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이란 낱말은 어디에 붙여도 어색하지 않다. 이공 프로젝트, 이공 영화제, 2020년에 만난 아이들, 이공이들.
해가 바뀌어 새로운 반을 맡게 되면 늘 반 이름을 지었다. '2002년에 만난 6학년 8반 아이들' 이렇게 부르면, 그때 만난 아이들을 떠올리는데 한참 시간이 걸리지만, '청풍이들' 이렇게 부르면, 그렇지 않다. 그 해의 굵직굵직했던 사건들, 지금까지 생각나는 몇몇 아이들 얼굴과 이름이 떠오른다.
3월이 지나가기 전, 아이들이 반 이름을 짓게 했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 19로 인해 그럴 수 없었다. '이공'이는 4월의 어느 토요일 아침, 양치질을 하다 문득 떠오른 이름.
클래스팅 게시글로 첫 편지글을 썼다. '이제부터 여러분을 이공이들이라 부를게요. 선생님은 '씩씩이샘'이예요.'
참 일방적이었다.
지난 월요일 ZOOM 줌두레를 마칠 무렵, 아이들에게 수요일 등교일에 '이공 영화제'를 교실에서 열겠다고 알렸다. 교실 프로젝션 TV로 각 모둠의 출품작을 상영하고, 이번 프로젝트 이끔이를 '감독'이라 칭해 '관객과의 대화'도 하고, 관객 투표로 각본상, 아이디어상, 캐릭터상, 음악상, 미술상, 최고작품상도 뽑을 예정이었다. 소정의 상품도 준비해서.
내 말이 끝나자마자 종하의 목소리가 ZOOM 화면을 뚫고 나왔다.
"그럼 저는요? 못 보잖아요."
"어, 그렇구나! 그럼 어쩌지? 음, 다른 방법을 찾아볼게."
물론 알고 있었다. 교실에서 영화제를 열면 종하가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실에서 하려 했던 것은 고생한 아이들을 '치하'할 겸, 뭔가 그럴듯하게 이벤트를 열어 이번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녀석, 고. 맙. 게. 도 나의 '민감하지 못함'과 '배려하지 않음'을 여지없이 들추어낸다.
종하에게 이번 이공 프로젝트가 어떤 의미였을지 누구보다 잘 안다. 개인에게도 상을 줄 수 있다면 '공로상'을 주고 싶을 정도이다. 종하 덕분에 이공 프로젝트가 빛이 났다.
'그래, 온택트(ontact) 영화제로 열자. 이 프로젝트 대부분의 과정이 '언택트'였는데, 영화제도 '언택트'로 열면 어떠랴.'
모둠 출품작 5편의 영상을 e학습터 미술 수업에 올리고, 구글 설문으로 각 모둠에게 줄 상을 뽑고 질의, 소감 발표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 주 ZOOM 줌두레에서 결과를 발표하기로 했다.
e학습터 미술수업 영상
'극적인 인어공주'와 '라일리를 행복하게 해주길 바랬는데'는 캐릭터상, '흥부가 현대로 왔다'와 '잭의 기묘한 모험'은 아이디어상, '마녀의 독사과'는 음악상을 받았다. 최고작품상은 예상대로 무지개 모둠의 '잭의 기묘한 모험'에게 돌아갔다. 절반이 넘는 아이들의 지지를 받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e학습터 강의 수업으로 출품작 영상을 올리기보다는, ZOOM에서 함께 영상을 보고 '관객과의 대화'까지 하면 더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렇게 하여 3주간이 걸린, 첫 번째 이공 프로젝트가 무사히 끝났다.
2020년 7월 26일 일요일
이공 프로젝트가 우리 집에 남긴 것
"엄마, 엄마네 반 학생들이 만든 영상 또 보여주면 안 돼?"
아들 녀석이 조른다. 며칠 전부터 보여줬는데, 10번은 넘게 본 것 같다.
"너 할 일 다 끝내면 보여줄게. 우선 수학 문제집하고 체스 문제집 두 쪽씩 풀고, 놀이방 다 치우고, 양치질까지 다 끝내면!"
딸아이와 함께 후다닥 하기 시작한다. 할 일을 다 하고, 책상에 나란히 앉아 영상을 보는 뒷모습을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
'이공이들에게 얘기해줘야지. 너희들이 만든 영상을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팬이 생겼다고.'
오후에 함께 자전거를 타러 갔다가 돌아오는 엘리베이터 안, 그 침묵의 시간 동안 아들 녀석이 '잭의 기묘한 모험' 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줄줄 외웠다. 혼자 머릿속으로 영상을 상상하며, 실감 나게 대사를 뱉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
"그걸 다 외웠어?"
"응!"
이공이들과 우리 쌍둥이들과 이렇게 연결되는구나.
우연시.
우리가 연결된 시간,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
영화제 심사 및 소감 발표를 묻는 '구글 설문' 일부
수업 흐름
----- '우리 반 아이들이 만든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유튜브 주소입니다. 최고 작품상을 받은 '잭의 기묘한 모험'은 6:50부터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