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게 다 서클 때문이었다
중 1이 되어 가장 흐뭇했을 때는?
과목마다 선생님이 계속 바뀌는 거요.
맛없는 초등학교 급식을 안 먹게 되어서 좋았어요.
시험을 봤는데, 잘 봤을 때?
영화를 마음대로 볼 수 있어 좋았어요.
가장 최근에 초등학교 때를 떠올린 적은?
지난주에 친구 집에 가서 졸업앨범을 같이 봤을 때요.
전 매일 떠올라요. 학교 가라면 매일 청*초등학교를 지나거든요.
저도 꿈에 계속 초등학교 때가 나와요.
국어 선생님을 계속 봐야 할 때요.
왜? 국어 선생님이 어떤데?
너무 싫어요.
이유가 있을 것 아니야?
너무 심한 페미니스트예요.
너희들 혹시 2번남인건 아니지?
아이들이 웃는다. 이런 농담을 이해하는 것 보니, 아이들이 크긴 컸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야.
내가 잘하고 싶은 것은? 그리고 버려야 할 것은?
잘하고 싶은 것은 없는 것 같고, 버리고 싶은 것은, 형이요. 형을 버려버리고 싶어요.
아이들이 웃는다.
살을 버리고 싶다는 대답은 두 번이나 나왔다. 늦잠을 버리고 싶고, 일찍 일어나고 싶다는 대답은 그보다 더 많이 나왔다.
선생님은 아침밥을 좀 잘 차려주고 싶어. 최근에 가족들에게 아침밥을 차려준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아. 많이 미안해. 그리고 버리고 싶은 것은... 선생님이 왼쪽 눈에 심한 백내장이 왔는데, 그렇게 만든 나를 바꾸고 싶어. 뭐 하나에 빠지면 그것에 심한 몰두를 하는 것.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지나치게 빠지지 말라는 뜻인 것 같아. 이젠 나의 일이 아닌, 사람을 둘러보고 좀 챙기라는 것?
백내장이라는 말에 아이들이 갑자기 숙연해졌다. 그러다 누군가 그 분위기를 깨고 말했다.
선생님, 너무 정답 같은 말을 하면 어떻게 해요?
그래. 이제 서클 끝.
떠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올해가 이 학교 마지막이야. **** 교육청으로 학교 옮길 것 같은데, 내년에도 올 거야?"
"그럼요!"
"좋아. 그럼 내년에는 남한산성에 가자. 거기 꼭대기 올라가면, 음식점 많은데, 그땐 피자 말고, 맛난 밥 사줄게."
"꼭, 갈게요."
서클을 해서인지, 모아진 에너지에 아이들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교실을 나가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모두 안아주었다. 예전에는 6학년 아이들을 절대 안아주지 못했는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손을 벌려 안게 된다. 내 자녀들이 6학년이 되니, 가능해진 일이었다.
코로나가 시작한 2020년에 만난 아이들. 교실에서보다 ZOOM에서 만난 시간이 더 많아 그 아이들을 '이공이들'이라고 불렀다. 이공이들이라 부르면, '포노 사피엔스'가 떠올랐다. 2019년 6학년 담임으로 교권침해를 심하게 당하고 2020년 새로 만난 6학년 아이들, 이공이들. 그 아이들로 인해 교사의 삶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코로나 초기, 원격수업이 이제 막 도입되던 시절. 서클을 가장 많이 했다. 매주 월요일, 아이들을 두 타임으로 나누어, 서클을 했다. 서클을 하는 동안, 나는 아이들에게 주제 질문을 던지고, 아이들은 자기 이야기로 답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린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였다. 고작 일주일에 하루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매일 만나던 아이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것 같다.
하루에 한두 시간 ZOOM 수업을 하던 게 학교 규정이던 시절. 코로나로 인해 이 아이들을 흘러 보내고 싶지 않아, 이공이들과 매일매일 4시간 넘게 ZOOM 수업을 했다. 4시간 ZOOM 수업 계획을 짜기 위해 또 그만큼의,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보냈다. 그때 기록을 이 브런치의 다른 매거진 'ZOOM 수업을 기록하다'에 남겼다. 아마 그때부터가 아닐까? 내 눈에 백내장이 생긴 게.
왼쪽 눈이 최근에 많이 불편해지고, 우울감이 찾아왔다. 백내장은 수술만 하면 금방 완쾌된다고 아무 병도 아니라고 주변에서 말하지만, 겪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의사 선생님은 내 눈을 검사하더니 부작용을 얘기하며, 수술하지 말고 더 버티라고 하셨다. 더 버텨야 할 시간들을 생각하니, 순간순간 우울해졌다.
그런데 2020년에 그랬던 것처럼, 이공이들이 나를 다시 회복시켜 주었다. 아이들이 내게 얻은 힘보다, 내가 아이들에게 더 큰 힘을 얻었다.
이 모든 게 다 서클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