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부터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기록하기 시작했다. '2021 성과급 등급을 나누기 위한 다면평가' 교직원 회의와 '2021 부장 순환제, 학년, 담임 배정 인사 원칙'을 세우기 위한 교직원 회의'에서 있었던 일들. 교장선생님께 2021 순환 부장제에 해당하는 선생님들이 부장직에 대해 서로 협의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달라고 건의했던 일. 그리고 작년 회의에서, 면담에서 정했던 약속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어제 일까지.
어제 출력해놓은 담임 배정표와 업무분장표 두 장과 내가 기록한 내용들이 빼곡히 적혀있는 노트북 화면을 번갈아 들여다보았다. 고요한 새벽, 머릿속이 또렷하게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래. 2021년도 1학기 프로젝트는 이건 가보다. 시작하자.'
3년 전부터 스스로 정해놓은 네 가지 원칙.
첫 번째, 1년에 딱 두 번만.
1학기 한 번, 2학기 한번... 이렇게 딱 두 번만.
두 번째, 나랑 상관이 있는 일에만.
나랑 연관이 있는 일에만 나서기.
세 번째, 스트레스받지 않게 이 모든 과정을 프로젝트라 생각하기.
그래서 재미있는 이름을 붙일 것. 물론 그간 프로젝트 이름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참 유치하다 생각할까 싶어.
마지막 네 번째, 결과를 생각하지 않기.
'이번 프로젝트에는 어떤 이름을 붙일까?'
머릿속에 몇 개의 단어가 생각났다.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다 보면 이름이 '짠'하고 떠오를 거야.'
'그런데 무얼 해야 할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나의 멘토 L 선생님이 가르쳐주셨던 방법? 그래, '공문'! 평교사인 나도 공문을 기안할 수 있다. 먼저 '토론이 있는 교직원 회의'를 개최하기 위한 선생님들의 동의를 얻기 위한 글을 썼다. 이건 메신저로 전교 선생님께 보낼 예정이다. 그리고 '2021학년도 학년, 업무 배정에 관한 이의 제기 및 토론이 있는 교직원 회의 개최 요청'이란 제목의 내부 공문을 쓰기 시작했다. 동의를 받기 위해 선생님들께 편지 형식으로 쓴 첫 번째 글은 줄줄 써졌다. 그런데 공문 글쓰기에서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최대한 간결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만 콕콕, 그리고 힘을 실어서. 공문 글쓰기 원칙은 알고는 있는데 막상 쓰려고 하니 정말 어려웠다. 쓰다 보면 수필이 되어 있었다. 쓰고 지웠다를 몇 번을 반복하다 겨우 절반을 완성. 이런.... 출근 시간 30분 전이다.
'모레부터 설이라 오늘 선생님들의 동의를 받고 공문 기안을 올려야 내일 회의가 열리던지 할 텐데. 오늘은 ZOOM 수업이 4교시까지 잡혀있는 날. 시간이 촉박하다.'
'그래, L 선생님에게 S.O.S를 치자!'
오후까지 18명의 선생님들이 동의를 해주셨다. 다음 날까지 2명의 선생님이 더 동의를 해주셨고, 아침 일찍 내부 공문 기안을 올렸다. 결재 부탁드린다는 메신저를 보냈다. 한참이 지나도 결재가 나지 않았다. K 에듀파인에 들어가 문서 진행 상태를 확인해보니, 교감선생님이 내 기안을 반. 려. 하셨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이공이들과 담. 담. 히. ZOOM 수업을 했다. 다음 주에 졸업이라, 졸업식 때 방송할 '여러 에듀테크로 우리 반 뉴스 만들기'와 졸업식 때 나누어 줄 '우리 반 문집 만들기' 활동을 이번 주 내내 하고 있었다. 이공이들의 모둠 활동과 개별 활동이 ZOOM 수업의 대분분을 차지하고 있어 교사인 내가 해야 할 분량은 많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었다. 역시 프로젝트는 한 학기에 한 번. 그 이상은 어렵다.
2월 10일 오후 4시
수업이 끝난 오후, 이젠 교장선생님을 찾아뵐 시간.교무실 소파에 앉아 기다렸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 침착해야 한다, 침. 착. 해. 야. 한다. 일단 교장실에 들어가 교장 선생님을 만나면 최대한 깍듯하게.
아, 교장선생님. 우리 학교에 첫 교장으로 발령받으시고, 우리 학교에서 정년을 마치실 교장 선생님. 평교사 시절 민주적인 학교를 경험하셨더라면 역시 민주적인 학교를 운영하셨을 분. 학교 관리자가 아니라 교회 권사님이나 옆 집 웃어른으로 만났다면 어땠을까?
"교장 선생님, 제가 오늘 아침에 기안을 올린 게 있는데요. 결재 부탁드리려고 왔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시작했다.
교장선생님도 많은 말씀을 하셨고, 나 역시 많은 얘기를 하였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담임배정표와 업무분장표가 나온 날, 여러 선생님들께 제가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 이야기를 꺼내자 교장 선생님 표정이 달라지셨다.
"왜 선생님이 여러 선생님들에게 전화를 합니까? 그렇게 일을 주도했습니까?"
'헉. 이런 예상치 못한 질문에 뭐라 대답해야 하지?'
잠시 머리를 굴리는데, 길어진 면담 시간만큼 그 공간이 익숙해져서일까? 아님 길어진 시간만큼 내 판단력이 흐릿해져서일까? 이런 대답이 내 입에서 튀어나오고야 말았다.
"제가 오. 지. 랖. 이 넓어서요. 교장 선생님.'
뱉어놓고 후회했다. 오지랖이라니... 오. 지. 랖. 이라니... 격 떨어지게 오지랖이 뭐야. 그리고 듣는 교장선생님 입장에서도 불편한 단어이다.
1시간 20분 정도 지나고 교장실에서 나왔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진이 빠졌다. 교실에 돌아와 생각했다.
'왜 오지랖이란 말이 튀어나왔을까?'
'그래, 이번 프로젝트 이름은 '오지랖'으로 하자. 오지랖 프로젝트!'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 다시 재기안을 올리자. 그리고 그다음 할 일은 그다음에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