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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농 Nov 18. 2020

이공이들에게 4

편지로 마음을 전한다, 선생님의 글쓰기

안녕, 이공이들!


  올해 선생님이 클래스팅에 '안녕, 이공이들!'로 시작하는 글을 써서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글로 썼던 것처럼, 작년에도 가끔 글을 썼습니다. 그땐 선생님 자신만 보는 글을 썼었어요. 일기처럼요. 수업 후 아이들이 모두 집에 간 후, 빈 교실에서 주로 글을 썼습니다. 기쁠 때도 글을 썼지만, 그보다는 마음이 좀 힘들 때 쓴 적이 많습니다. 마음이 어려울 때, 글을 쓰면, 글을 쓰는 과정에서 치유를 받을 때가 종종 있어요. 그래서 어른들도 가끔 일기를 쓰는 것 같습니다.


다음 글은 딱 작년 이맘때 썼던 글입니다.



2019. 11.20 수요일 오후 3:15


  오늘 두 번째 수영 수업에도 많은 아이들이 준비를 해오지 않았다. 사유를 써온 아이, 그것도 해오지 않은 아이, 수영복이 없어서 부모님께 부담을 주지 않으려 참여하지 않은 아이, 이런 것을 왜 해야 하냐며 나름의 논리로 버티는 아이.


  아이들을 존중하려고 노력하는 것, 아이들을 믿는 것.... 그러한 것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아이들을 무섭게 끌고 가는 것, 아이들의 행동을 체크하고 규칙으로 통제하는 것... 이러한 것보다 더 높은 가치라 믿었다. 그런데 이럴 때마다 흔들린다. 내가 틀린 걸까? 내가 50살이 되어도, 60살이 되어도 정답은 절대 모를 것 같다.


  이 해이해지고 느슨해지는 분위기가 수영 수업 끝나고까지 지배한다. 수영에 참여하지 않은 아이들은 수업을 참관하면서 쉬는 시간을 실컷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쉬는 시간이 많지 않은 것에 대해 불만을 얘기했다. OO이 생일 편지 쓰기를 몇몇 아이들은 장난으로 썼다. '이건 아니다.' 싶어 멈추고, 내 마음의 칼을 꺼내 들었다. 휘두르는 그 칼이 아이들은 다치지 않게, 그러나 아이들을 둘러싼 나태한 공기와 기름 탱이들과 가시 빽빽이 돋은 껍질들은 모두 걷어낼 수 있게.


  "너희들이 6학년 다른 카리스마 있는 무서운 선생님 반이었어도 오늘처럼 행동했을까?"


칼을 휘두른 후, 아이들에게 물었다. 아이들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안다. 아이들은 바뀌었으리라는 걸. 야단맞지 않으려고, 벌칙을 받지 않으려고, 수영 수업에 더 많은 아이들이 참여했을 것이고, 쉬는 시간에 대한 항의 따위는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답답한 마음으로 점심을 먹는데, O반 선생님이 다가오셔서 말씀하셨다.


  "1m 거리... 나와 아이들 간의 거리는 1m면 내가 안 힘든데, 자꾸 그 거리가 좁혀지니 요즘 내가 힘들어지는 것 같아. 선생님은 어때?"


5교시가 끝나고, 아이들을 보내고 교실에 있으니 이번에는 6학년 베테랑 O반 선생님이 오셔서 말씀하셨다.


 "내가 보기에 선생님은 아이들의 언어를 몰라. 아이들의 언어를 배워야 해.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유행어로 아이들에게 이야기해본 적 있어? 아이들에게 눈높이를 맞추고 아이들의 언어로 대화를 해야지 아이들의 마음을 얻어. 요즘 보는 예능이 뭐야? 신서유기 봐?"

집에 TV가 없어서 예능을 못 본다고 얘기하니, 그럼 유튜브라도 찾아서 보라 하신다.


  올해 참 유난히 힘들다. 어떻게 해야 100점짜리 교사인지 모범 답안은 없는 거겠지만, 올해처럼 내가 이렇게 흔들리고, 나 자신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는 해는 이제껏 없었다. 오늘은 집에 가서 '신서유기'인가 뭣인가 하는 것 좀 찾아서 봐야겠다.



  그러나 선생님은 아직까지 '신서유기'를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늘 '봐야지. 봐야지.' 생각은 했는데, 벌써 일 년이 지났네요. 다른 예능 역시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대신 '학기초부터 아이들에게 좀 더 엄격하게 대해야지.'하고 다짐은 많.이. 했지요.


  그리고 하나 더. 여러분이 즐겨보는 예능에는 관심을 두지 못하더라도, 여러분이 좋아하는 음악에는 관심을 두어야지 다짐을 했어요. 그래서 1학기 때, 이공이들에게 좋아하는 음악을 자주 물어보고, ZOOM에서 서클 시작 전이나 수업 중 쉬는 시간에 여러분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나씩 하나씩 들려주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그마저도 끊겼네요. 등교 일수가 많아져, ZOOM에서 만나는 시간이 줄어든 만큼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들었을뿐더러, 가끔 기회가 생겨도, 선생님이 듣고 싶은 음악, 여러분이 들으면 좋. 을. 것 같다 생각되는 음악만 들려준 것 같아요. 클래식, 뉴에이지... 딱 거기까지.


  '내일은 ZOOM 수업 시작 전에 '힙합'을 한번 들려줄까? 내일은 비도 올 테고.'

  '요즘 핫한 힙합 가수가 누구지?'


어젯밤 잠이 잘 안와 유튜브를 봤어요. 선생님이 아는 힙합은 '다이나믹 듀오', '비와이'... 딱 거기까지.

 '우리 반 아이들은 어떤 힙합 가수를 좋아할까?'

여름학급문집에 인후가 '좋아하는 스타'에 '창모'를 적은 것을 기억해 내고, '창모'를 유튜브에서 검색했어요. 아름다워, 메테오, 널 지우려 해, 119 Remix, 돈이 하게 했어... 수많은 곡들이 있네요.


  '음악, 가사 다 좋은걸? 이 곡을 들려줘야지.'

했다가 중간중간 욕설. 비속어를 만나고 마음이 돌아섭니다. 그러다 '아름다워' 란 곡을 듣게 되었네요. 2000만 조회수를 육박하는 이 곡을 이제야 알게 되었네요. 작년에 신서유기를 보라던 그 샘이 알게 된다면 또 혀를 차시겠죠?

'쯧쯧쯧. 6학년을 가르친다는 선생님이 말이야. 좀 노력을 해야지. 노력을.'


  창모의 '아름다워'에 곡 하나를 더했습니다. 아무리 수업 시작 전, 중간 쉬는 시간에 들려준다 할지라도, 대중 음악인데, 다른 교. 육. 적. 목적을 입히면 좋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선택한 개코/광희의 '당신의 밤'. 몇 년 전 무한도전에서 개코/광희가 윤동주 시를 주제로 만든 음악. 선생님은 딱 여기까지.




  오후에 종하가 교실에 왔어요. 과제 확인을 맡으러.

  "종하야? 넌 요즘 어떤 힙합 음악 듣니?"

  "음...'투팍' 이요."

투팍? 검색해보고  투팍이 '2pac'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전 요즘 힙합 음악 안 들어요. 요즘 음악은 너무 가사를 많이 전달하려고 그래요. 가사가 너무 꽉 차 있어요. 그리고 온통 여자, 여자, 여자예요. 저는 그런 게 싫어요."

  "종하는 절제하는 음악 좋아하는구나."

  "네, 절제요. 그 사람은 가난한 흑인 이야기를 음악으로 담아냈어요. 엄청 절제하는 가사로요."

  "그럼 그 사람은 음악으로 '흑인인권운동'을 한 거네?"

종하는 2pac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Dear mama를 함께 들었습니다.

 6학년 담임으로 산다는 것은 정말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 가끔 편지를 씁니다. 온라인 학급 '클래스팅'에서요.

아이들에게 내 마음을 말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 글을 썼습니다.

기록해 오래오래 다시 꺼내보고 싶어, 이 곳에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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