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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농 May 14. 2022

스승의 날 찾아온 제자들과 서클을 했다

이 모든 게 다 서클 때문이었다

딱 1년 만이다. 이공이들을 다시 보게 된 건. 작년 스승의 날 1학년 1반 교실로 찾아와 작은 의자에 앉아 낑낑 대던 게 엊그제 같은데,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전혀 연락이 없다가 마치 어제 만난 사람처럼 준혁이가 며칠 전 연락을 해왔다.

"선생님, 아이들과 같이 가고 싶은데, 올해는 몇 학년 몇 반으로 가면 될까요?"

대여섯 명쯤 오겠지 생각했는데, 열세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왔다. 작년에는 6학년 때랑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 올해 중 2가 된 이공이들은, 다들 잭의 콩나무가 되어 있었다.  


작년에도 그랬듯이, 인우에게 피자를 사 오라고 했다. 인우가 피자를 가장 잘 먹을 것 같아서일까? 피자 심부름은 꼭 인우가 맡게 된다. 책상을 여럿 붙이고 둘러앉았다. 자연스럽게 남녀가 갈라진다. 자리도 갈라지고, 이야기도 갈라진다. 남학생들은 지난주 본 중간고사 결과 얘기하느라 여념이 없다. 가끔 싫어하는 과목 선생님 얘기도 나온다.  페미니스트라는 국어 선생님 이야기는 한참을 오르내린다. 여학생들도 공부 얘기, 학원 얘기. 가운데 앉은 나는 왼쪽, 오른쪽 고개를 돌려가며 아이들을 바라봤다. 내 옆에 앉은 제승이는 아이들 이야기에 끼어들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많이 불편해 보였다. 그 분위기를 깨고 말했다.  


얘들아, 우리 서클 하자.

아이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왜? 6학년 때 많이 했잖아. 이미 둥글게 앉아 있으니, 선생님이 질문만 던지면 되는 거네?

교실 책꽂이에서 회복적 생활교육 책을 집어 들었다. 서클을 할 때면 늘 내가 펴는, 월별 주제 질문들이 요목 하게 정리되어 있는 페이지를 펴서 질문을 골랐다.    


중 1이 되어 가장 흐뭇했을 때는?

과목마다 선생님이 계속 바뀌는 거요. 

맛없는 초등학교 급식을 안 먹게 되어서 좋았어요. 

시험을 봤는데, 잘 봤을 때?

영화를 마음대로 볼 수 있어 좋았어요.


가장 최근에 초등학교 때를 떠올린 적은?

지난주에 친구 집에 가서 졸업앨범을 같이 봤을 때요.

전 매일 떠올라요. 학교 가라면 매일 청*초등학교를 지나거든요.

저도 꿈에 계속 초등학교 때가 나와요.

국어 선생님을 계속 봐야 할 때요.


왜? 국어 선생님이 어떤데?

너무 싫어요.

이유가 있을 것 아니야?

너무 심한 페미니스트예요.

너희들 혹시 2번남인건 아니지?

아이들이 웃는다. 이런 농담을 이해하는 것 보니, 아이들이 크긴 컸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야.


내가 잘하고 싶은 것은? 그리고 버려야 할 것은? 

잘하고 싶은 것은 없는 것 같고, 버리고 싶은 것은, 형이요. 형을 버려버리고 싶어요.


아이들이 웃는다.

살을 버리고 싶다는 대답은 두 번이나 나왔다. 늦잠을 버리고 싶고, 일찍 일어나고 싶다는 대답은 그보다 더 많이 나왔다. 


선생님은 아침밥을 좀 잘 차려주고 싶어. 최근에 가족들에게 아침밥을 차려준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아. 많이 미안해. 그리고 버리고 싶은 것은... 선생님이 왼쪽 눈에 심한 백내장이 왔는데, 그렇게 만든 나를 바꾸고 싶어. 뭐 하나에 빠지면 그것에 심한 몰두를 하는 것.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지나치게 빠지지 말라는 뜻인 것 같아. 이젠 나의 일이 아닌, 사람을 둘러보고 좀 챙기라는 것?


백내장이라는 말에 아이들이 갑자기 숙연해졌다. 그러다 누군가 그 분위기를 깨고 말했다.

선생님, 너무 정답 같은 말을 하면 어떻게 해요?

그래. 이제 서클 끝.


떠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올해가 이 학교 마지막이야. **** 교육청으로 학교 옮길 것 같은데, 내년에도 올 거야?"

"그럼요!"

"좋아. 그럼 내년에는 남한산성에 가자. 거기 꼭대기 올라가면, 음식점 많은데, 그땐 피자 말고, 맛난 밥 사줄게."

"꼭, 갈게요."

서클을 해서인지, 모아진 에너지에 아이들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교실을 나가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모두 안아주었다. 예전에는 6학년 아이들을 절대 안아주지 못했는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손을 벌려 안게 된다. 내 자녀들이 6학년이 되니, 가능해진 일이었다.  


코로나가 시작한 2020년에 만난 아이들. 교실에서보다 ZOOM에서 만난 시간이 더 많아 그 아이들을 '이공이들'이라고 불렀다. 이공이들이라 부르면, '포노 사피엔스'가 떠올랐다. 2019년 6학년 담임으로 교권침해를 심하게 당하고 2020년 새로 만난 6학년 아이들, 이공이들. 그 아이들로 인해 교사의 삶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코로나 초기, 원격수업이 이제 막 도입되던 시절. 서클을 가장 많이 했다. 매주 월요일, 아이들을 두 타임으로 나누어, 서클을 했다. 서클을 하는 동안, 나는 아이들에게 주제 질문을 던지고, 아이들은 자기 이야기로 답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린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였다. 고작 일주일에 하루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매일 만나던 아이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것 같다. 

하루에 한두 시간 ZOOM 수업을 하던 게 학교 규정이던 시절. 코로나로 인해 이 아이들을 흘러 보내고 싶지 않아, 이공이들과 매일매일 4시간 넘게 ZOOM 수업을 했다.  4시간 ZOOM 수업 계획을 짜기 위해 또 그만큼의,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보냈다. 그때 기록을 이 브런치의 다른 매거진 'ZOOM 수업을 기록하다'에 남겼다. 아마 그때부터가 아닐까? 내 눈에 백내장이 생긴 게.  


왼쪽 눈이 최근에 많이 불편해지고, 우울감이 찾아왔다. 백내장은 수술만 하면 금방 완쾌된다고 아무 병도 아니라고 주변에서 말하지만, 겪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의사 선생님은 내 눈을 검사하더니 부작용을 얘기하며, 수술하지 말고 더 버티라고 하셨다. 더 버텨야 할 시간들을 생각하니, 순간순간 우울해졌다. 


그런데 2020년에 그랬던 것처럼, 이공이들이 나를 다시 회복시켜 주었다. 아이들이 내게 얻은 힘보다, 내가 아이들에게 더 큰 힘을 얻었다.    


이 모든 게 다 서클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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