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이젠 이공이들과 체육수업을 안해도 되겠구나 생각했었죠.배드민턴 강사 선생님 수업을 금요일마다 고정적으로 하게 되었으니까요.
'주 3일 오는데, 한 시간 체육 수업이면 충분하겠지.'
그러면 안되는데 선생님은 체육 수업이 부담스러워요. 운동장에 나가면, 아무래도 선생님이 목소리를 더 높이게 되어 목이 아프고, 햇볕 때문에 얼굴에 생기는 기미도 나이 먹으니 더 싫고, 안전 사고 생길까 걱정도 되고. 그런데 오늘 체육 수업을 했네요.
어제 이야기를 잠깐 할게요. 어제 사회 ZOOM 수업 이야기요. 수업이 끝날 무렵, 다른 모둠은 모두 나가고, 양양 모둠만 남게 되었어요. Coggle 협업 준비 과정을 끝내야 나갈 수 있는데, 이끔이 서준이는 컴퓨터로 열심히 작업했지만, 해결되지 않았거든요.
'Coggle에서 모둠 친구들에게 초대 메일을 보내 Coggle 마인드맵을 공유 가능하게 하는 것.'
진환이가 바턴을 이어받고 진환이도 메일에 문제가 있어 작업이 되지 않자, 결국 선생님이 나서서 해결했어요. 그런데 그 때 ZOOM 화면을 보니, 서준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 계속 한숨을 쉬고 있었어요. 서준이가 지금 자책하고 있구나 싶어 내 마음도 편하지 않았어요.
'괜찮아. 서준아. 대신 넌 야구를 잘 하잖아.'
그러나 그 어떤 위로도 닿지 않네요.
모두 ZOOM에서 나가고 과제를 내주기 위해 클래스팅에 접속했다가 보게 된 서준이 글.
"양양모둠 친구들아~
이끔이로서 제대로 하지 못하고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서준이 성격을 알기에 그 글을 보고 순간 마음이 울컥했어요. 그리고 나에게 화가 났답니다.
'나의 열정이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해서 힘들게 했구나.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그냥 이런 수업으로 하지 말고, 교과서 위주 전달 수업을 하는게 나을까? 그렇다면 아이들도 편하고 나도 편할텐데.'
'무료 Coggle 대신 다른 더 편한 프로그램인 유료 Mind Meister로 작업했다면, 아이들이 이 개고생을 하지 않을텐데. 처음부터 Coggle이 아니라 Mind Meister로 시작하는건데. 우리 학교가 구글 G-suit이 구축된 학교였다면 구글의 Mind Meister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혜택들도 공짜로 맘껏 누릴 수 있는데. 구글어스 수업 때도 구글 계정 문제로 개고생을 했었는데. 한 두번도 아니고 이런 게 몇 번째야?'
이 생각까지 이르자 선생님은 컴퓨터 만능 전산 실무사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여쭤봤어요.
'왜 우리 학교는 G-suit이 아니죠? 지금이라도 구축할 수 없나요?'
실무사님이 대답하셨어요. G-suit을 구축하려고 교육청에 알아봤지만 도움을 구할 수 없었다고, 혼자 알아서 하랬다는 무책임한 대답을 들었다고 하셨어요. 그와 관련된 연수도 전혀 없었다고.
이공이들!
'G-suit', '구축' 이런 낱말에서 어떤 느낌이 풍겨지나요? 이 분야에서 좀 안다고 하는 어른이라 할지라도 개인이 알아서 해결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작업입니다. 마치 높은 산과 같아요. 선생님이 어제 이끔이들에게 'Coggle 협업 준비 작업'을 알아서 해결하라고 요구한 것처럼 말이예요. 어제 서준이가 자신이 겪은 일을 야구부 친구에게 얘기했다면, 야구부 친구가 이렇게 대답하지 않았을까요?
"뭐, Coggle? 그런 어려운 걸 왜 해? 너희 선생님 너무하다."
그래요. 너무했어요. 교육청, 교육부가 선생님에게 너무 했어요. 선생님이 준서에게 너무 했듯이. 선생님은 이제 교육청, 교육부에 화가 났어요. 그동안 TV 뉴스에서는 원격수업을 완벽하게 할 수 있는 것처럼 국민들에게 얘기해놓고 이렇게 학교 현장의 목소리를 나몰라라 하다니요. 뭐라도 하고 싶어 교육청 사이트에 들어갔어요. 이런 제*. 코로나 원격 수업 비상 상황인데, 조직 부서 이름 그 어딜 봐도, 어디다 전화를 해야할지 갈피를 못 잡겠네요. 교육부 사이트에 들어갔어요. 그리고 발견한 정보, '코로나19대응원격교육인프라구축과' 부서의 전화번호.
'아, 여기다!'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목소리 높여 따졌어요. 왜 도와주지 않느냐고, 좀 도와달라고. (선생님 별명이 왜 씩씩이샘인지 알겠죠? ^^;)
선생님의 업된 목소리에 그 분도 화가 났나봐요. 자꾸 방어벽을 치네요.
공격> 초등학교 6학년 담임교사로서 코로나 원격수업 일년을 겪어보니 정답은 구글 G-suit 이다. G-suit을 쉽게 가입할 수만 있게 도와달라. 교육청이나 교육부에서 단위 학교에 컨설팅 통로를 확실히 만들어달라. 모든 아이들의 구글 계정을 자동으로 만들 수 있게, admin 관리자인 담임 선생님이 학생들 계정을 관리할 수 있게, 그리고 그 모든 프로그램을 공짜로 쓸 수 있게. 우린 수업하기에도 헉헉댄다. 이런 단위 구축을 학교에 있는 사람들에게 떠넘기지 말아라. 지원을 해달라.
방어> 그렇게 해줄 수 없다. 구글은 외국 기업이라 우리 나라 개인 정보가 빠져나갈 수 있다. 외국 기업을 국가 기관인 교육부나 교육청이 밀어주는 모양새로 비춰질까봐 염려된다. 미안하지만 못도와주겠다.
공격 > 그러면 모든 공기업이나 학교에서 쓰고 있는 MS 소프트웨어도 쓰지 말게 하지, 그건 왜 쓰게 하느냐? 그것도 외국 기업이다.
방어 > 그것도 엄청난 시간이 걸려 그렇게 쓰게 된거다. 처음에 민원이 엄청 많았다. 올해도 구글에 대한 민원이 점점 들어오고 있다.
공격 > 지금 당신이 있는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 위치인 줄 아느냐? 우리 목소리를 전달해달라. 교육부 상급자들에게.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통화했네요. ㅡㅡ ^
전화를 끊고 생각했어요. 이런 변하지 않은 꽉 막힌 현실에서 나와 아이들의 '소확행', 소소하지만 작고 확실한 행복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게 무얼까? 이런 수업을 좀 더 쉽게 준비하는 것. 한번 더 생각해 준비하고 아이들에게 무리를 주지 않는 것. 그리고...
'아이들과 체육 수업을 더 해야겠구나. 국어, 사회, 수학...이런 과목에서 한 시간 빼서 체육 수업을 해야겠구나.'
'코로나 방역지침을 지키면서 할 수 있는 축구를 해볼까?'
(축구는 신발을 신은 발로 차니까 전염의 위험은 없잖아요.) 그리고 유튜브에서 열심히 찾았답니다. 남학생, 여학생 모두 즐겁게 할 수 있는 변형 축구를. 그러다 발견한 '땅따먹기 축구'.
여러분이 오늘 체육 수업을 할 수 있었던 사연이었답니다. 이공이들이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네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어 선생님은 좋았어요. 게다가 교실에 돌아와서 실과 수업 ‘바느질 하기’를 하며 13살인데도 바늘에 실도 못꿰는, 매듭도 못짓는, 홈질도 못하는 여러분을 보며 한참을 깔깔댔네요. 쉬운 매듭짓기. 그거 겨우 하나 가르쳐주고 있는 선생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