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 인사권의 견제, 노조 단체협약
나는 공립학교 교사입니다 4
2월 11일
구정이 다가왔다. 고향에 내려갔더라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고향에 내려가 가족을 만나고, 마음을 식히는 동안, '이번 일은 여기서 그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설에는 코로나 19로 인한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우리 가족 역시 고향에 내려가지 못했다. '뭐 하나에 꽂히면 그것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나의 못마땅한 기질에 구정 내내 나의 마음은 학교에 가 있었다.
가끔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남편 튼튼이에게 이야기할 때가 있다. 위로받으려고 얘기한 건데, 본전도 못 건질 때가 많다.
"너희 학교 교장 선생님은 오늘 한 잠도 못 주무실 게다. 우리 회사에도 딱 너 같은 직원이 한 명 있는데, 너희 교장선생님 마음이 어떨지... 내가 상상이 간다. 나도 상사로 겪어 봤는데..."
"학교는 그나마 나은 줄 알아. 행복한 줄 알아. 일반 회사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야."
그러나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쳐야 하는 교사가 민주주의를 경험하지 못하는데, 학생들에게 어떻게 민주주의를 가르칠 수 있겠어?"
나의 얘기가 이쯤 이르면, 튼튼이는 더 이상 얘기를 안 한다. 아니면 얘기를 못하는 걸까? 어떤 때는 '하긴, 그러네.' 하다가 어떤 때는 '그래도 그렇지.'.
어제 나의 재기안, 같은 제목의 L 선생님의 기안, 강쌤의 교장선생님과의 면담 후에도 토론이 있는 교직원회의가 열릴 것 같지 않았다. '토론이 있는 교직원회의', 말 그대로 토론이 있는 교직원회의일 뿐인데... 이 하나를 열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하는 걸까? 그냥 이렇게 흐지부지 되는 걸까?
작년 12월부터 일어났던 일들의 기록을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이 회의는 무조건 열려야 한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학교 구성원으로서 우리의 책임을 다시 생각하고, 본래의 우리의 역할을 다시 기억해내야 한다. 지켜지지 않을 원칙을 다시 정한답시고, 다가올 12월에 또 그 자리에 앉아 무슨 소리를 또 떠들고 있을 나 자신이 정말 싫을 것 같았다.
전교조 서울지부에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 조합원인데요, 저희 학교 일로 상담을 하고 싶어 전화드렸습니다."
어제 L선생님과 강쌤과 이야기를 하며, 전교조에 도움을 요청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L 선생님과 강쌤은 만류를 했다. 학교의 일은 내부에서 해결해야지, 외부의 도움까지는 받는 게 아닌 것 같다고.
33960원. 내 통장에서 다달이 빠지는 전교조 회비. 내 아이의 H사 어린이보험비보다 비싼 전교조 회비. 전교조 회비는 정액제가 아니라 호봉에 따라 달라진다. 고경력 교사는 저경력 교사보다 더 많은 회비를 내야 한다. 매달 자동이체 알림이 뜰 때마다 생각한다.
'내년에 또 오를 텐데 서울교사노조로 갈아탈까? 실천교사모임이라는 것도 있다던데...'
그러나 학교에서 이런 일을 맞닥뜨릴 때마다 '아직 탈퇴하지 않음'을 다행이라 여긴다.
'학교에 이런 이런 일이 있었어요. 이건 아닌 거죠?'
나의 물음에
'아직도 그런 학교가 있어요? 선생님 힘들겠어요...'
로 이어지는 따뜻한 설명은 나름나름, 그럭저럭으로 나의 학교생활을 하루하루 이어가게 해주는 여러 비타민 중의 하나이다. 야맹증을 막아주는 비타민A는 내게 멘토가 되어준 몇몇 선배 교사, 피로회복에 좋은 비타민C는 오래전 만났는데도 지금까지 연결되어 있는 몇몇 제자라면, 전교조는 내게 비타민D쯤 될 것 같다. 햇볕을 잘 받지 못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비타민D. 또한 실비보험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매달 납부할 때는 돈 아깝다 생각하더라도 어려운 상황에서는 정말 필요한.
'20대 때 가입할 때만 하더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40대인 지금의 나는 정말 현실적인 조합원이 되어있구나.'
2월 15일
교장, 교감선생님과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을 각오하고 도움을 요청했고, 전교조는 이 모든 일어났던 일들이 2020. 12.29 서울시교육감과 전교조 서울지부와의 단체협약을 위반하는 사례라 답해주었다. 서울시교육감이 단위 학교를 잘 지도, 감독하지 않았기에 발생한 일이므로 전교조 서울지부가 교육감을 상대로 고발하면 교육감이 벌금을 내야하는 엄청난 일이라 답해 주었다. 아,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고발이요? 아시잖아요. 교직 사회는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 저도 관계를 깨고 싶진 않아요. 그러나 이번 일도 해결되었으면 해요. 어떻게 해야할까요?"
사무국장님이 조언을 해주셨고, 조언대로 행동으로 옮겼다.
전교조 서울지부 사무국장님이 우리 학교에 공문을 발송해, 교장, 교감 선생님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바로 토론이 있는 교직원회의를 요청한 나의 기안이 바로 결재되었다. 스무 명의 선생님들이 안건 발의에 동의를 해주었고, 나, 강쌤, L선생님이 며칠동안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불가능했었는데. 토론이 있는 교직원회의가 드디어 열리게 되었다. 잘못 이루어진 일들에 대한 언급들이 있었고, 한 부서의 업무는 조정되었다. 그리고 2주 후, 회의록을 기록하여 기안을 올렸다.
2월 22일
그 사이 나는 부장이 되었다. 교직 인생 첫 부장. 첫 부장회의를 마치고, 2년 전 우리 학년의 부장님이셨던, 내가 힘들 때 나를 많이 도와주셨던 부장님께 다가가 인사를 드렸다.
"부장님, 제가 이렇게 부장이 되었네요. 올해 잘 부탁드립니다. 많이 도와주세요."
그런데
"죄송합니다만, 저는 함께 가자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선생님을 도와드리지 못할 것 같아요."
"네?"
웃으며 나왔지만, 일주일 내내 그 상황이 자꾸 떠올랐다.
'무슨 뜻이지? 함께 가자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그럼 나는 어떤 사람이라는 거지?'
내가 불편하다고 여겼던 상황. 그래서 행동했던 상황.
또 다른 누구는 이런 나를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상황.
작년 12월, 파란하늘 방과후 사회적 협동조합 단체 카톡방. 이사회의 휴원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내 장문의 카톡의 마지막 문장
"제 글이 불편한 글이 될 수 있겠지만, '불편해도 괜찮아' 심정으로 글을 올립니다."
에 포비 이사장은 답했다.
"불편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불편해도 괜찮아요."
그래.
불편해도 괜찮다.
불편해도 괜찮다.
그렇게 생각하자.