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선생님이 가장 많이 사용한 문장. 오늘처럼 달고나 만들기나 교육연극 연습이 있는 날은 교실 공기가 여느 날과 달라집니다. 여러분들의 민낯이 많이 드러나게 되죠. 급식실에서 몸 장난을 했거나, 교실 밖에서 나누면 좋았을 얘기들을 교실 중심으로 끌고 와 분위기를 흔들었거나, 마음의 뾰족한 돌기가 친구들을 다치게 했거나.
얘기를 한다는 것은 선생님인 나도 얘기를 하고, 아이들도 얘기를 해야 맞는 건데, 선생님만 혼자서 말했습니다. 다. 다. 다. 다. 다. 다. 다. 선생님도 이제 민낯이 드러납니다.
코로나와 시간이 허락해준다면, 12회에 걸쳐 체스를 배우게 될 거예요. 창체 동아리로요. 올해는 코로나로 교실 이동을 할 수 없으니, 우리 반 전체가 같은 동아리를 하게 되었네요. 작년 체스 동아리는 희망하는 사람만 각 반에서 받았기 때문에, 4명만 빼고 모조리 남학생, 남학생, 남학생이었는데. 올해는 사뭇 분위기가 다를 것 같아요.
게다가 방역을 지키는 체스 동아리. 장갑을 끼고, 매 게임이 끝날 때마다 체스 기물을 소독용 물티슈로 닦아내고. 체스 기물이 반짝 반짝 윤이 나겠어요.
체스와 같은 게임은 왜 남자들이 더 좋아하는 걸까요?
체스와 같은 게임은 왜 남자들이 더 좋아하는 걸까요? 경쟁, 승부... 이런 것 좋아하는 뇌는 타고나는 걸까요? 길러지는 걸까요? 체스는 경쟁을 좋아하는 사람, 승부욕이 많은 사람들이 더 좋아하고 잘하는 걸까요?
오늘은 체스 이야기를 잠깐 할게요. 선생님은 '체스'를 생각하면 마음이 두근두근합니다. 서너 살 아이들이 '사탕'을 떠올리면 반사적으로 뇌가 반응하는 것처럼, 선생님은 체스가 그러합니다.
8년 전, 그날도 여김 없이 선생님은 열심히 육아 중이었습니다. 세 살 된 쌍둥이들 낮잠을 겨우 재우고, 피곤해서 잠시 눈을 붙일 겸 누워 있었어요. 그때 갑자기 머릿속에 '체스'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정말 갑. 자. 기.
그전에 체스를 한 번도 해본 적도 없고, 주위에서 하는 것을 본 적도 없었어요. 다만 대학교 때,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 소설집에서 '체스'를 소재로 한 글을 한번 읽었던 게 전부. 그런데 그때 왜 '체스'가 갑자기 생각났던 걸까요? 지금도 불가사의입니다.
'체스를 배워볼까?'
체스를 배울 수 있는 학원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찾았고 남편을 설득해 ok를 받고 등록을 했습니다. 육아를 전담하기로 하고 육아 휴직을 하던 시기라, 내가 체스 학원을 갈 때 남편에게 쌍둥이를 맡기는 것은 참 미안한 일이었지요.
체스를 배우는데 학원까지 다녀야 돼?
라고 생각하는 이공이들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체스는 fide rating이라는 게 있어요. 세계체스연맹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세계 표준 레이팅. 영어 토플, 토익 점수와 비슷해요. 그 레이팅을 따려면 스탠다드 게임(한 사람이 1시간 30분씩 시간을 쓸 수 있는 긴 대국)을 9번을 해야 해요. 한 게임 당 평균 3시간 이상이 걸리는 게임이기 때문에, 하루에 세 게임씩, 3일 동안 치루어야 합니다. 아침 9시에 시작해서 저녁 6시, 7시에 끝났습니다. 신체적인, 심리적인 압박이 매우 크죠. 게임을 하다가 심장마비로 죽는 사람들도 가끔 생깁니다. 물론 외국의 경우이지요. 선생님은 피데 레이팅까지 얻고 싶었어요.
피데 레이팅을 얻기 위한 첫 스탠다드 대회 참가. 대회 장소에 나가보니, 모두 나보다 한참 어린 청년들, 대학생들 그리고 초등학생들 뿐이었습니다. 마음의 격려를 얻을 수 있는 비슷한 또래는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 파릇파릇한 사람들과 대국을 치렀고, 결과는?
꼴등이었습니다. 꼴등을 했어도 레이팅은 얻었어요. 물론 아주 낮은 레이팅이었지만요. 조금 창피하긴 했지만, 그런 창피함 정도는 거뜬히 이겨낼 수 있었어요. 꼴등의 결과를 얻었지만, 9경기를 기권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냈으니까요.
여운이 너무 남아 집에 가지 않고 카페에 가서 오랜만에 일기를 썼습니다. 마이클 조던도 '농구에게'라는 편지를 썼다 하는데, 나도 '체스에게' 글을 썼어요. 그때의 가슴 벅참은 뭐라 말로 설명할 수가 없네요. 늦은 밤, 카페 창 밖으로 까만 밤하늘이 보였습니다. 그 밤하늘 넘어 어딘가에 있을 우주의 별이 '반짝'하고 빛을 내며 내 마음속으로 들어온 듯했습니다.
'아, 체스. 널 왜 지금에야 알게 되었을까? 내 뇌가 조금만 더 젊었을 때 알았더라면. 그래도 지금이라도 나에게 와서 다행이지만.'
웃기죠? 체스에게 편지를 쓰다니요.
그리고 그 후 7년 동안 120번이 넘는 스탠다드 게임을 치렀습니다. 선생님의 체스 성적은 어떻게 됐을까요? 해피엔딩일까요?
'열심히 노력했더니 점점 좋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면 오죽 좋으련만, 여전히 실패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내려갈 수도 없는 레이팅은 계속 제자리를 맴돌고 있고, 이기는 것보다 지는 게 더 익숙해졌습니다. 그 날 진 게임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얼마나 아득히 멀게 느껴지는지요. 발걸음의 무게가 천만금 만만금이 됩니다.
나를 코치했거나 나를 잘 아는 체스계 인사들은 선생님에게 이런 얘길 자주 해요.
"선생님은 성격과 기질이 체스하고 참 안 맞는 것 같아요."
"대국하는 모습만 봐도 이미 상대에게 '기'가 밀리는 게 보여요."
"체스는 이기려고 하는 게임인데, 선생님은 승부사들이 갖고 있는 결정적인 한방이 없어요. 왜 수비만 하려 드세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그냥 웃으며 넘겨요.
얼마 전 상영했던 영화 '포드 앤 페라리'에 이런 대사들이 나와요.
'포드 앤 페라리' 영화 포스터
“ 7,000 RPM 어딘가엔 그런 지점이 있어. 모든 게 희미해지는 지점. 그 순간 질문 하나를 던지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넌 누구인가?”
"네가 나에게 약속한 건 레이스지 우승이 아니야."
영화 속 대사가 참 와 닿았어요. 체스 말을 움직이고 기보를 적고 그렇게 두 시간, 세 시간 앉아 있으면, '내가 체스를 두는 건지, 체스가 나를 두는 건지' 당이 떨어지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는 순간이 오거든요. 시간이 멈추어 버렸으면 하는 순간.
'한 시간 후쯤,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인지 결론이 날 텐데, 그냥 여기서 멈춰버렸으면.'
가뭄에 콩 나듯 이기는 게임을 한 날, 집으로 돌아와 복기를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체스 문제집을 풀었습니다. 어김없이 지는 게임을 한 날에도, 집으로 돌아와 복기를 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체스 문제집을 풀었습니다. 체스를 통해 실패를 버티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네가 나에게 약속한 건 레이스지 우승이 아니야.
펜싱을 하는 원진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재승이, 수영을 하는 윤우, 야구를 하는 서준. 그러고 보니 우리 반에는 벌써 진로를 결정한 친구들이 많네요. 그리고 그 외에도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우리 반 이공이들. 앞으로 살아가면서 선생님이 체스를 하며 겪었던 수많은 감정들을 여러분들도 겪으리라 생각합니다.
켄(크리스챤 베일)이 셸비(맷 데이먼)를 위로하며 하는 말.
'네가 나에게 약속한 건 레이스지 우승이 아니야.'
이공이들도 그 대사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때가 어서 오기를요.
다시 앞머리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체스는 경쟁을 좋아하는 사람, 승부욕이 많은 사람들이 더 좋아하고 잘하는 걸까요? 꼭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잘한다는 것이 자주 이긴다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놓지 않고 끝까지 버티며 즐기고 있다면, 그것도 잘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체스를 가르쳐 줄 수 있게 되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