기를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