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의 칼자루, 인사권

나는 공립학교 교사입니다 2

by 예농

2월 8일 저녁 8시


퇴근을 하고 집에 와서 쌍둥이들에게 밥을 차려주고, 방에 들어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오늘 학교에서 전화 건 것을 포함해 집에 와서까지, 한 열 명의 선생님들에게 전화를 건 것 같다.

"선생님, 어떻게 된 거예요? 학년 배점도 높은데, 왜 그 학년을 못 받은 거예요?

"선생님, 그 업무를 어떻게 맡게 된 거예요? 학년 부장을 맡았는데 그 업무까지 감당해낼 수 있겠어요?"

"선생님, 부장을 죽어도 못하시겠다고 얘기하셨다던데, 정말이에요?"


오늘 발표된 담임 배정표를 출력해 책상에 올려놓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마음이 답답해졌다. 서글픈 분노가 차올랐다.

'도대체 그분들이...'


6학년 6점, 1학년/5학년 5점.... 작년 '토론이 있는 교직원회의'에서 우리가 원칙으로 세워놓은 학년 배점 점수로 학년 담임이 정해졌다면, 올해 본교 근무가 마지막인 5년 차라 점수 합계가 가장 높은 OOO 선생님은 당연히 1순위 희망 학년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받지 못하고, 점수가 한참 떨어진 2년 차 선생님이 그 학년을 받았다. 올해 4년 차 선생님이 1, 2, 3 순위 희망 학년을 모두 받지 못했는데, 올해 새로 오신, 점수가 0점인 선생님은 그 4년 차 선생님보다 더 나은 학년을 받았다. 이런 경우가 한 두건이 아니었다. 수두룩했다.


'어디 이번에는 업무분장표를 봐볼까? 뭐야, 이건?!'

우리가 지난 1월 28일에 받은 2021 업무 분장표와 오늘 받은 2021 업무 분장표가 상당 부분 달라져 있었다. OO 부장의 업무 절반이 떼어지고 나머지 절반이 일반 교사에게 넘어가 있었다. 학교 관리자와 친분이 깊은 어떤 부장의 업무는 통째로 일반 교사에게 넘어가 있었다. 그 부장은 직함만 부장인 허울뿐인 부장이 되어 있었다. 부장 순환제로 올해 부장을 맡아야 하지만, 몸이 안 좋아 진단서까지 내신 선생님이 부장이 해야 할 업무를 떠맡았다. 마찬가지로 부장을 맡아야 하지만, 끝까지 고사한 다른 선생님도 마찬가지.


그런데 내가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것은 OOO 선생님의 경우였다. 그 선생님은 작년 한 해 부장으로서 최선을 다 하셨고 올해 부장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한 해 더 부장을 맡아달라는 학교 관리자 분들의 제의를 끝까지 거절했고 부장은 내려놓았지만, 부장급의 업무를 떠맡게 되었다. 1년 후의 내 모습이 될 수도 있는. 두려워졌다.


앞의 글, '학교, 오래된 미래 2'에서 얘기한 서울시교육청에서 일선 학교로 내려 보낸 '학교 업무 정상화' 공문 대로라면, 2021년 업무분장표를 정하기 전에, 업무 희망을 받기 전에, '토론이 있는 교직원 회의'에서 모든 교사들이 모여 업무에 대해 논의했어야 했다. 2020년 업무 중에 과감히 없애야 할 것은 무엇인지, 행정실에 더 지원 요청을 해야 할 업무는 무엇인지, 부서를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 코로나로 인한 원격 수업으로 부서 개편은 필요하지 않은지, 순환 부장제를 실시하기로 한 만큼, 모든 선생님들이 한 번은 부장을 맡아야 하므로, 부장 중심으로 업무를 개편하고 일반 교사들은 수업에 전념할 수 있게 할 수 있는지, 진단서를 낼 만큼 아픈 선생님 같은 경우는 부장직에 어떤 예외를 둘 것인지, 서로 하려 하는 부장과 서로 하지 않으려는 부장은 어떻게 정할지 등등.


우리가 순환 부장제를 하기로 합의한 것은 위와 같은 모든 과정을 포함한 것이었다. 함께 논의하고 함께 결정하는 과정까지 우리에게 권한을 줄 것. 그동안 '인사'는 교장의 고유 권한이라고 명시되어 교장의 단독 결정으로 이루어졌다. '그동안'이라 함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군인들이 대통령을 하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 같은데? 혹시 6.25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걸까? 모르겠다.


내가 아는 건, 우리는 우리가 맡아야 하는 업무 분장에 대한 그 어떠한 논의도 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처음 받았던 2021 업무 분장표와 오늘 받아본 2021 업무 분장표가 상당 부분 달라져 있다는 것.

"올해 코로나로 인한 원격수업을 해보니, 정보 부장의 역할이 내년에도 중요해질 것 같은데, 정보 부장이 학년 부장까지 겸하면 너무 힘들 것 같습니다. 내년에 우리 학교 원격수업의 질 향상을 위해서도 정보 부장에게 학년 부장까지 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라고 L 선생님이 교직원 회의에서 얘기를 했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까지 여기서 다루어질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교장선생님이.


'여기서 다루어질 문제가 아니다? 그럼 우리는 교직원 회의에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지?'

'학교 업무 정상화'는 공문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일까? 혁신학교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일까? 전교조 조합원 선생님들이 많은 학교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일까?'

'모르겠다. 오후부터 지끈지끈 두통이 왔는데... 잠이나 자자. 어쨌든 나는 희망대로 1학년 부장이 되었고,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던 안전교육부장을 맡았다. 그러니 잠이나 자자.'


뒤척이다 잠이 들었는데 , 꿈을 몇 번 꾼 것 같은데, 눈 떠보니 새벽 3시 30분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이 밀려왔다. 다시 자기는 글렀다. 어제 통화했던 선생님들이 생각이 났다.


'에휴. 사정이야 안됐지만, 내 알 바 아니야. 내 앞가림도 벅찬데.'

그러다 OOO 선생님이 떠올랐다.

'나도 그 선생님처럼 되는 거 아니야? 그러다 내년에 부장 탈출에 실패하는 건?'

정신이 퍼뜩 들었다.


거실로 나와 노트북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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